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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교환기의 종류와 발전사: 우리의 전전자교환기 TDX의 개발은 국보급 성과였다

갓 쓰고 서울 오다

by 지구촌사람 2022. 11. 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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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교환기의 종류와 발전사: 우리의 전전자교환기 TDX의 개발은 국보급 성과였다

아래 자료는 오래 전(2006/09/04) 올렸던 것인데 이곳 블로그 게시판의 에디터가 변경(2.0에서 One)되어 이전 글이 복원되지 않아서 새로 손댄 것. 출처는 KT 자료실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송화기는 벽에 붙어 있고 수화기만 귀에 대고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20세기 초의 전화기 사용이 그랬다. 그러다가 송수화기가 붙어 있는 걸 들고서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이야기하는 시대로 넘어간다. 앞의 것이 자석식이고 뒤의 것이 공전식이다. 교환원과 통화하여 연결을 부탁하는 전화를 써 본 사람이라면 그는 최소한 60~70대다.

 

사진: 자석식 전화기들. 이것들의 특징은 전화기 옆에 교환원을 호출하기 위해 열심히 돌려야 하는 손잡이들이 있다

사진: 공전식 전화기. 송수화기만 들면 교환원과 연결되는 방식. 교환원 연결이 늦어지거나 잘 안 되면 송수화기 거치용 후크를 신경질 나게 연속으로 눌러대면서 '교환원' 소리를 질러대는 장면들이 잦았다.

송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려서, 교환원의 도움이 없이도 상대방과 연결하던 다이얼식 자동전화기를 써 본 이들은 많으리라. 그 뒤로 나온 것이 다이얼 대신 번호의 숫자를 눌러서 연결하는 방식인데, 그것은 전자식 교환기의 출현 덕분이다. 방식에 따라 반전자와 전전자로 나뉘었는데, 지금은 모두 전전자 방식이다. 

반전자는 80년대에, 전전자는 90년대에 본격화되었고 대략 2000년부터 전국에 설치되기 시작한 전전자 교환기 TDX-100은 사실 국보급 개발품이라고 해야 한다. 대량 수용과 더불어 획기적인 종합 기능이 부가되어 몇십 년에 걸친 전화 회선 증설 정체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TDX 전전자교환기는 1986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세계 10번째의 전전자교환기이다.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은 한국의 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건이며, 통신·인터넷 분야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정도의 성과다. 이 개발 실무를 해낸 곳이 한국전기통신연구소(ETRI)의 TDX 개발단이다. 과학기술 부문 최고 훈장을 주어도 모자란다.

이 기술로 외화벌이까지도 했다. 1991년 필리핀에 교환기 수출을 시작하여 1995년에는 9개국에 1억 5000만 달러, 1996년에는 9개국에 3억 7000만 달러, IMF기간 중에도 10개국에 1억 8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참. 우리나라에 전화번호를 팔고 사던 시대가 있었다. 전화 회선 증설 적체가 심각하여 어쩔 수 없이 나왔던 고육책으로 이사갈 때 전화 회선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 청색전화였고, 반납하지 않아도 되는 게 백색전화였다. 이 백색전화는 전화상에서 사고 팔았다. 이 전화 구분은 전화기 색깔로 한 것이 아니라, 1970년 이전에 신청하여 설치된 회선은 백색전화였고, 그 이후에 신청하여 설치된 전화 회선은 이사 갈 때 반드시 반납해야 하는 청색전화였다. 요즘 이런 얘기는 정말이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쯤 된다. 안 쓴다고, 필요 없다고 집 전화를 반납한 가정이 70%을 넘기고 있으니까.

하기야, 60년대까지만 해도 초중등학교에서는 가정 형편 조사서라는 게 있었는데 그때의 재산 품목으로 전화, 티브이, 라디오, 선풍기 등이 있었다. 당시 전화 보유 가정은 전국적으로 5%도 되지 않았다.

이 TDX 개발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오명(1940~) 장관이다. 오명은 체신부/교통부/건설교통부/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거친 장관 전문가(?)라 할 정도인데 경기고/육사 출신의 과학계 인사, 곧 테크노크라트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설득하여 전전자교환기 개발을 끝까지 밀어붙인 뚝심파로 우리의 인터넷 초고속 강국 건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전 엑스포를 앞두고 전두환을 설득하여 대전까지 광케이블을 깔았을 정도. 장관 후에도 아주대/건국대 총장으로 모셔갈 정도였다. 

-온초 최종희(10 Nov.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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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교환기의 종류와 발전사

1. 자석식 교환기

전화기의 발명으로 음성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시켜 먼 거리까지 전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여러 곳과 값이 싸게 통화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교환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처음으로 개발된 것이 교환원에 의해 수동으로 전화를 연결 시켜주는 수동교환기였다. 

세계 최초의 교환기는 1878년 1월 28일 미국의 코네티컷 주 뉴해븐(New Heaven)시에 설치되었다. 수용가입자 수는 21가입자이었으며, 이후 가입자의 증가에 따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복식교환기가 1887년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1902년 3월 20일 서울 인천사이에 通信院에서 경영하는 전화가 개통됨으로 우리나라의 공중 통신용 전화사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교환기는 자석식 100회선 단식교환기와 소형 벽걸이형의 2종류였으며, 일제 강탈시 총 12대가 있었다. 자석식 100 회선용 교환기의 제조회사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스웨덴의 제품이거나 혹은 일본이 수입해서 개량한 미국의 웨스턴 전기회사 제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석식교환기는 전화통화용 전류의 공급을 위해 가입자별로 축전지를 달아야 하므로 관리에 애로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시키기 위하여 공전식 교환장치가 개발되었다.

2. 공전식 교환기

공전식 교환기는 자석식교환기가 갖고 있는 전원장치의 전압 변동 및 관리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입자가 개별적으로 비치하던 축전지를 없애고, 교환국에 집중시켜 모든 가입자가 필요로 하는 전원을 교환국에서 공급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교환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전식교환기가 설치된 곳은 지금의 중앙우체국 부근인 경성우편국으로, 1908년 6월 교환대 4대 규모로 개통되었다. 1911년 부산국에 설치된 것을 비롯하여 1921년 용산분국, 1923년 광화문 분국 등에 개통되었으며. 1930년대에 일제는 100 회선용 단식교환기를 개조하여 소형 복식교환기로 개발하기도 하였다. 

공전식 교환기는 자석식에 비하여 상당한 편리함을 주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수동식교환기로는 대량의 가입자를 수용할 수 없었고, 번거롭게 교환원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3. 자동식 교환기

자동식 교환기란 가입자가 다이얼을 이용해 직접 자동교환기를 조작하여 착신가입자를 호출하여 통화를 하는 교환기로써, 교환원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공전식에 비해 통화 품질이 좋고, 수용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장점을 갖고 있다.

1889년 미국의 스트로져(A.B. Strowger)에 의해 최초로 발명된 자동식 교환기는 수평 및 수직운동을 통해 가입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반원통모양의 스위치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ST교환기가 최초로 설치, 운용된 곳은 1892년 미국의 시카고 근처였으며, 규모는 100 석으로, 여든 개의 선택 스위치로 구성되어 있었다. 1903년에는 10,000 가입자 용량의 스트로져 교환기가 실용화되었고, 1910년에는 미국의 131교환국 200,000 가입자가 자동교환기에 수용되었다. 그 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ST교환기를 그대로 도입하거나 일부 개량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국내 최초로 자동교환기가 개통된 것은 1935년 3월 나진우편국의 SH(Siemens Halske) 교환기로 400회선 규모였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군사적 요충지인 나진항에 국내 최초의 자동식 교환기를 설치한 것이다. 이어 1935년 10월 경성중앙전화국에 ST교환기 6,000회선, 11월에 청진국 1,000 회선이 설치되었다. 

1959년 새로운 방식의 자동식교환기 도입을 위한 국제입찰에서 독일 지멘스의 EMD 교환기가 낙찰되어 우리나라에 EMD 자동교환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EMD 교환기는 용산전화국에서 1960년 9월 5일 2,000회선 규모로 최초 개통되었으며, 1965년 7월에는 최초의 국산화된 EMD 교환기 5,000 회선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산화된 EMD 교환기는 대도시에 주로 설치되었으며, ST 교환기는 중소도시에 설치되었는데, 이러한 이원화 현상은 반전자교환기가 도입되기 시작한 1977년까지 계속되었다.

4. 반전자 교환기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컴퓨터의 등장은 교환기 개발에 혁신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기계식 교환기의 제어 부분이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6년 미국에서 아날로그 통화계를 컴퓨터에 축적된 프로그램이 제어하는 반전자교환기 NO.1 ESS가 미국에서 실용화되었고, 컴퓨터의 H/W를 개선하여 1970년대엔 NO.1A ESS로 발전되었다.

우리나라의 전화 시설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첫해인 1962년 말 17만 회선에 불과하였으며 그중 약 50%가 자동식이었다. 그러나 4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기간 중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산업의 발달로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전화에 따른 수요는 급증하였다. 이에따라 EMD와 ST방식의 자동식 교환시설로는 수요를 충족시길 수없게 되어 반전자교환기의 도입과 개발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1977년 9월 도입 기종으로 벨기에의 M10CN이 결정되었고, 드디어 1979년 12월에 2만 회선이 영동. 당산전화국에서 각각 개통되었다. 이어서 반전자교환기의 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제2기종을 도입하기로 하고 국제 입찰을 실시하여 미국 WE사의 NO.1A ESS가결정되었다. 이후 반전자교환기의 설치가 지속되어 1981년에 모두 18만 회선이 개통되는 등, 반전자교환기를 개통한지 4년 만인 1983년말 현재 100만 회선의 반전자교환기가 개통되어 우리나라 전체 전화 회선수 533만회선의 22.5%가 반전자교환기로 구성되었다.

5. 전전자 교환기

반전자 교환기의 개발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 통화로 계의 디지털화로서 프랑스에서 1970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을 완료하여 전전자 교환기 E-10에 적용, 설치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시내 교환기용 전전자 교환기와 대형 시외 교환기인 N0.4 ESS를 1976년 실용화시켰으며, 캐나다에서도 전전자 교환기의 개발에 성공하여 실용화시켰다. 우리나라에는 1983년 최초로 농어촌용 중소형 전전자교환기인 AXE-10이 도입되어 TDX-1이 개발될 때까지 75만 회선 가량 설치되었으며, 또한 같은 해 혜화전화국에 시외자동교환시스템인 No4. ESS교환기가 설치되어 1987년 전국광역자동화완성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밖에 1989년 대도시용 전전자교환기로 5ESS와 S1240을 서울 중앙전화국과 부산 장림전화국에 각각 설치 운용하였다. 

한편 1976년부터 국산 전전자교환기의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끝에, 1977년 전담 부서인 한국통신기술연구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개발 계획의 수립과 더불어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 1,2차 시험기의 개발을 기반으로 1981년도에 3차 시험기가 제작되어 1982년 7월 용인군 송정우체국에 362가입자를 수용하여 시험 운용하면서 이름을 TDX-1X로 결정하였으며, 이때부터 TDX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TDX-1X의 운용 분석 결과를 토대로 1983년 농어촌용 교환기로 실용화할 1만회선 용랑의 TDX-1의 설계 제작 업무가 수행되었으며, 드디어 1984년 서대전전화국과 유성분국에서 인증시험을 실시하여 상용화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생산, 농어촌지역에 공급하게 되었다. 이후 TDX-1의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농어촌용인 TDX-1A(1988년), 중소도시형 전전자교환기인 TDX-1B(1989년), 대도시용인 TDX-10(1991년)이 연속해서 개발, 보급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1997년 11월에는 국산 전전자 TDX교환기의 시설수가 1천만 회선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전화 적체를 해소하고, 국민의 정보통신 욕구를 충족시키며, 우리나라 전자교환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려 대외 경쟁력 제고에 일조해온 TDX 교환기는 현재 전체 교환시설 중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1999년에는 차세대 주력 기종으로 사용하게 될 TDX-100 교환기가 개발에 성공, 서울 가좌전화국에서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TDX-100교환기는 유선교환기·무선교환기·ISDN용 교환기 등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 비용과 공간을 크게 줄였으며. 특히 수용 능력이 일반 가입자 20만 명, 개인 휴대통신 등의 이동통신가입자 50만 명 등 최대 70만 명에 달해 성능 및 용량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최첨단 교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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