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오기] 세계는 좁아야 한다, 좁혀져야 한다!
나는 참 복도 많은 놈이었다.
해외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에서 아직도 부풀려지고 있는
나그네 길 한 가지만 놓고봐도 그렇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만 보아도
마음 손님이 되어 함께 떠오르기 마련이던 70년대에
그 비행기 안의 실물 손님이 되어 나라 밖을 드나들었다.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3-40개 나라 정도는 드나든 거 같다.
6대륙에 발자국을 내디뎠다.
지금 거의 자유롭다고도 할 정도로
소유의 크기는 물론이고 웬만한 물상에서 훌훌 벗어나
세상살이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돌려세우거나 뒤집어놓고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 의미들을 되짚어나갈 수 있음은
모두가 이 바깥 바람쐬기의 덕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미당 시인은 그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 건 9할 이상이 나라 밖 떠돌기와 훑어보기다.
나에게 사고의 자유를 통한 절대 지성의 자유와
동서양의 대조적 인간론, 곧 관계론적 인간과 존재론적 인간 모두를
손쉽게 통합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그러한 실물 대하기를 통해서였다.
무엇이든 내가 현물을 고집하는 건
확인되지 않은 어설픈 사유를 껴안고 습관적으로 낑낑거리게 마련인
정신적 사치와 낭비를 거부하려는 것인데,
이 또한 나그네들의 등짐 같은 수고가 나에게 되돌려준 크나큰 보상이다.
크나 적으나 현물(現物)주의자로서 현상을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유랑을 막는 일이기도 하지만,
삶의 주변에 머무는 사소한 실물들에 대한 소중함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뒤늦게 실물로 그 감동을 껴안는 일이기도 하다.
일반화된 서정의 재확인 작업도 그런 일들에 속한다.
엉터리로 대중화된 서정의 위약(僞藥) 기능을 되짚어볼 때면 재미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들이 늘어가는 걸 대하게 되면 더 많이는 씁쓸해진다.
그럴 때면 더욱 더 현물주의자를 고집하고 싶어만 지고.....
암튼, 여행처럼 확실한 실물 경험은 없는 듯하다.
특히, 마음마다, 사람마다 자신도 모르게 껴안고 지냈던 경계선들을
여행처럼 단번에 지워버리는 특효약도 없는 것 같다.
마음 속이든, 실물 세계든 그 경계선들을 허무는 건 실물 여행이다.
현물 확인이다. 그런 거 같다.... 사랑까지도.
그랜드 캐년. 사우스 포스트 근방이지 싶다.
7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걸쳐 세 번 갔는데
그때마다 그곳에서 겪은 일들이
내 삶에 끼친 후파장은 제 각각이었다.
사랑, 일, 포용으로 요약된다.
외모부터 깎은 듯이 반듯해야 했던 국제사업단 시절도 있었다.
실무책임자들끼리의 자축 모습처럼 꽤 괜찮은(?) 사업이 국제협력사업이다. (1995)
내 졸문 <오줌싸개에 얽힌 참담한 기억>에 인용된
중국 우루무치 비행기 안에서의 오줌 소동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했다.
맞은편 아가씨들은 침실(?)동료.
상해에서 보름간 열차 여행 중.
그 옆의 사내는 신강성 외사처 담당수행원(부처장).
나는 관광여행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죄다 업무출장 중 짬짬이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미리 별러두었던 곳들을
기를 쓰고 돌아보는 식이어서, 전부 전략적(?)이었다.
하와이에서는 우리의 애니깽 역사를 염두에 두고,
첨부터 사탕수수밭을 노렸다.
하지만, 오하우 섬의 것은 이처럼 초라해서 무척 실망했다.
베트남 역시 미국, 중국, 캐나다와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가장 뻔질나게 드나든 나라 중 하나인데, 막상 기념사진(?)을 찾아보니 별로 없다.
디카 시절과의 격세지감이 새롭다.
95- 96년간의 호치민 시청앞 사진인데,
사진 속의 여인은 호치민 재벌1호 가문으로 시집간 한국 여인이다.
예의상 이름은 덮어둔다. 사진 맨 왼쪽이 촌놈이고, 나머지는 직원들...
수족관 앞의 사진? 홍콩 오션파크의 시월드다. 90년대 중반 무렵.
내가 어느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가
폐어의 일종인 바라쿠다를 잡고 나서,
죽을 뻔한 적이 있다. 80년대 초에.
수족관에서 놈이 보이길래, 사진을 찍으랬더니
바라쿠다를 알아보지 못하는 찍사가 엉뚱한 놈만 찍었다.
삶에서는 일대일로 맞는 사건만 인연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은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타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 소중해지는 이유.
그건 일대일이서가 아닐까.
[Jan.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