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그리고 설거지와 송장 연습
어느 집인들 부부싸움이 없으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판처럼 고성이 총성처럼 오가고, 기물이 포탄처럼 날아다니는 큰 싸움은 없지만 서로 삐칠 정도의 언쟁은 있다.
그나마 그 동안 아주 드문 편인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두서너 달에 한 번 꼴로 대폭 늘었는데 대체로 내가 싸움을 만들어낸다.
우선은 내가 문제아인 탓이 크다. 우리 부부의 언쟁은 거의 대체로 내가 먼저 삐치는 문제아인 탓이고, 아내의 단호함이 거기에 기름을 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원인제공은 아내지만 그걸 언쟁으로 발전시키는 건 내 못된 성질머리다.
먹고사는 일 전반에서 죽이 아주 잘 맞아서 대체로 헤헤거리는 게 더 많은 편인 우리 부부에게 갑자기 부부싸움의 빈도가 잦게 된 건 우리 부부의 복덩이 딸내미 진이때문이다. 딸내미 양육을 두고 보이는 아내의 단호한 교육관과 그걸 훼손하는 듯한 내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아이러니다. 사랑의 진수를 현물로 껴안게 되고나서 우리 부부의 언쟁이 잦게 되었으니......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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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딴 데로 빠졌지만, 나는 아내와 짧은 언쟁을 하고 나면 우선 싱크대를 둘러본다. 설거지 할 게 없나 본다. 그리고, 씻을 게 있으면 암말 않고 그릇들을 씻는다. 천천히.
스펀지 수세미로 빡빡 닦고 여러 번 헹군 뒤 퐁퐁으로 마감처리까지 한다.
그때쯤이면 벌써 씩씩거리느라 돋았던 열기는 바닥 쪽으로 내려가 있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언제 성질 부렸는가 싶게.
참, 내가 생각해도 꼴불견이다. 나잇값은 언제 하나 싶어져서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고, 아내에게 슬슬 알랑방귀를 뀌고 싶어진다. 점수 회복은 빠를수록 좋긴 한데...... 나는 아내의 말마따나 거품 성질이다. 팩 하고 솟았다가 폭 하고 꺼지는데, 그 시차가 좁으니 내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언쟁이 한 5분 정도 지속되면 그건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때는 얼른 밖으로 나간다. 동네 산으로 향한다.
(우리들이 1분 동안 동원하는 단어는 대체로 70단어 근방인데, 그 중 실탄이 십 분의 일 정도만 들어간다고 쳐도 부부싸움 5분이면 30발 정도의 실탄(?) 사격이 이뤄진다. 그 정도 실탄을 맞으면 대체로 상대방의 마음은 벌집구멍(?)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산길을 오르며 혼자서 구시렁댄다. 지는 머 잘 했나, 아니 이렇게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나는 잘 한 게 뭐더라...... 하면서.
산 위에서 하늘을 실컷 바라보고, 주변에서 여전히 의연히 자리를 지키는 있는 나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오래오래 응시하고 난 뒤 내려올 때쯤이면, 모든 게 싸구려가 된다. 언쟁거리도, 나도, 세상도. 그냥 한 줌에 싸잡아서 휴지통에 던져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들일 뿐...... 나는 그렇게 뭉쳐진 빈껍데기들을 똘똘 뭉친 뒤, 길바닥에 놓고 발로 꽝꽝 밟는다. 그 잘난 내 껍데기가 허섭스레기 같기만 해서 더 힘을 주어 밟는다.
그리고, 대문을 살짝 여닫고 현관문도 조심조심 밀치고 들어온다. 물론 그 무렵이면 내가 다시 살금살금 마마님의 눈치를 살필 채비를 갖춘 뒤다. 내일 아침 마마님의 발 마사지는 평소보다 십 분쯤은 더 길어지리라.
싸구려 삐돌이는 항복 문서를 제 발로 잘도 갖다 바친다.
어쩌다가 밤중에 삐칠 일도 생긴다. 그럴 때면 나는 얼른 내 방으로 건너간다. 그러고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어서 사지를 최대한 벌린다. 다빈치의 그 인체형상 스케치처럼.
그러고는 꼼짝 하지 않은 채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주목한다. 우선 열기를 식히고, 그리고 어둠 속에 내 몸을 던진다. 칠흑 같은 어둠이 주는 단절에 내 의식도 꾸겨 넣는다. 내 좁은 우주를 방기(放棄)해 버린다. 일체의 느낌이나 생각을 중지하는 것으로 나를 이 세상에서 잠시 제거해 버린다.
그렇게 한참 있다 보면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만 해진다. 육신은 사지를 벌리고 누워있지만, 나는 없다. 혼령이 없는 육신. 그건 송장이다. 나는 송장이다.
그렇게 송장이 되어 한 시간쯤 지나면, 그 후로는 아주 편안해진다. 식었던 열기도 미지근하게 돌아오고, 방안의 냉기도 새삼 감지되면서 체온과 대비된다. 이윽고 송장에서 사람이 된다.
그 느릿느릿한 회귀. 신기하리만치 심신이 가벼워진다. 언제 덜어진지도 모르게 내 안의 오염물질들이 날아가고 없다. 오기와 아집이 독단이라는 독극물로 변하여 주변을 오염시켰을지도 모르는 그 오염물질들. 그 오염원이었던 내가 어느 사이에 기화되어 버린 듯만 하다. 내가 송장이 되어 죽어버리는 순간에 벌어진 일일까.
하기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가. 살아서 그 잘난 존재들이 죽음 이후로는 얼마나 값싸고 우스운 존재로 급락하는가. 거름으로도 쓰이지 못할 200그램 남짓한 두어 줌의 재일 뿐인 걸.
다시 한 번 암 것도 아닌 것을 절감한 싸구려 삐돌이는 또 다시 베개를 찾아들고 아내 곁으로 슬금슬금 살금살금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내려질 마마님의 처분을 궁금해 하면서.
[June 2003]
[追記] 여러 해전 집단 상담에서 대한 어느 분이 화가 나면 자신은 청소기를 돌린다고 했다.
청소기의 그 소음에 자신의 구시렁거림을 섞어서 돌리다 보면
여러 가지로 득이 있다면서.
남편이 들을 수 없으니 맘껏 해도 되고, 그리고 그 소음 속에 자신의 소음까지
섞어버리노라면, 이따금 날카롭게 들려오는 세상의 말소리들까지도
한낱 소음일 뿐인 생각이 들면서, 화가 풀린다던가.
부부싸움 뒤풀이(?)도 잘하면, 자기 성찰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