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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談]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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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촌사람 2012. 6. 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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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사진이 배꼽으로 나오기도 한다.

 원본은 이곳에 가면 있다. : http://blog.naver.com/jonychoi/20077546782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어린 시절 이 노래는 내게 있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뒷전에서 지칭하는 대유적 수사였다. 때로는 아예 교회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 만큼 요단강의 존재는 하늘같았다. 아니, 처음에는 그게 진짜 하늘에 있는 줄만 알았다.

  김광균의 시에서 성교당(聖敎堂)이라는 낱말을 대하고 화들짝 놀랄 무렵쯤 되어서야, 그게 요르단이라는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강의 이름이라는 걸 깨치게 되었다.


  머리가 커지고 업무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의 여러 나라를 기웃거리게 되었을 때, 마침 하루의 짬이 났다. 일정상 차질 덕분에 생긴, 내 마음대로 해도 좋은 온전한 하루의 빈틈. 어디로 갈까 하는데 그 요단강 생각이 났다. 그러자 다른 것들은 몽땅 후순위로 밀려났다. 1978년 가을쯤의 일이다.

  가방 하나도 없이 카메라와 지도만 달랑 들고 이른 아침에 요르단의 암만 공항에 내렸을 때, 운 좋게도 나는 내 영어를 토막내어 알아듣는 택시 기사와 맞닥뜨렸다. 지도를 펼쳐놓고 내가 둘러보고 싶은 곳을 짚어내자 그는 손가락과 영어 단어 몇 개를 섞어 완벽한 하루의 여정을 그려냈다. 말보다 그림이 몇 배나 빠르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예리코(Jericho)*로 해서 요단강이 있는 조던 밸리 (Jordan  Valley, 요르단 계곡)로 내려오면 사해(死海)에 들를 수 있고 거기서 늦은 점심이나 이른 저녁을 먹고 오면 내가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에도 늦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좋지요, 그렇게 합시다!

  기사가 나를 예리코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을 때, 나는 아테네에 온 줄만 알았다. 크기만 조금 다를 뿐인 파르테논 신전이 절반 정도 남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던 것이다. 주변에는 신전의 받침돌로 쓰였을 법한 큰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큰 건 내가 그 앞에 섰을 때 돌이 내 머리위로 한참 삐져나올 정도로 거대하다. 돌들은 옛 영화(榮華)를 손짐작으로 핥아대는 관광객들의 손길에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근처를 돌아보니 십자군 전쟁 때 몸을 숨기고 화살을 쏘는 데 쓰였음직한 성터도 있다. 아하, 이 동네도 외침(外侵)에 시달리느라 조용하지는 못했겠구나.

  하기야,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 봐도 사정은 엇비슷했던 것이 그곳은  바로 구약시대에 아비에게 술을 먹인 뒤 하룻밤씩 번차례로 동침하여 자손을 퍼뜨렸던 롯의 두 딸들이 뿌리를 내린 곳,  곧 암몬족과 모압족이 남북으로 흩어져 기거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시절 그들은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내내 속깨나 썩였다고 전해지던가 어떻던가.

 

(좌 - 예리코 안내판,  우 - 성터 가는 길.  자료사진으로 최근 모습) 


  토막 영어이기는 하지만 나와 대화가 통한다는 걸 기뻐하던 택시 기사는 나그네를 무조건 환대하라는 이슬람 교리가 아니더라도 동양인과의 접촉이 처음이라는 그의 들뜬 고백 이후로 입과 마음이 몹시 바빠지고 있었다.

  정작 고달파지기 시작한 것은 나였다. 아랍어와 영어를 뒤섞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해 안달하는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나는 서너  번씩 되물어야 했고, 어느 때는 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손짓 발짓까지도 동원하는 그의  운전이 자꾸만 위태위태해지고 있었다. 암만 시내를 벗어나 조금 지나고부터 차는 구릉지대로 들어서서 눈아래로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들을 거느리고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천길만길 낭떠러지 행... 


  요단강이 깃들어 있는 요르단 계곡에 이르러서야, 내 고생과 긴장은 멈췄다. 목을 길게 빼고  내려다보다가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차를  세우고 한참을 서 있었더니 비로소 그는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소회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조용해졌던 것이다. 

  내가 카메라 렌즈를 강쪽으로 들이대자 그는 질겁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며 말리는 그의 손끝을 따라 가보니, 강안(江岸) 위쪽으로 삐쭉삐쭉 솟아있는 금속 물질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위장망을 뒤집어쓴 채 계곡 사이에 은신하고 있던 대포의 포신들이었다. 내가 그곳을 찾았던 당시는 몇 차인지도 모를 중동전쟁의 차수(次數) 사이에 소강상태가 불안하게 끼워져 있던 1978년이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요단강. 그것은 평화나 안식이 숨쉬는 곳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쪽으로 이어지는 해발 천 미터 남짓한 산악지대. 그리고 그 산맥들을 마주하며 요르단 쪽에서도 나란히 뻗어가는 비슷한 높이의 구릉지대. 그  사이에 자리잡은 요르단 계곡. 요단강은 그 협곡을 젖줄 삼아 끊어지듯 이어지며 힘겹게 흘러 내려가고 있는 영양실조의 강이었다.

  요단 강은 변변한 수목지대 하나 없이 내뻗고만 있는 산맥들 사이에 끼여서 옴쭉도 못하는 질곡(窒谷)의 모습으로 움츠러든 채, 인종과 역사가 만들어낸 질곡(桎梏)에 꿰어 기진맥진하고 있었다.

     
             (사진 : 요단강)


   그 초라한 모습이 내 시야에서 부옇게 바래가자, 내 안에서도 물기가 빠져나갔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맥이 빠지고 있었다. 저런 강을 건너서 무엇하랴.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누가 누구를 향해 건너가야만 하랴......

  요르단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내 오른쪽 시야에서 내내 머물던 요단 강은 사해(死海)에 이르자 갑자기 그 꼬리를 내렸다. 죽은 바다 앞에서 자취를 감춘 요단 강은 더 이상 살아있는 물길이 되지 못했다.       


  사해 앞에 선 나는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이후로 내 머리로 자리를 옮겨져 새겨 있다시피 했던 그림들을 문질러 지웠다. 둥둥 떠오른 채 우산까지 쓰고 누워서 책을 보던, 그 교과서 속의 그림을 지워냈다. 그처럼 한가하게 관광을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곳이 결코 아니었다.

  내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과자 봉지에서부터 나무 토막까지 자잘한 쓰레기들로 뒤덮여 있는 사해의 시커먼 물빛깔이 지저분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서북쪽을 올려다보자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요단 강 생각이 났다. 예루살렘이 보이는 곳에서 요단 강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는 요단 강을 어찌 건너란 말인가. 그리고 또 누가 누구를 향해 어떻게, 누가 먼저 건너란 말인가.


                                                      *


   내가 그렇게 맥없이 요단강 앞에서 발길을 돌린 지도 어언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자국 병사의 살해 사건에 격분한 이스라엘은 헬기와 탱크를 동원하여 세 군데를 포격했다.

   띠 모양의 표기 영역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 있는 라말라, 그리고 예리코. 그곳들은 이스라엘 헬기에서 내리쏘는 로켓포와 탱크의 지상포격으로 흙연기가 자욱했고, 그 흙연기들이 티비 화면 밖으로까지 번져나오듯 했다. 지금쯤이면 이삼천 년전부터 이어져 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코 잘리고 눈알이 파인  예리코가 또다시 그 무력한 몸집 한 군데에 흠집을 더한 채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성지이면서 유태교의 본산이기도 한 예루살렘 하나 때문에, 봉합될 듯이 보였던 이-팔 평화협정까지 물 건너가고 유태인과 무슬림은 또 다시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피비린내가 설핏한 그 참극을 보며 전면전을 예측하는 목소리들도 드높다.

  그 와중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예거되곤 한다. 우회하거나 가로질러서 요단강을 건너갔다가 동예루살렘 감옥에 갇히게 된 팔레스타인 과격파 행동대원들.  그들이 풀려나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숫자보다는 파괴적 과격성의 강도에 더욱 신경을 쓴다. 전면적인 중동전의 뇌관 얘기에 그들을 끼워넣기를 잊지 않는다.  유태인의 말살까지 외치며 피를 요구하는 그들의 과격한 증오심을 사람들은 몹시 두려워한다.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그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소망으로 간직했던 것들과 지금 예루살렘에서 되돌아나오는 그들의 거친 발길에 차이는 것들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떤 내용물들로 변질되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코란이나 구약성서에 똑같이 등장하는 가브리엘 천사장처럼, 나란히 달리는 두 산맥 사이에 끼여있는 요단 강가에 삶의 물줄기들을 대고 살아오던 같은 뿌리의 두 민족. 요단 강을 사이에 둔 그들의 그칠 줄 모르는 상극적 대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질긴 갈등의 뿌리들은 혹시 요단 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지금 두 민족이 우선 건너야  할 것은 오랜 역사의 공유를 통해 서로의 마음속에 실핏줄처럼 존재하는 요단 강이 아닐까. 핏빛으로 얼룩진 겉옷들을 벗어 던지고, 서로 뒤섞여 살아내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단순한 지리적 격막에 불과한 산맥들을 한 달음에 건너뛰어 요단 강가로 향하기. 그것이 절실하지 않을까.   

  그 강가에 다시 함께 모여서, 민족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더 할 수 없이 충분히 더러워지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들을 씻어낼 수만 있다면 요단 강은 더 이상 영양실조의 모습으로 비실거리지도 않을 것 같다. 그리될 수는 없는 노릇일까.


  답답한 노릇이다. 혼자의 생각만으로도 한껏 울울해진 나는 다시 뜻없이 웅얼거린다. 인간들이 만들고 지어낸 신들임에도, 그 앞에서 여전히 속내를 몰라 혼미해지고 모호해지는 노랫말 하나를.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12/10/2000]

                                                                                                           - 시골마을

 

     * [註] 예리코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에 속한다. 해면보다 30미터인가 300미터쯤 낮다.  

               그리고, 예리코도 두 개라고 해야 한다.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여리고'가 다르듯이.

               고고학 발굴사에서 빛나는 여리고는 구 예리코에 속한다. "삭개오의 뽕나무"라는

               안내판을 매단 채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그 뽕나무가 있는 곳은 신약에 나오는 여리고.

               (그나저나, 뽕나무가 2000년 이상을 버텨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돈벌이라면 원수의 

               종교적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삭개오 이야기까지도 장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종교들의 속내도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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