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마흔다섯 장의 유서
장 흥 진(시인)
평소 아이들을 대하며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 나도 모르게 잊고 지키지 못하는 게 있다. 그 건 선입견 혹은 편견이라 불리는 정형화된 틀 안에 아이들을 단체로 몰아넣는 일이다. 이 속에 갇히는 걸 아이들은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이 틀을 버리고, 지나치게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아이들의 성향을 다 이해하고 존중해 주려면 이들을 대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마치 흩어뿌림한 모판의 어린 싹들에게 각기 따로 따로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수고와 정성이 따르는 일이다.
교실은 열악한 모판과도 같다. 똑같은 모양의 네모난 책상에 줄맞춰 앉아 있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어떤 현상에 따르는 생각과 느낌, 이에 대처하는 감각과 능력 등 자세히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저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세계를 지니고 있 다. 이 중요한 사실을 무심히 잊고 지내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체육이 두 시간이나 들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금요일이었는데, 지난주에 이어 또 비가 내리니 모두들 볼이 부어 있었다.
당시 5학년이었던 이 아이들은 대부분 맞벌이 부모를 둔, 도시 변두리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었다.
" 수건돌리기 해요."
" 닭싸움해요."
" 그냥 놀아요."
뭘 하면 좋겠는지 묻는 내게 까불며 던지는 제안들이었다.
" 모두 안 돼."
그 때 뒤쪽에서 누가 외쳤다.
" 아! 죽고 싶다! "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 줄 것 같지 않은, 내 딱딱한 태도에 반감을 느끼는 아이였다. 누군지 금방 짐작이 갔지만 모르는 척 나는 아이들에게 백지 한 장씩을 나누어주었다. 다소 불온한 그 아이의 외침을 듣는 순간, 이 막막한 시간을 보낼 기막힌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느닷없는 백지 한 장씩을 받아 들고 멀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나는 달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 다 같이 유서를 쓰자고.
" 저 죽기 싫어요."
아까 그 녀석이었다. 그러나 내 말에 가장 먼저 설득 당한 아이도 그 아이였다.
왁자지껄하던 교실 분위기가 고요히 가라앉았다. 오늘 하루 밖에 살지 못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에게 뭐라고 쓸까? 심각해진 아이들 사이를 서성이며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부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한 자 한 자 부지런히 적어 내려가는데, 답답하기만 했다.
" 선생님은 왜 안 쓰세요? 전 다 썼는데......"
아까 그 아이 준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장난기가 배인 표정, 자주 촐싹대지만 유머감각이 뛰어나 항상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 우리 준이 것부터 들어볼까? "
조금 빼던 준이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분위기를 잡는다고 아이들이 웃었다. 한 마디 띄울만한데도, 준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길 기다려 침착하게 읽기 시작했다.
" 어머니, 아버지 저는 내일 떠나요. 그 동안 속 많이 썩혀드려 죄송해요. 또 슬퍼요.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막내 고모 곁으로 가게 되어 다행이에요. 막내고모가 그 동안 외로웠을 텐데 저를 보면 반겨 주시겠죠? 그리고......누나, 내 꺼.....누나가 다...... 가져......"
준이는 목이 메어 다 읽지 못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도 한참동안 엎드려 있었다.
교실은 어느 새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다음엔 선미 차례였다. 선미 역시 준이처럼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런데 선미는 이미 울고 있었다. 선미 대신 내가 읽었다.
" 엄마, 저는 그 전에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고 보니 그랬던 것이 무척 후회가 돼요. 그 전에 엄마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문 잠가 놓고 혼자 운 적도 많아요. 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그러나 지금은 엄마가 더 불쌍해요. 엄마 너무 많이 울지 마세요. 그리고 제 무덤에 자주 찾아와 주세요. 사랑해요."
그날 중간중간 그야말로 울음바다를 이룬 아이들을 달래며 듣는 유서의 내용은 한결같이 아팠다. 단칸 사글세방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사는 명이는 자기의 저금 통장에 든 돈을 집 사는데 보태라고 썼다. '그 지겨운 학원을 다신 안 다니게 되어 한편으로 기쁘다' 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 엄마 아빠, 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는 싸우지 마세요 ' 라고 쓰기도 했다. 덩치는 가장 크면서 천진한 욱이라는 아이는 자기 무덤에 심겨질 꽃의 이름을 나열해 놓기도 했다. 또 무서우니까 꼭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의 사이에 묻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의 소지품을 태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쓴 아이도 있었다.
사실은 나도 몇 번이나 눈물이 났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이 아이들과 지내왔지만 그 동안 내가 이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었던 걸까 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몰래 울 만큼 열두 살짜리의 가슴을 저미게 하던 일은 뭐였을까? 나는 왜 진작 아이들의 아픔을 읽어 내지 못했을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해 온 나는 과연 교사의 자격이나 있는 걸까? 이런 착잡한 느낌들이 줄을 이었다.
아마 지금쯤 이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난 이 아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 앞에 날마다 마주 선다. 그리고 지금도 자책감을 자주 느낀다.
아이들을 향해 아직 귀가 덜 열려 있는 까닭이다. 좀 더 낮추고 아이들처럼 보드랍고 순정해져야 하리라.
* 오래 전의 어느 사람을 찾으려고 발표자 이름으로 검색하는데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 당시 읽고서,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접어 두었던 것이기도 한 것인데
뒤늦게 대하자, 느낌이 새로웠다.
유서/유언장을 써 보면, 쓰는 이 자신이 아주 크게 변한다.
세 번을 고친 내 유언장도 이곳 게시판 어느 곳엔가에 있다.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알맹이는 완전히 확 바뀌었다. 내가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초보 농사꾼 꿈을 기르며 살아가게 된 것도 그 유언장 덕분이다.
기회 있는 대로 유서나 유언장을 써보는 일처럼 좋은 것도 없다.
(참, 저 글의 작가는 교사 겸 시인이다. 지금쯤은 50대에 접어 들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