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영화 포스터. 작품 수준으로는 별표 3개 정도? 후반부에서 현격하게 흡인력이 떨어진다.>
나의 “동갑내기 과외하기”추억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뜻밖에 되살아날 때가 있다. 타인들에게 떠돌던 인연의 돌기 하나가 툭 건드리며 스치고 지나가는 덕분에.
내게 있어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기억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부표처럼 떠오른 영화 제목을 대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나의 과거사.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잠수하고 있는 그녀와의 해후가 그렇다.
문제아의 표본급에 속했던 나의 고교생 시절. 나는 2학년에 올라가자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 간다고 나서서는 안암동 뒷산으로 갔다. 나무 밑에 누워서 소설책 나부랭이나 읽어대다가, 시간 되면 도시락을 까먹고 꽁초까지 빨아댄 담배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일 즈음해서는 시치미 뚝 떼고 해걸음에 슬슬 기어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가...... 신록이 따듯하고도 시큼한 향기를 내뿜던 5월쯤, 나는 소오각성(小悟覺醒)했다. 검정고시로 전환하기로 작심하고는 내리닫이로 검정고시와 예비고사를 해치웠다. 그리고, 뭐시기 같은 학교에 원서를 냈다. 때마침 전과목 입시로 변경한다고 입시를 몇 달 앞두고 느닷없이 엄포를 놓았던 그 몹쓸 국립대학교에다 겁도 없이......
오기로 한 짓이었다. 그런데, 입시에 실패하면 내가 시골로 내려가 공부하고 있던 암자의 그 시커먼 해우소에 고개를 박고 똥물을 들이키며 생을 마감하리라고 내가 나에게 겁을 줬던 게 주효했던지, 아님 갑자기 전과목으로 바뀌는 바람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겁먹고 K대니 Y대니 하는 데로 죄다 몰린 덕분인지, 요행히도 합격자 발표지에 내 이름이 끼여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동기생들이 빡빡머리로 책가방 들고 다닐 때, 물들인 군복 하나 걸치고 흰 고무신 질질 끌면서 담배 한 대 꼬나물고 거리를 활보해도 좋은 대학생 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그 배지 하나의 위세를 믿고 가슴팍을 은근히 내민 채.
0영이를 만난 게 대학 1학년 때던가, 2학년 때던가. 가만 보자. 동기생인 그녀가 재수를 하고 있을 때였으니 내가 2학년 때인갑다. 같은 서클에서 활동하던 한 학번 아래의 가정대 여학생 0숙이가 친구라면서, 같은 부산 출신의 아가씨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녀가 바로 0영이었다.
(0숙이와 함께 활동하던 그 서클은 데모전문(?)이라 할 만큼 독기 서린 서클 중의 하나였는데, 그 바람에 나중에 내 인생행로의 방향이 확 바뀌게 된다. 하지만, 그 서클에 관해서는 그런 서클에 가입할 정도로 주관이 또렷한 여학생과 친구로 지내는 0영이를 그녀가 내게 소개하는 역할로만 한정하기로 한다. 그 만큼 0영이는 당차고 씩씩했다는 말도 된다.)
아무튼 0영이가 내게 맨 처음 고개를 까딱하던 날, 그녀는 내게 대학생이라고 했다. 모 여대 1학년. 그래서 그날 셋이서 술 한 잔을 했던가, 안 했던가.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을 때다. 0영이가 학교로 날 찾아왔다. 0숙이를 만나러 왔는데, 고 기집애가 어딜 빨빨거리고 다니는지 찾을 수가 없다며... (나 역시 되게 빨빨거리고 다닐 때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나를 찾아내느라고 일부러 0숙이 핑계를 댄 듯했다.)
그렇게 해서 두어 번 봤나 했을 때, 0영이가 다짜고짜 내게 말했다.
- 늬. 내 선생님 해라.
- ???
- 나. 실은 대학생 아니다. 0숙이가 다니는 학교 구경하고 싶어서 왔었다. 내도 대학생 되고 자프다. 내년에는 꼭.
그렇게 해서 괴상한 아르바이트,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의 동쪽이라 해야 할 장위동에 살고 있던 내가, 서쪽 끝이라 할 창천동 어름의 그녀 집까지 심방해야 하는 고단한 날들.
하지만, 서너 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다리를 뻗고 앉아서 군고구마를 까먹으면서 0영이에게는 공부를 하라 시켜놓고서, 문제를 푼답시고 고개를 쳐박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그때 공부시간에만은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는데, 누구 생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떨 때는 이따금 공부책상으로 쓰이던 밥상 너머로 0영이의 머리칼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도 했다. 아이쿠야. 벌렁거리는 숫총각 가슴 좀 살려! 어느 때는 공부를 시켜놓고 밖에 나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도 방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멈칫거릴 때도 있었다.
0영이와의 그런 괴상한 속닥거리기 과외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무슨 이유였던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더 빨빨거리고 쏘다니게 되었거나, 아니면 00경찰서 정보과 형사들과 숨바꼭질을 하게 되어서였지 싶다.
겉으로 주고받는 너스레로만 보자면 산전수전 겪었을 듯한 시건방진 젊은 것들로 비치기도 했을 0영이와 나. 하지만, 속으로는 이성 앞에서 새파랗다 못해 파리할 정도로 긴장하던 스무 살 근방의 젊은 것들에 불과했다. 그런 우리는 뽀뽀 한 번도 못해보고, 그냥 속으로만 발발 떨면서 71년의 겨울을 넘겼다. (아 억울한 숙맥 시절이여!!)
그 다음 해. 나는 지독히도 바빴다. 이곳저곳에 꿰인 다리도 다리였지만 그 와중에도 독한 마음으로 재학 중에 달성해야 될 당찬 목표 하나를 남들 모르게 세워놓은 터라 나는 짬만 나면 국립도서관이니 남산도서관, 학교 도서관 등의 서가를 뒤져 독서카드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삼천여 장을 목표로.
그래서였던가. 학교의 봄철 축제때 0숙이를 보러 왔다며 내 앞에 얼굴을 내민 0영이를 대강 수인사로 돌려세웠지 싶다. 0숙이로부터 서울의 00대학교 응용미술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지 한참 되었을 때다.
먼 훗날 생각해보니, 그 날 그녀가 입고 왔던 옷은 학생 차림으로는 과하다 할 만치 값비싼 정성이 들어간 것이 확실해 뵈는, 빌로드 질감이 감도는 푸른 색 물실크의 투피스 정장이었다. 요즘도 탤런트 박원숙이가 부잣집 마님 역할로 나올 때면 이따금 걸치는 그런 의상. 0영이는 색깔 맞춘 핸드백까지 들고 있었다.
그걸 본 내가 그때 생각없이 던졌던 말은 이랬지 싶다.
- 야가. 학교 오면서 이게 무신 옷차림이냐. 뚜쟁이 할 일 있나. 늬 요기서 요정 차릴 일 있나? 아참, 늬 내 파트너 해주러 왔나? 내는 파트너가 있어도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 늬 그거 몰랐나?
- ......
축제때 내게 파트너가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지만, 내게 파트너가 있어도 내가 즐길 축제는 실제로도 없었다. 러닝 파트너로만 뛰어달라는 부탁에 쉽게 생각하고 응했던 학생회장단 선거였는데, 학생회장 녀석이 총학생회장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단과대학 학생회장으로 밀린 나는 당연 겸직인 축제준비위원장으로 개회사를 해대야 했고, 내내 설쳐야 했다. 그러므로 애당초 파트너 어쩌고 하는 건 내 안중에도 없었기에 나는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버리고 말았지 싶다. 소갈머리 하나 없는 넘!
그러자 0영이는 교문 쪽으로 돌아서서 허위허위 발걸음을 내딛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 손잡이를 끈 삼아 휘휘 돌리면서. 그게 내가 그녀를 본 마지막 모습이다.
그 뒤 그녀는 진학한 학교에서 대학생활을 신나게 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있다고, 0숙에게서 전해 들었다. 과대표니 뭐니를 맡기도 하고, 부산 출신 남녀학생들의 미팅 주선에 앞장서기도 하면서.
나는 나대로, 0영이는 0영이대로 넘넘 바쁜 인생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뭣 나온다고 내가 그리 설쳐댔는지 모르겠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간간이 부산을 오가면서 0숙이가 살았다는 초량3동을 지나칠 때면 0영이도 묶음으로 생각난다. 맨 처음 내게 고개를 까닥하던 그때도 그녀는 0숙이에게 묻혀왔듯이.
그리고 동갑내기 과외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교사와 학생의 성별구분만 바뀌었을 뿐 했던 짓들은 거기가 거기라고 할 정도의 영화를 보며, 그녀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영화는 좀 과장되기도 하고 흥미 유발을 위해 덧붙여 넣은 에피소드들이 부자연스러워서 다소 껄끄럽기도 하지만) 내 학창시절에 바쁘다는, 잘 준비된 핑계로,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을 한참 세월이 흘러서야 한다. 그것도 잠시.
지금은 그녀도 나이 오십을 가볍게 넘긴 장년의 여성. 어쩌면 할머니가 되어 외손주를 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복스럽게 생긴 얼굴에 너털웃음 한번 시원했던 부산내기 여장부 황0영. 김0숙이의 생사를 모르듯, 그녀에 대한 생각도 막힌 골목길에서 돌아 나온다. 그 자리에서 맴돈다.
부산여고(경남여고?) 출신인 황0영! 자네가 이 글을 볼 가능성은 희박하기 그지없지만 혹시 아니? 동갑내기 과외라는 제목에 혹시 하면서 눌러보기라도 바라면서, 혼자 실없는 웃음 끝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나간 것들이 죄다 곱빼기로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도 <학실히> 늙어 가나보다.
그런데, 참. 공부 시간에만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자고 했던 게 내가 했던 말이냐, 아님 네가 자청해서 그리 하겠다고 했던 거냐? 아무래도 네가 그랬던 거 같은데. 정색하면서 말이야. 하하하. [Nov.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