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는 동안 저자는 책 제목에 대해 몇 번 이야기했다. 자기가 처음 생각한 제목은 ‘대통령의 말’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저자를 설득한 편집자의 노력에 오히려 감사를 표하고 싶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결국 탄핵정국까지 몰고 온 이 겨울. 일단 제목을 보면 책장을 몇 페이지 들춰보게 되는 책 <박근혜의 말>(최종희/ 원더박스/ 2016년) 이야기다.
‘언어와 심리의 창으로 들여다본 한 문제적 정치인의 초상’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를 통해 그의 정치와 심리를 비평한 책이다. 한 인물의 삶과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와 언어심리학에 근거한 분석을 통해, 하나의 ‘평전’이라 해도 무방할 만한 책이 완성됐다. 저자 최종희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대표는 작가이자 우리말 연구자. 5년 동안 역대 대통령들의 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오다가, 유독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꽂혀서’ 집필을 시작했다.
1년 남짓 조사와 연구, 집필에 매진해 2016년 6월 원고를 탈고했다. 책이 출간된 것은 12월 12일이다. 그 반년 사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집어삼켰고, 출간일 사흘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했다. 최종희 작가는 ‘혹시 시류를 틈타 급조된 책 아니냐’는 독자들의 오해가 억울하다. 박근혜의 말, 이전에 대통령의 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연구. 언어를 통해 정치인을 바라보는 경험과 훈련이 부족한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접근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를 ‘언어 성형 정치’로 규정했다. 그리고 ▲ 오발탄 어법 ▲ 영매 어법 ▲ 불통 군왕의 어법 ▲ 피노키오 공주 어법 ▲ 유체이탈 어법 ▲ 전화통 싸움닭 어법의 여섯 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분석했다. 그리고 최종희 작가는 우리 정치와 우리 국민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 번 속으면 속이는 사람의 잘못이지만, 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도 잘못이다.” 무엇이 우리를 속였을까.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속지 않을 수 있을까. 2016년 12월 29일 최종희 작가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통해 그의 정치와 심리를 비평한다
Q 책의 머리말에 “역대 대통령들의 언어 자료를 모으던 중, 유난히 박근혜의 괴상망측한 어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쓰셨습니다. 대통령 언어 자료는 어떤 이유에서 모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출발은 ‘대통령이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었어요. ‘대통령이 써야 할 100마디 말, 대통령이 쓰지 말아야 할 100마디 말’ 이런 식의 책을 구상하고 자료를 모았어요. 하다 보니까 좋은 말-나쁜 말을 따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의 재미로는 살펴볼 수 있겠으나 의미 있는 접근과는 거리가 멀겠다는 생각. 그래서 하나의 언어체계에 대해 다뤄야겠다 싶었죠.
외국에는 정치지도자들의 말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최근에 번역 출간된 <단어의 사생활>을 쓴 제임스 페니베이커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죠. 저도 그런 스타일의 책을 내고 싶었어요. 사실 자료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자료가 제일 많았어요. 그런데 진짜 괴상망측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라서 그것부터 분석하게 됐죠. 이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목부터 가지고 뭐라고 해요.(웃음) 사실 제가 붙이고 싶은 제목은 ‘대통령의 말’이었어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언어에 접근한다는 취지죠.
Q 출간 전부터 불거진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출간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들었습니다.
‘시류를 틈타서 급조된 책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을까봐 그런 거였죠. 오해를 많이 받아요. ‘이미 쓰러진 대통령을 왜 짓밟느냐’ 그러는데, 저도 책을 쓸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 못했죠.(웃음) 2016년 4월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한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때도 자기 탓을 안 했어요. 그걸 보면서 이 정권이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제 글은 거기까지였어요. 그런데 예감이 불행히도 맞은 거죠.
박근혜의 언어로 이루어진 집은 언어 건축에 쓰인 재료부터가 일반인과 전혀 다른 특수성을 지닌다. 박근혜의 언어 형성에 쓰인 낱개의 벽돌들은, 아버지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절대권력자인 부친에 의해서 ‘대통령 자녀용’으로 특별히 주문 제작된 것이어서 일반 언어 건축에 쓰이는 보편적, 통상적 벽돌들과는 전혀 달랐다. 강도, 흡수력, 외관, 성상, 쓰임, 분위기까지. - <박근혜의 말> 51쪽
“언어가 그 사람... 정치인 언어 예리하게 보면 그 정치인이 보여”
Q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이후의 이야기가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박근혜의 말을 알아야 할까요? 무엇을 얻기 위해서.
언어가 그 사람이에요. 언어를 보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데, 우리는 언어를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어요. 매스컴의 책임도 큰데요, 한때를 때우기 위한 가볍고 일시적인 말들만 살아남았어요. 그 사람의 사고와 철학이 담긴 말들을 확인할 기회가 적어졌어요. 사람들은 정치인을 판단할 때 떠도는 말에 많이 의존해요. 정치인의 언어를 공부하려 하질 않아요. 연설이나 슬로건 하나라도 유심히 보고, 일관된 얘기를 하는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맞춰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추상명사를 남발하고 만연체의 문장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뭔가를 가리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고 과시하고자 할 때 그런 말을 많이 써요. 그리고 추상명사를 많이 쓰면 책임질 일이 없어져요.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본 이름이 ‘국민행복캠프’였어요. 행복이 뭔데요? 정의하기에 따라 제각각이죠.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정치인들의 언어를 예리하게 보면 그 정치인이 보여요.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도 미리 다 볼 수 있었던 거예요.
Q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언어 성형 정치’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말에는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어요. 오발탄 어법, 영매 어법, 불통 군왕의 어법, 피노키오 공주 어법, 유체이탈 어법, 전화통 싸움닭 어법까지. 자신의 무지, 금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로서의 유년시절, 최태민과의 관계 등 자신의 모든 것들을 가리기 위해 말을 하다 보니까 언어를 꾸밀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감싸고 포장해도 삐져나오는 게 있잖아요. 그게 전화통 싸움닭 어법으로 나오기도 하는 거고요.
Q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를 방금 말씀하신 여섯 개의 유형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적인 어법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피노키오 공주 어법이에요. 조금만 지나면 뻔히 들통 나는 거짓말을 해요. 제일 큰 거짓말이 최태민에 관련된 거죠.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박근혜의 청와대 외부 단독 일정 보도 137건 중에 최태민 또는 새마음운동 관련 일정이 64건이에요. 두 번 중 한 번은 최태민 관련 일정이었다는 거예요.(1975년 최태민이 만든 대한구국선교단은 1976년 구국봉사단, 1978년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를 역임했다. - 기자 주)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첫 저서 <새마음의 길>(1979년)는 영문 저서예요. 1977년에서 1978년까지 2년 동안 새마음운동 행사장 등에 가서 읽은 격려사 21편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간한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대선 후보 시절 최태민 질문이 나오니까 ‘1975년에 한 번 본 뒤 1977년 야간 진료 병원이 개설되면서 그때서야 다시 봤다’고 말해요.
두 번째는 책임지지 않는 유체이탈 화법.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하는 행위가 훨씬 많아요. 국가 원수로서 하는 행위는 몇 안 돼요. 행정부 수반은 입법부 국회의장, 사법부 대법원장하고 똑같은 위치예요. 박근혜 대통령은 그걸 몰라요. 국회의장도 대법원장도 자기 아래라고, 자기는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책임도 아랫것들이 져야지 자기가 왜 책임지느냐 하는 거죠. 세월호 참사 때 진도를 찾아가서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책임져야 한다”라고 공무원들을 가리켰죠. 그때 딱 한마디만 맨 앞에 붙었으면 좀 좋아요? “나를 포함해서”. 그럼 정말 박수 받았겠죠.
실체 없이 구호부터 남발하고 보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이 먼저 언어에 솔깃해하기 때문이다. 언어에 그 자신이 현혹되어, 번드르르 한 말만 앞세우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스트적 언어 성형 정치가 박근혜식 정치의 근간이다. 이유도 단순하다. 인기몰이용의 그 같은 말들이 유권자들에게 내내 잘 통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유권자를 길들였고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그렇게 길들였다. - <박근혜의 말> 244~245쪽
“언론, ‘박근혜 번역기’식 푸념으로만 박근혜의 말을 이용”
Q ‘우리 국민들은 언어를 통해 정치인을 바라보는 경험과 훈련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와닿습니다. 정치인의 말을 통해 정치인을 보여주는 것에는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저보다 박근혜의 말을 훨씬 더 많이 알겠죠. 그런데도 문제점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어요. ‘박근혜 번역기’식의 푸념으로만, 필요할 때 깎아내리기 위한 재료로만 박근혜의 말을 이용했기 때문이에요. 가벼운 가십이나 한때의 이슈 정도로 치부하고 만 거죠.
Q 박근혜 대통령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우리말을 가장 심하게 파괴한 대통령’이라고 책에서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척점에는 누구를 놓을 수 있을까요?
언어적 차원에서 보면 김대중 대통령, 논리-철학적 차원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리 짧은 말이라도 대통령의 말에는 대통령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대통령의 말에 있어서는 그게 핵심이에요. 두 대통령은 재임 중에, 연설문을 한 번에 통과시킨 경우가 거의 없어요. 철학을 담아내기 위한 고심이에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어를 통해서 권위의 벽을 허문 대통령이기도 하죠.
Q 책을 읽다 보면 글쓴이의 감정이나 주관적인 표현 등도 읽힙니다. 그런 것들이 연구 결과의 객관성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맞아요. 그런 걱정이 굉장히 강했는데, 사실은 거리두기를 한다고 나름 신경을 쓰면서 썼어요. 주관적인 기술들을 많이 솎아냈는데, 그중에 알게 모르게 중립화되지 못한 것도 분명 있어요. 그리고 약간은 의도적인 것도 있는데, 너무 연구보고서처럼 쓰면 사람들이 볼 때 재미가 없잖아요. 약간은 인간적인 냄새도 나야죠.(웃음) 연구자로서 중립을 지키다가도 ‘아 이게 연구만 해서 될 일인가. 실질적으로 이용후생이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독자들을 향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았어요.
Q 책을 읽으면서 박근혜라는 한 인간에 대한 평전 느낌도 받았습니다. 언어와 심리 비평에 초점을 맞춘 평전. 앞으로 어떤 책들을 더 써내실지 기대가 됩니다.
제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언어심리학이에요. 우리나라 언어심리학은 인지과학 비슷하게 바뀌었어요. 심리해석 부분이 좀 덜 다뤄져서 언어를 통한 심리분석이 아주 미미하거든요. 저는 그걸(언어를 통한 심리분석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언어는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에요. 언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좀 자신이 있어요.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도 만든다. 독재자의 언어를 애용하는 사람은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 박근혜가 사용하는 단어, 문장, 어법을 면밀하게 뜯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심리 상태를 국민이 진즉에 알아차렸다면, 한국 정치의 불행은 오늘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 <박근혜의 말> 31쪽
사진 : 신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