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랜더스는 4승 2패로 챔피언에 올랐다.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수성하고 거둔 빛나는 와이어투와이어 승리다. KBO리그 41년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역대급 우승을 일궈냈다. 이번 우승으로 SSG는 전신 SK 와이번스 시절을 포함하면 2007, 2008, 2010, 2018년에 이은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하지만, 이번 우승은 여러 가지로 좀 특별하다. SSG로 간판을 바꿔 달고 최단기간인 2년 만에 거머쥔 첫 번째 타이틀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우승이다.
'와이어 투 와이어'는 통상 골프나 경마, 자동차 경주 등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골프에선 1라운드부터 최종일까지 선두를 유지한 경우, 경마와 자동차 경주에선 출발선부터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외의 다른 종목에서 이 용어가 쓰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개월 이상 이어지는 시즌에서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로야구는 한 시즌을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치르며 144경기를 소화한다.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변수가 많은 종목이기에 '와이어 투 와이어'가 더더욱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것이 바로 SSG의 2022년이었다. 개막전 선발 투수 윌머 폰트가 KBO리그 역사상 전무했던 '9이닝 퍼펙트'를 기록한 것이 역사적 우승을 암시하는 힌트였는지도 모른다.
SSG는 그 길로 개막 10연승을 내달리며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4월 전적이 19승1무5패, 승률은 0.792에 달했다. 그 뒤 5월 15승1무10패(0.600), 6월 13승1무10패(0.565), 7월 16승3패(0.842), 8월 13승9패(0.591), 9월 11승1무11패(0.500), 10월 1승4패(0.250) 등을 기록하면서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그 과정에 숱한 기복과 흔들림 등은 있었지만.
이번 SSG의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 등극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승팀인데도 개인상 부문 1위는 한 사람도 없다. 아래에서 보듯 투수와 타자 중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모두 키움의 투수 안우진(4개 부문)과 타자 이정후(4개 부문)이다. 반면 SSG 랜더스의 경우에는 투수 성적(ERA 기준) 상위 20위까지에서 2위 김광현(2.13), 7위 폰트(2.69) 둘뿐이고, 타자 성적(타율 기준) 상위 20위까지에서도 13위 최지훈(0.304), 14위 박성한(0.298) 둘뿐이다.
2022 KBO 선수 주요 부문 선두
다승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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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자책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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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삼진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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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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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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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점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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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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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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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P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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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S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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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WAR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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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WAR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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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야구의 영문 표기 용어 이해를 돕기 위한 팁: WHIP(1이닝당 주자 허용률. 낮을수록 좋다).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높을수록 여러 사람 몫을 해낸다고 보면 쉽다. 선수의 몸값 산정 지표). OPS(출루율+장타율. 1이 넘으면 우수. KBO 평균은 대부분 0.7대. 1.5에 근접하면 인간이 아니라 신급으로 분류. MLB에서도 약쟁이 배리 본즈가 2004년 기록한 1.422가 딱 한 번의 1.4대 기록이며, 1.3대를 기록한 이는 배리 본즈와 베이브 루스뿐)
그럼에도 SSG 랜더스는 KBO리그 41년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역대급 우승을 이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코리안시리즈는 단기전이므로 시즌 3위로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등을 연속으로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키움이 랜더스에 비해서는 불리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패인이 그것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게임에서의 실책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알려줬다. MVP에 선정된 40살 노장의 활약과 응집력 역할, 그리고 구단주의 진실한 열의, 곧 뜨거운 관심과 열성적인 지원이 팀을 어떻게 변모시키고 이끌어가는지가 저절로 증명되었고, 야구가 그런 모든 것들이 제대로 녹아들었을 때 효능을 발휘하는 팀플레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즉 야구는 결단코 빼어난 선수 한둘의 존재로 승리를 낚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말이 아니라 실물로 활성화되어 있을 때 승리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는 걸 새삼스레 알려주었다.
사진: 우승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선수단. 정중앙이 전 해설위원이던 허구연 KBO 총재
사진: 선수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들 곁으로 달려온 구단주 정용진을 행가래친 일이었다
사진: 40살 최연장 기록으로 시리즈 MVP에 오른 김강민이 기뻐하고 있다. 그다음 기록은 2021년 만 39살(세는나이 41살)에 받은 KT의 고참 박경수. 김강민과 동갑인 추신수가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추신수도 김강민처럼 선수 생활을 이어갈 듯하다. 동갑이자 불알친구인 이대호는 떠나갔어도... 김강민과 추신수는 아직 똥배가 안 나왔다. 딴딴한 몸들이다. .
그 좋은 예가 올해의 MLB 월드 시리즈의 과정과 결과다.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딱 두 가지만 든다. LA 다저스와 양키즈의 몰락이다.
위에서 보듯 올해의 월드시리즈는 아메리칸 리그(AL)에서 양키즈를 격파하고 올라온 휴스튼 애스트로즈와 내셔널 리그(NL)에서 샌디에이고를 누르고 올라온 필라델피아 필리즈 간에 열렸고, 애스트로즈가 4선승으로 비교적 손쉽게 우승컵을 안았다.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게 양키즈와 다저스의 몰락이다. 양키즈에는 올해 선수 전체 중의 MVP 후보로도 꼽히는 애런 저지(92년생)가 있다. 저지는 올 시즌 62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 신기록을 썼다. 양대 리그 통틀어 가장 많은 131타점을 생산했고, 타율 0.311리로 아메리칸리그 2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지난 5일 선수들이 뽑는 MLBPA MVP로도 선정되었다. 그럼에도 선수들 전부가 똘똘 뭉쳐서 고르게 합심한 애스트로즈에 졌다.
LA 다저스의 패배는 MLB를 뒤흔들 대사건이었다. 올해 다저스는 111승 51패라는 전무후무한 승률 0.685를 기록했다(110승을 돌파한 건 MLB 최초). 한편 다저스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맞붙은 샌디에고는 89승 73패로 승률 0.549였고. 그럼에도 다저스는 1승 3패로 승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최고 부자 구단답게 짱짱한 최고급 선수들로 꾸려진 다저스였음에도.
거듭 말하지만 단체 경기로서, 단판 승부가 아닌 5판~7판의 장기전에서는 빼어난 선수,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선수 하나둘이 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원이 한 몸으로 녹아들어 힘을 합쳐야 한다. 손쉬운 예로 랜더스의 오원석은 투수 순위 20위권에도 못 드는 신참급이지만 5차전에서 깜짝 활약을 했고, 그 덕분에 귀한 승수 하나를 보탰다.
월드시리즈를 가볍게 제패한 애스트로즈의 2루수 알투베는 키가 167센티밖에 안 된다. 170대만 해도 단신으로 꼽히는 야구 선수들인데... 그런 키로도 알투베는 팀에서는 최고급 보배에 든다. 공수 양면에서 그의 활약이 없으면 팀의 순위가 떨어질 정도. 경기가 전쟁인 선수들에겐 투지가 화약이고 전력질주가 실탄이다.
5년 전이던 2017년에는 한국의 김선빈(165cm)과 그가 각각 그해의 타격왕으로 선정됐는데, 타율이 각각 0.370과 0.346이었다. 참, 둘은 나이도 어깨동갑으로 김선빈이 33살, 알투베가 32살이다. 잠시 주춤하던 김선빈도 올해 큰 힘을 발휘했다. 비록 팀은 가을야구에서 짧게 명멸했지만... 이 둘의 상세판 이야기는 이곳에 담아 두었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21136644939
사진: 김선빈과 알투베가 동료 선수들과 서 있을 때의 키 차이
[사족] 개인적으로 나는 이번의 가을 야구들에 특별히 감사한다. 살맛 하나 안 나게 하는 이 나라에서 그나마 밥맛이라도 지켜준 것은 야구여서다. 야구를 보면 나라 꼬라지를 깡그리 지워낼 수 있어서 정말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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