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때로는 생채기가 실물로는 상처보다도 더 아프다

유치원으로 간 꼰대의 돌직구

by 지구촌사람 2014. 9. 8. 07:12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때로는 생채기가 실물로는 상처보다도 더 아프다

...<전략>... 때로는 생채기가 실물로는 상처보다도 더 아프다.

그중 하나는 딱지떼기다. 생채기를 들여다보며 얼른 낫기를 기원하기도 하지만 말끔히 낫기도 전에 그 딱지를 들춰보는 바람에 다시 생채기를 만드는 것. 내게는 아주 흔한 경우다. 만져보면 어쩐지 그 딱지가 피부에 들러붙어 있는 이물질로 느껴져서 신경이 쓰이고 자꾸만 그걸 떼어내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 바람에 아픔을 참아내며 덜 나은 딱지를 뜯어 다시 생채기를 만든다. 딱지를 뜯어낼 때의 순간적인 아픔은 꽤 날카롭지만, 후련하거나 시원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따금 새삼스러운 쓰라림으로 돌아오기도 해서 신경들이 그 작은 부위를 중심으로 기립하기도 하고.

생채기에서 딱지를 들어내는 일은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딱지를 만지작거리며 손끝으로 그 이물감을 느끼는 일이나 그 딱지를 들어내는 일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야만 한다. 뜯어내기 전의 그 순간적이고 예각적인 통증에 대한 상상의 몫이 현실적인 아픔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때로는 그 생채기를 애써 외면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생채기는 이따금 당사자에 미치는 자극이 다른 큰 상처에 비해서 오히려 더 자극적일 때도 있다. 특히, 상상 속에서... 큰 상처의 경우 고통은 크지만 일회적일 경우가 많아서 견딜 만하거나,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 쉽게 잊혀진다. 잊으려고 애를 많이 쓴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고통이 워낙 커서 쉽사리 그 상처를 다시 건드리기가 두려운 탓도 있다. 그리하여 큰 상처는 무의식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거나 침수되고 마는 운명적인 것이 되고 만다. 평상시에는 쉽게 건드려지지 않는다. 그 반면, 생채기는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건드려지고, 건드릴 때마다 따갑고 쓰라리고 따끔거려서, 그때마다 여지없이 의식의 표피를 긁어댄다. 당사자를 긴장시키는 횟수로 보면 생채기가 큰 상처를 훨씬 앞선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크든 작든, 그리고 최소한 상흔으로라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남에게 보이기는 더더욱 싫은 그런 상처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가리거나 덮어둔다. 앞섶을 들추고 보면 대부분 상처들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건드리면 아직도 그 아픔이 되살아나는 상처들도 있다. 그리고, 되살아나는 상처는 흔히 더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적지 않은 경우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거나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처럼 널리 껴안고 지내는 것은 큰 상처뿐만이 아니다. 건드릴 때마다 미리 얼굴이 찡그려지는 생채기를 붙안고 지내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홀가분하게 털어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딱지가 앉기 전에 자꾸만 그걸 건드리거나 떼어내서 낫지 않게 만든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딱지에 손이 가는 바람에 늘 생채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붙들고 살아가는 상흔과 생채기들은 대개 사랑과 관련된 것들일 때가 많다. 아픔이 또렷하고 큰 상흔일수록 사랑으로 부서지고 깨지면서 생긴 상처들이다. 오래 전으로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기억들도 있고, 선명한 것으로는 젊은 날의 것들일 경우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 겪었던 한 지붕 밑에서 벌어진 일에서 받은 상처가 가장 큰 일렁임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기를 쓰고 잊으려고 했던 옛날의 상처들까지 일깨워 함께 몰고 오거나, 예전의 상처 위에 덧붙여져 그 크기가 증식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흔하다.   <이하 생략>

 

                                                 - <상처와 생채기> (1999.8.23) 중에서

*전문(全文)은 이곳에 있다 : http://blog.naver.com/jonychoi/20070617307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