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감춰지지 않는 본색 : 너의 정체가 뭐냐?

[차 한잔]

by 지구촌사람 2011. 9. 27. 06:18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재미나게 하는 속담 공부] 감춰지지 않는 본색 : 너의 정체가 뭐냐?

 

며칠 전 아침 배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히 하산하는데, 눈길을 끄는 녀석들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누워 있는 고사목에 매달려 있는 버섯 두 개. 이곳에서 흔히 보는 조개버섯과 달랐다. 상황버섯인가? 하지만,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청장년기(?) 상태인지라, 제대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그 옆에 있는 한 녀석은 그보다도 더 어린 유생(幼生) 상태였다. 버섯의 유생 상태는 다 자란 버섯과 너무나 판이하다. 마치 애벌레를 놓고 곤충을 맞히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나는 유생 상태의 버섯 귀퉁이를 조금 떼어갖고 서둘러 하산했다. 상황버섯이 맞는지 보려고.

 

버섯은 버섯 카페를 10년 넘게 운영해온 전문가조차 아직도 단번에 버섯 이름을 알아내기가 어려운 게 부지기수일 정도로 그 형태나 색상, 변화 양상이 엄청나게 다양하다. 아래의 사진들에서 보이듯, 상황버섯 하나만 해도 색깔이 죄 다르고, 덜 자란 것은 갓 모양과 색깔조차도 판이하다. 다 자란 수탉과 병아리의 모습 차이를 생각하면 딱 맞을 정도로.

 

 

<1. 상황버섯은 이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2. 이름만 보면 흔히 뽕나무에서 가장 많이 나는 듯해도,

     실제로는 참나무, 자작나무 등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계통의 상황버섯이 발견된다.

    색깔로만 보자면 밝은 황색 계통과 암황색. 인공양식은 노랑색 쪽을 한다.>

 

 <사진 오른쪽이 어린 녀석이다. 30년 넘게 자라기도 하는데, 그런 게 특상품.>

 

하여, 전문 서적을 펴놓고 일일이 갓, 대, 받침, 포자의 안팎을 까보고 뒤집어보고 씹어본다. 그렇게 해도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무엇과 거의 흡사하긴 한데 100% 확신이 안 설 때가 많다. 그럴 때 쓰는 말이 동정(同定)이다.

 

표준국어사전에 보면, 동정(同定)의 뜻풀이로 ‘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쓰이는 용도는 위와 같이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완벽하게 확정하기 어렵지만, 그렇지 않다는 확정적인 반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임시로) 무어라고 해두자... 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즉, 잠정적으로 소속/명칭을 부여하는 것을 동정(同定)이라고 한다. 이 단계를 지나, 확정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고정(固定)이라고 한다.

 

법학에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용어는 ‘간주(看做)’다. 법적 문서, 특히 선고문 같은 데에서 ‘본다’라고 나오는 경우도 이 ‘간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데 (영문 법률 서류에서는 이를 ‘regard as'로 표기한다), 동정(同定)과의 큰 차이점은 확증(確證)이나 유효한 반증(反證)이 없으면 그대로 효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즉, 동정은 편의상 임시로 부여하는 사적 작업 용어인 까닭에 대외적인 효력이 없지만, ‘간주’는 인용(認容)/인정된 사실상태의 변경이 확증되지 않는 한 간주 당시의 법적 구속력(강제적 효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註: 그래서, 선고문을 읽어보다가 “~로 보이는 바, 피고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으며”의 문구를 대하고서,

       “판사님 눈에는 그리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시력 좀 높이세요!” 하는 식으로, 멋모르고

       소리부터 지르다간 큰일 난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엄중한 말, 무서운 말인 까닭에.]

                                                          *

동정은 identification의 번역 용어다. 신분확인이나 신분증명서(흔히 ID card로 약칭) 등에서 빈번하게 쓰인다. 인터넷 세상에서 ‘아이디’로 약칭되는 말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이 심리학에서는 ‘동일시(同一視)’라는 뜻으로 쓰인다. 상세하게 정의하자면 항목이 대여섯 가지가 되지만, 쉽게 말하면 타인이나 다른 집단의 특징을 자기의 것과 같은 것으로(동일시) 여기는 정신 조작을 뜻한다. 예컨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같은 것으로 여기거나, 연예인이 입고 걸친 옷/장신구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 그 연예인과 자신이 동급이라고 여기는 것, 겉치레만으로도 그 자신의 속까지도 그럴 듯해지리라는 손쉬운(바보 같은) 착각까지도 거기에 들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담임선생을 어머니로 여기고 집요하게 바라는 아이도 이 동일시의 범주에 든다. 착각 망상의 일종인데, 발전하면 과대망상이 되기도 한다.

 

70년대 인문학을 풍미하던 단어로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이 있었다. identify에서 나온 말로 identification과 그 뿌리를 같이 한다. 분야별로 그 의미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사용하는데 요즘도 역사관 해석 같은 데에서 정체성론이라는 낱말로 끈질기게, 생생하게 살아있다. 요즘 보면, 일본인들의 ‘한반도 정체성론’ 같은 것은 중고교생들의 고정 수행평가 항목이 되어 있을 정도로.

 

이 정체성*/정체라는 말은 사회적 존재로서 더 많이 기능한다. 개인화되면 본색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사전에서는 이 본색을 ‘본디의 특색이나 정체’로 풀이한다. 우리말 관용구인 ‘탈(을) 쓰다'는 ‘1.본색이 드러나지 않게 가장하다. 2.생김새나 하는 짓이 누구를 꼭 닮다.’ 를 뜻하는데, 첫 번째의 뜻 새김이 의미심장하다. [*정체성(正體性)[명]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본색은 변하기 어렵다. 특히 고쳐야 할 나쁜 본색은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뼈를 깎는 수행과정을 몇 년 혹은 몇 십 년에 걸쳐 해낸 이들조차도 본색 고치기를 이뤄낸 이들 숫자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적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아래에 매단 것들이 있을까. 속담*은 인중들의 언행 습속의 집약이자 핵심 요약판일진대......

 

여기서, 우리 자신들에게도 숙제를 한 번 내보자. 내 정체는 무엇일까? 내 본색은? 난 아무리 생각해도 거름으로조차도 제대로 쓰이지 못할 듯하다. 하기야, 그래서 난 일찍이 유언장에다 화장을 해서 이 세상에 폐 끼치는 일이라도 없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Sep. 2011]

 

 

*[속담 몇 가지]

 

1.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 : 본바탕이 좋지 아니한 사람 은 어디를 가나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는 말.

2. 한량이 죽어도 기생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 : 사람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본색이나 행

                                                                 실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다는 말.

3. 도둑의 때*는 벗어도 화냥의 때는 못 벗는다. : 부정한 품행을 삼가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둑때[명] 도둑이라는 누명.]

4. 백장이 양반 행세를 하면 개가 짖는다. : 백정이 잘 입고 점잔을 부려 양반 행세를 하려

                               하나 고기 냄새가 나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겉모양을 잘 꾸미어도

                              본색은 감추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5. 밤에 보아도 낫자루 낮에 보아도 밤나무. : 낫자루는 낮이 아닌 밤에 보아도 낫자루이고,

                                                     밤나무는 밤이 아닌 낮에 보아도 밤나무란 뜻으로,

                    무슨 물건[사람]이고 그 본색은 어디서나 드러남을 비유 적으로 이르는 말.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