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신고 야구 하다
제목만 보면, 왜정 시대쯤의 이야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1970년,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ㅎㅎㅎ.
국립 서울대학교. 공부벌레들의 집합소라는 선입견 때문에
죄다 공부에만 전념하는 듯싶은 그 학교에도 공식대회에 출전하는
운동 팀이 몇 개 있다.
그 중 축구부*가 가장 유명하고, 눈길을 끄는 팀으로는 두 개가 더 있다.
하나는 그 당시 대전 상대가 하나밖에 없던 (성균관대) 미식축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구다.
대외적으로 참가하는 공식 야구 팀이 정식으로 결성된 건 1977년이지만
그 전에도 <총장기 쟁탈 단과대학 대항전>이라는 야구 시합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 총장기 쟁탈전이 열리던 1970년 봄.
그 중 선수 하나로 뛰던 녀석이 신고 있던 게 고무신이었다.
그것도 오른발 한 군데만.
그리고 그 웃기는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선수 선발이라는 게 공 몇 번 던져보고,
포지션 별 수비 공 잡기 테스트뿐일 정도로 급조된 팀이었음에도,
(타격 테스트를 하지 않은 건, 동네 야구 출신들일 것이 뻔한지라...)
그리고 연습 기간도 보름 정도로 짧았음에도
열기들 하나는 참으로 당찼다.
나 역시 그런 동네야구 애호파 중의 하나.
야구 선수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보자마자 달려갔다.
뭐든 모두 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신입생 시절이었다.
그러구러, 25명 명단에 들어 연습에 참가했는데
타격은 괜찮았던지, 출전 엔트리에도 이름이 올랐다.
그런데... 연습 중 휴식시간에 커피 생각이 나서
임시 라커룸으로 쓰던 곳에 놓인 주전자에 가득 물을 담아
손바닥만 한 작은 전기 곤로에 얹은 게 문제의 발단.
(내 딴엔 나처럼 커피광이었던 몇 사람과 함께 마시려고 물을 넉넉히 부었다.)
짧은 휴식 시간인지라, 물이 끓자마자 서두르다가
그 불안한 작은 곤로에서 주전자가 기우뚱 하는 바람에
그 뜨거운 주전자 물을 내 발에 쏟고 말았다.
서둘러 양말을 벗었지만, 이미 내 발등 피부는 허연 색으로 변해 있었고
급히 벗는 양말에 그 피부 조각들이 들러붙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랴... 당시는 발 수술 환자들이 신는 슬리퍼 식
고정 신발도 입원환자에게만 지급하는 것인지라...
바세린 거즈로 떡칠을 한 발등을 붕대로 칭칭 감아 덮고서
고무신을 신었다. ㅎㅎㅎㅎ.
출전 결과?
그래도 다행히 1회전은 이겼는데, 2회전에서 최강팀 공대와 붙어서 탈락.
동료들이 나를 꼬집어 손가락질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수비에서 고무신이 미끌어지는 바람에 실책을 범했지만
그래도 제법 날렵한(?) 송구로 1아웃은 시켰고 (병살 코스였다).
그 뒤로 진루 안타와 2루타를 때려 타점 1점을 올린 덕분이었지 싶다.
(2회전에서 3:2로 졌다... 당시 공대팀이 최강이었는데,
지금도 야구부의 주축은 공대다. 야구부 서클활동 본부가 공대일 정도로...)
그 뒤로 결성된 공식 야구팀의 성적이 궁금들 하실 게다.
2004년도 대학야구 시즌 때까지의 성적이 199패1무1승.
201게임만에 거둔 1승이 바로 그해에
송원대 (고교 야구 선수 출신들로 구성된 1학년생 팀)를 격파(!!!!!!!!!!!!)한 것.
(당시의 승리 투수는 동네야구조차 해보지 않은, 대학에 들어와서야
야구 공을 처음으로 잡아본 체육과 4년생이었다.
직구 최고속이 128킬로에 불과했던... ㅎㅎㅎ)
그 전까지만 해도, 다른 팀들이 이 팀과 만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는 만년 밥(!).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게, 매번 아예 굳어진 자체 선무(宣撫)공작 구호이던 팀.
게임의 승패 기록은 인정하지만, 개인 기록(타율 등...) 등은 야구협회의 공식 집계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무시하기로 미리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팀.
그런 그들이 거둔 최초의 1승이었다.
(그 바람에 스포츠 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ㅎ)
문득 그들의 요즘 성적이 궁금해진다.
알고 나서, 여전히 고개를 주억거려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ㅎㅎㅎ.
그리고, 또 하나. 그때 (2004년) 드물게 2도루를 성공시키고, 장타력까지도 뽐내어
그날의 MVP로 선정되었던 법대 4년생 친구(김영태)의 요즘이 궁금하다.
코리언 시리즈를 맞이하여, 일어서서 보는지, 아니면
티브이 앞에 앉아서 얌전히 그 게임들을 지켜보는지.
혹은 나처럼, 요즘도 500원짜리 동전 두세 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낡아가는 야구 타격 연습장이 눈에 띄면 들어가서
그 동전들을 다 쓰고 나올지도 모를 일.
어쩐지 나와 똑같이 그런 짓을 해대고 있을 것만 같다. ㅎㅎㅎㅎ
어제 끝난 코리언 시리즈를 지켜 보면서
문득 뜬금없이 떠오른 그림들이다. [1 Nov. 2011]
* 1946년에 창단한 서울대 축구부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학축구의 강팀이었다.
전국대회(춘계연맹전) 준우승을 두 번씩이나 했으니까.
(서울대는 체육 특기생 선발이 아예 없다. 축구부는 체육과 학생들이 대체로 주축이 되는데
그들은 수업이 끝나고 모여서 1.5시간 정도를 연습한다. 시간표들이 다 달라서
연습이 끝날 때쯤에야 합류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
길게 적을 수는 없고, 요약하자면
이용수 세종대 교수, 이강석 전 서울체고 감독(이상 77학번), 강신우(78학번) MBC 해설위원,
김종환 중앙대 교수(81학번), 황보관 오이타 트리니타 사장(84학번) 등이 모두 서울대 축구부 출신.
현재 축구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중진 중에 10명이나 된다.
그 중 황보관은 1990년 이태리 월드컵에 출전해서 144미터 짜리 캐논슛을 성공시켜
캐논슈터의 원조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1986년에는 국가대표 선수가 6명이나 포진한
고려대를 대학축구에서 4:1로 꺾어서 매스컴에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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