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그리고 맞장구/대꾸
얼마 전 매스컴을 몹시 시끄럽게 했던 강화도 해병의 총기 난사 사건. 그 사건이 몰고 온 거센 여파 속에 내가 아끼는 후배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부대가 관할에 들어있던 병영 상담관이었지요. (현재는 사단급에 2명씩 배치된 상태. 내년부터는 4명으로 증원됨.)
10여 년 전, 그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안으로는 곪아가는 듯한 자신의 삶에서, 평생 겨누고 지켜야 할 기둥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면서 몹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제법 알려진 상담기관에서 심리치료 분야의 인터넷 성인 상담을 주 1회꼴로 맡아서 2~3년째 봉사하고 있을 때인데, 나는 그에게 심리치료 공부를 기둥 삼으라고 권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학회 난립으로 국가공인자격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그의 적성이나 미래를 고려할 때 가장 적합한 일일 듯해서요. 그 뒤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로 씩씩하게(?) 대학원 해당 학과에 진학했고, 20여 종이 넘는 각종 전문 분야의 보수/신규 교육을 이수한 뒤, 국방부 소속의 해군 담당 병영 상담관이 되어 이제는 고참급에 듭니다. (물론 그 자신의 출렁임이나 흔들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상담 실무에서는 이제 나보다도 훨씬 더 윗길에 속합니다. 그런데도 이따금 상담 관련해서 제 의견을 물어올 때가 있습니다. 대선배님, 선배님 소리를 뒤섞어 붙이면서요. 신병들이 자대에 왔을 때 집체 교육을 하는데, 그때 그들에게 꼭 심어줄 한 마디를 해야겠는데 무슨 말이 좋겠느냐는 식이지요.
군대 생활 경험도 없는데다, 사내들만의 세상에서 유효한 그런 것들에서는 아무래도 같은 사내(?)인 제 말이 더 실감날 듯해서라는 핑계를 매달지만, 그 만큼 애를 쓰면서 하나라도 더 자식 같은 어린 신병들에게, 새 인생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안으로 떨고 있을 사병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일을 해주고 싶어서라는 게 제 눈에도 보입니다.
병사들 모두를 ‘찍히는’ 병사 대신에 사랑받는 사람으로, 즐겁게 병영생활을 해나가도록 도와주려는 의지가 역력했습니다. 하기야, 그 만큼 베풀기와 배려하기가 몸에 밴 사람이긴 합니다. 내가 상담(심리치료) 분야를 적극 권장한 이유가 그래서이기도 하지만요.
(요즘에는 <관심 사병>으로 분류되면 부대 내에서 아예 내놓고 ‘제도적으로’까지 찍힙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는데, 당사자에게도 정말 좋은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때 이 낱말 하나를 던졌습니다. ‘맞장구 혹은 대꾸’.
...또래들이건, 고참이건, 누구와도 1대1이나 소집단으로 대하게 되거든 반드시 상대방 말을 들으면서 맞장구를 쳐라. 고개를 끄덕이든, ‘으음/으흥’을 하든, ‘맞아요’/‘그래요’ 소리를 하든, 맞장구를 쳐라.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겠더라도 대꾸를 해라. ‘그래서?/그런데요?/아, 그래요?’ 식으로도 좋다.
호불호를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중립적인 표현은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반대의 뜻을 드러내고 싶더라도 대꾸를 통해서 하고, 절대 무응답으로 일관하지는 마라. 그건 호불호를 떠나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되고, 그런 게 쌓이면 상대방에게 찍히는 지름길이 된다.
안 찍히는 병사를 넘어서 사랑받는 병사가 되는 길, 그건 아주 쉽다. 맞장구만 잘 쳐도 된다. 맞장구 잘 치는 사람은 나중에 도리어 인기 있는 병사로 나게 된다..., 고 말해줬습니다.
*
내 후배 덕분에 군생활 잘 마치고 간다면서 인사하고 떠나는 아이들도 많답니다. 심지어는 주례까지 부탁해오는 아이들도 있다나요. 부사관이나 고급 장교(사단참모나 연대장들)들도 내 후배 도움을 받아서 밝은 안색으로 돌아와 지내는 이들, 제법 되나 봅니다. 나는 그런 후배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연대장 부인 한 사람도 작년에 우울증으로 자살했습니다.)
들어주기(경청하기)를 통한 관심 보이기, 간단한 대꾸 한 마디로 이어지는 교감대 형성, 맞장구를 통한 공감대 나누기와 껴안기. 한 동아리로 결속되기... 참으로 간단한 일입니다. 돈도 노력도 그다지 많이 소요되지 않는, 아주 지극히 간단한 말 몇 마디 나누기인, 맞장구/대꾸일 뿐인데도요.
이 나라에 알게 모르게 엄청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게 우울증 환자입니다. 우울증 증세를 점검해서 일정 수치를 넘기면 ‘환자’로 분류되는데, 그런 ‘환자’들이 수능 시험 응시자 숫자보다도 많습니다.
제 파주 시절에 도서관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사나이도 고교를 중퇴하고 집에만 머무는 딸과 함께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 환자이고, 이곳에 나와 함께 머물고 있는 작가 한 사람도 2년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출판문화상도 받고, 그의 아들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SKY대학생인데도 말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아침 등산에 그를 끌어내어 함께 하기 시작한 게 이제 4일째 됩니다.)
이런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것. 그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입니다. 제 안(마음/집)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기. 마음문 열기와 좁은 공간(컴퓨터/집)에만 머물지 않기. 그것이 우울증 치료의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첫걸음인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때의 마음문 열게 하기. 그리하여 그를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기. 그게 가장 어려운 첫걸음인데, 이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맞장구입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간단한 말마디로 응수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빙그레 웃어주는 간단한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를 관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응(대꾸)입니다. 교감 나누기와 함께하기의 첫걸음이지요.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포옹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초보적인 절차, 곧 그를 관심하는 일은 그처럼 손쉽게 가능합니다.
우울증 치료와 관련한 긴 말 대신, 자살 이야기로 요약하겠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최종단계(결행)에서 우울증의 최대치(그걸 전문 용어로는 ‘역치(閾値)’라고 합니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수치라는 뜻입니다. )를 보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의존할 사람(해결해 주거나,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여기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 결행에 이르기 전에 맞장구나 대꾸를 통해서 그에게 ‘제대로’ 관심하는 이들만 있어도 그들은 자살을 결행하진 않습니다. 자살 결행은 가속도가 붙은 내리막길 주행이기 때문에, 결행 단계에서 돌려세우는 일은 물리적으로만 가능합니다. 결행 단계에 이르기전에 관심 보이기, 그리하여 손 잡아주기로 이어지는 행보는 자살까지도 막아줍니다.
*
이야기를 줄여야겠습니다. 인터넷 문화에서의 댓글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대꾸 형식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심대한 정신적 상처에서부터 어제 그제 받은 생채기까지, 이런저런 형태로 끌어안고 내색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성격상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는 걸 미덕으로 단단하게 새긴 이도 있고, 아예 나는 본래부터 눈팅족이고 그런 선에서만 머무는 게 내 그릇이야... 식으로 자신을 단정해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응답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신의 방식으로 채택한 응답 방식입니다.
그런 이런저런 방식에 대해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어떤 식으로든 대꾸를 하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상대방의 삶에 관심하고, 상대방을 ‘우리’의 영역에 포함시켜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옹골차게 (혹은, 가린 채) 살아내겠다는 순진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저절로 ‘너’와 ‘나’ 사이에 금이 쳐지게 되는데, 그 금을 손쉽게 지워버리게 합니다. ‘나’와 타인들의 영토 사이에 그어진 금은 발로 쓱쓱 비벼서 없앨 수 있듯이, 이 맞장구나 대꾸 한 마디가 그런 줄긋기 흔적을 금세 없애줍니다.
타인에게 관심하기. 타인의 삶에 관심하여 ‘나’와 ‘너’ 사이의 금을 없애기. 그리하여 손잡아주기, 함께 가기. 그 간단한 시작은 댓글입니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단 한 마디일지라도 그저 맞장구나 대꾸만 해줘도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그런 간단한 일이 바로 나를 상대방이 껴안도록 이끌기까지도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내민 그 간단한 맞장구나 대꾸 한 마디가, 나를 상대방이 껴안는 그런 큰일로 이어집니다. 상대방을 위해 한 일이 그 자신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언제든 진지하게 살아내야 할 목표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간단히라도 대꾸하기. 혹은 한발 더 나아가 맞장구 치기. 그것은 우리 삶에 가장 유효하고도 값나가는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돈도 들지 않고, 아무런 추가 교육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냥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손쉬운 일입니다. 댓글/대꾸 문화가 번지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학교, 직장, 심지어는 가정에서도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유효합니다. 댓글/대꾸 내용이 무엇이건, 타인에게 손 내밀며 관심하는 이들에게 무조건 박수부터 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맞장구와 대꾸. 한 사람의 삶을 바꿔주기도 합니다.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른 이들까지도 밝은 세상으로 돌려세우는 아주 유효한 처방.
그것은 아주 간단한 말 한 마디, 손쉬운 응대의 몸짓, 웃음 하나로도 넘치게 충분한 맞장구와 대꾸입니다. 그걸 받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 그렇다는 걸 그대 자신도 이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마지막으로 얹는 고명 하나. <누구냐 넌?>의 명대사로 오래 기억되는 영화 <올드보이>에는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제가 일상에서 자주 써먹는 것이기도 합니다.
-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Oct. 2011]
[*註] 흔히들 듣게 되는 ‘상담치료사/심리치료사’. 하지만 그 국가공인자격증이 아직은 이 나라에 없다. 국가자격증을 총괄하는 산업안전공단이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는 내주겠다고 한 지 오래인데, 관련 학회들이 난립해서 서로 제 목소리만 높이고 있어서다. (문제 출제를 그곳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기싸움이자 밥그릇 싸움이다.)
하여, 현재는 심리치료 관련 자격증은 모두 민간자격증이다. 국가공무원에 해당되는 직종에서는 그런 자격증으로 취업할 수가 없어서, 대부분이 ‘사회복지사’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자격증 소지자로 제한되고 있다.
물론 아래에 제시되는 다양한 국가자격증이 있기는 하지만, 취업 문호가 현재의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온갖 상담치료 부분에는 취 업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관심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현행 국가자 격증 종류를 아래에 보인다.
-청소년상담사 1~3급. 청소년지도사 1~3급. 사회복지사 1급,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정신보건간호사, 전문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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