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원고지 쓰는 법과 한글맞춤법 규정이 서로 다른 이유
몇 해 전, KBS1의 아름다운 우리말 지키기 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 581회(2015.8.31.)의 달인 도전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지문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올바르게 적으면 이렇게 되는 문장입니다 : 내가 꿰맨 옷을 보고 돈깨나 있어서인지 “애걔, 보잘것없네”라고 말하는 그가 아니꼬워서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이 문제의 정답을 두고 아주 시끄러웠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위에 밑줄을 그어 표기한 부분, 곧 쉼표 뒤의 띄어쓰기였습니다. 당시 도전자가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녀가 실제로 지도해 온 원고지 쓰는 법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당시 그녀는 방송국에서 제시한 정답에 전혀 수긍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 정답은 사전에 국립국어원의 감수를 거쳐서 제시되는 것이기에, 우리말 맞춤법(띄어쓰기)에 관한 한은 최종적인 답변(정답)이라 할 수 있는 것임에도요.
그 당시 도전자가 가장 크게 실수한 부분도 그런 사태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즉 풀이에 도전하기 전 진행자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문제에 보이는 빈칸들은 원고지가 아니라 그냥 띄어 적기의 편의를 위한 빈칸들일 뿐’이라고 강조하곤 했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원고지 쓰는 법대로 적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맞춤법 규정대로 띄어 적으라는 것인데, 그걸 그냥 흘려들은 겁니다.
여하간 당시 도전자가 오해했던 내용은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게 마련인데요. 그 같은 오해의 출발은 두 가지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원고지 쓰는 법으로 알려진 띄어쓰기 방식과 우리말 맞춤법 규정에 있는 띄어쓰기 내용 간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그 첫째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세부 내용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원고지 쓰는 법은 편의상의 관행일 뿐이지만, 우리말 맞춤법 규정은 반드시 그대로 지켜야 하는 강행 규정이라는 것, 곧 맞춤법 규정이 상위 규정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도 있습니다. 즉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였는데,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원고지 쓰는 법은 편의상 유통되어 온 일종의 관행으로서 강제 규정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원고지 쓰는 법이라는 명문화된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용자/작성자에 따라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것도 많습니다. 가장 규범다운 것을 꼽자면 아주 오래 전 ‘문교부’ 시절에 교사용 지침서의 일부 내용으로 편찬된 것 한 가지가 있을 뿐인데, 그 뒤로는 다시 편찬하지도 않았습니다. 강행 규정이 아니라 일종의 참고용 자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고지 쓰는 법이 관행이라 한 근본 이유는 그 실제 쓰임 때문입니다. 이 쓰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활판인쇄(活版印刷)와 식자(植字) 과정을 알아야 이해하기 쉬운데요. 활판 인쇄란 문자를 주로 인쇄하는 볼록판식 인쇄로서 연판(鉛版)/수지판(樹脂版)/사진 철판으로 하는 인쇄도 포함합니다. 식자(植字)란 ‘활판 또는 전산 인쇄에서, 문선공이 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대로 조판함.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고요. 요즘 이 활판인쇄는 죄 사라지고, 극히 일부에서만 활판 공방(工房) 등의 이름으로 특수 목적(용도)로 소량씩 제작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를 아크릴 사진판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인쇄를 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글자나 기호 하나하나를 네모기둥 모양의 금속 윗면에 볼록 튀어나오게 새긴 것(그것을 ‘활자’라 함)을 일일이 뽑아내어 판을 짠 뒤에(그것을 ‘조판(組版)’이라 함), 판이 만들어지면 그 판을 이용하여 일일이 지형(紙型. 연판(鉛版)을 뜨기 위하여 식자판 위에 축축한 종이를 올려놓고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서 그 종이 위에 활자의 자국이 나타나게 한 것)을 뜨고 그 지형을 다시 연판[鉛版. 활자를 짠 원판(原版)에 대고 지형(紙型)을 뜬 다음에 납/주석/알루미늄의 합금을 녹여 부어서 뜬 인쇄판]으로 만든 뒤 그 연판을 인쇄기에 걸어서 인쇄를 했습니다. 그래야 활자가 닳지 않았고, 연판을 걸고 고속 회전을 시켜야 인쇄 능률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전의 활판 인쇄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습니다 : 식자/문선 →조판하기 →지형 만들기 →연판 제작 →인쇄기에 연판 걸고 인쇄하기. 하지만, 지금은 식자/문선/조판을 컴퓨터로 하고, 지형과 연판 제작 과정은 아크릴 사진판 작업으로 대신합니다. 이 과정 전체를 ‘편집’이라 하는데 요즘은 출판용 ‘디자인회사’라는 곳에서 하거나, 대형 출판사에서는 디자인실에서 합니다.
예전에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뽑아서 조판을 하는 사람을 식자공(植字工) 또는 문선공(文選工)이라 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활자)를 판에다 심으니 식자공이라 했고, 맞는 활자를 골라 뽑는다고 해서 문선공이라 한 거죠. 지금은 컴퓨터 키보드가 아주 간단하게 해냅니다. 띄어쓰기는 그 키보드 작업자의 몫이 되었고요.
이 식자공/문선공들은 활자를 골라 뽑을 줄은 알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띄어 써야 하는지를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띄어쓰기까지 생각해서 작업하려면 작업 능률이 엄청 느려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들의 작업 편의를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게 원고지에 글자를 써 넣는 것이었습니다. 식자공/문선공들은 원고지에 써 있는 대로만 활자를 골라 배치하면 되니까, 띄어쓰기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요. 원고지 쓰기가 번지게 된 건, 이처럼 식자공/문선공들의 작업 편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처럼 조판 작업의 편의성이 우선이다 보니, 원고지 쓰는 법과 맞춤법 규정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는데요.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원고지에서는 줄의 마지막 칸에 글자와 쉼표/마침표 등의 문장부호가 오게 되면 줄을 바꾸지 않고, 글자 칸에 글자와 그 부호를 그냥 함께 썼습니다. 문장 중간에서도 그런 원고지 쓰기가 용인되기도 했고요. 그러고 나서 그 다음의 글자와만 한 칸 띄우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식자공들은 그걸 제대로 이해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위에 문제가 된 부분 ‘애걔,’가 원고지 마지막 칸에 오게 되면 이렇게 적는 결과가 됩니다 : “애걔,보잘것없네”. 즉 줄이 바뀌면 ‘보잘것없네’의 첫 글자 ‘보’가 다음 줄의 첫 글자가 되어 결과적으로는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은 셈이 되는데요. 문장 중간에 오게 되면 식자공들은 알아서 그 다음 글자와 띄워서 활자를 판에 심었습니다(植).
이와 같이, 문장부호와 글자를 원고지 한 칸에 적어도 되었던 것은 식자공들이 사용하는 활자와도 관계가 되었습니다. 문장부호용 활자들의 가로 길이가 글자용 활자 크기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셔요. 예를 들어 마침표의 경우, 점 하나일 뿐인 활자 크기를 일반 글자 크기만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고, 그 점의 위치도 한가운데에 배치하면 좀 이상해서 왼쪽으로(앞 글자 쪽으로) 바짝 붙인 꼴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식자공들은 작업을 하면서 글자 뒤의 문장부호를 문자와 띄어서 넣지를 않고 바로 뒤에 붙여 넣었고, 그 다음 글자와만 띄웠던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쇄를 해봐도, 글자 뒤에 한 칸을 제대로 띄우고 문장부호를 찍으면 보기에도 아주 어색하지요. 그 예를 여기서 보이면 이렇습니다. 1)이 문장 부호를 글자 뒤에 붙여 찍은 것이고, 2)가 한 칸 띄우기를 한 것입니다 : 1)아참. 그렇군. 2)아참 . 그렇군.
이제 좀 이해가 되시나요? 원고지 쓰는 법에서는 문장부호를 글자와 함께 한 칸에 적어도 되는 이유가요.
한 가지 더, 조금 까다로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라비아 숫자의 경우에서입니다. 십이만삼천 원이란 금액을 숫자로 표기할 때 ‘123,000원’으로 적을 때는 쉼표 다음에 띄어 적지를 않습니다. 맞춤법 규정대로 띄어 적으면 ‘123, 000원’이 되어 보기에도 이상할 뿐만 아니라 빈칸에 다른 사람이 숫자를 적어 넣는 일도 생길 수 있어서 아주 괴상한 숫자 쓰기가 되겠지만요. [참고 : 이처럼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할 때는 쉼표 뒤에서 띄어 적지 않는다는 규정이 현행 맞춤법 규정에는 없습니다. 규정 제정자들이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하여 몹시 아쉬운 부분으로서, 반드시 보완이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위에서 보인 것처럼 숫자를 표기할 경우, 실제로 원고지 쓰기에서는 위에서처럼 7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칸을 무시하고 숫자를 적는데, 서너 칸이면 됩니다. 대체로 두 칸에 숫자 세 개를 적습니다. 즉, 원고지 쓰기에서는 숫자를 하나의 문자로 보지 않지만, 맞춤법 규정에서는 숫자 하나를 하나의 문자로 봅니다. 여기서도 원고지 쓰는 법은 식자공들의 작업 능률 향상용 임의 규정(관행)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활자 크기가 숫자의 경우는 위에서 예를 든 일부 문장부호들처럼 그 가로 길이가 문자에 비하여 절반 내지 2/3쯤으로 훨씬 좁아서 실제 조판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적기 때문입니다. ‘:’과 같은 것은 앞뒤로 띄어야 어울리는 것이어서 활자 크기가 일반 문자 크기와 같기 때문에 원고지에서도 한 칸을 차지했습니다만... 이처럼 원고지 내에 배치된 글자/문자들의 위치가 연판에서 보이는 활자들의 배치 형태라고 보면 맞습니다.
또 한 가지. 원고지 쓰는 법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이 문단의 첫 글자는 빈칸 한 칸을 띄운 뒤 쓰라고 돼 있습니다. 이 또한 조판의 편의를 위한 것인 것이, 맞춤법 규정에는 그런 조항/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반면에 한글 맞춤법 규정*[문교부 고시 제88-1]은 강행 규정입니다.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법규적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지 쓰는 법은 위에서 말한 대로 인쇄 편의상 통용되어 온 관행이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습니다. 대체로 따라야만 하는 것 정도이기 때문에 필자에 따라서는 일부 관행을 벗어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것 또한 허용되고 통용됩니다.
[참고 : 흔히 ‘맞춤법 규정’이 자주 바뀐다는 말을 여러 사람들이 자주 합니다만, 맞춤법 규정은 제정 후 딱 한 번 1988년에 바뀐 이후로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짬짬이 발표하는 표준어 선정 관련 사항 때문입니다. 현재는 분기별로 모아서 표준국어대사전 내용 중 수정 사항을 발표하는데,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작년 말에 발표한 이후로 두 분기 이상을 건너뛰고 있군요.
한 가지 더요. 예전 문교부 시절에는 이 맞춤법 규정 관리가 ‘문교부’ 소관이었는데, <문화보호법>에 의하여 학술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 넘어가면서 그 산하에 있던 국어연구소가 국립국어원으로 승격되었음에도 그 관할이 문체부가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모든 국어 관련 사항은 현재 문체부 장관 명의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선지 교육부에서 관리하는 교과서들에서조차 맞춤법 오류가 엄청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요. 설마 타 부서에서 관리하는 우리말이라 하여 교육부에서 맞춤법 무시하기로 몽니를 부리는 건 아니겠지요?]
참,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맞춤법/띄어쓰기 (규정)라고들 하여, 맞춤법 규정과 띄어쓰기 규정이 별개 규정으로 따로 있는 것으로 알기 쉬운데요. 실은 별도로 띄어쓰기 규정이란 건 없고 맞춤법 규정 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의 <한글 맞춤법 규정> 제2항에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규정을 필두로 제5장에 띄어쓰기 항목을 별도로 두고 있죠. 거기서 각각 조사/의존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보조용언/고유명사 및 전문 용어 등에 관하여 10개 항목으로 나누어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데요. 그 조항들의 제목만 보이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제42항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제43항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제44항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제45항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말들은 띄어 쓴다.
제46항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제47항 보조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제48항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제49항 성명 이외의 고유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다.
제50항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참, 가장 근본 규정이랄 수 있는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표현은 약간 문제적입니다. 실제로 띄어쓰기의 단위가 되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어절’이거든요. 어절(語節)이란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마디를 뜻하는데요.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에서 어절은 밑줄이 그어진 부분들로서, 이 문장은 7개의 어절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럼 ‘문장의/단어는/씀을/원칙으로’에 보이는 ‘의/는/을/으로’는 뭘까요. 알다시피 조사죠. 이 조사는 띄어쓰기의 단위가 되는 단어에 속하지 못합니다.
[참고 : 그럼에도 현재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단어의 정의를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 “철수가 영희의 일기를 읽은 것 같다.”에서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철수’, ‘영희’, ‘일기’, ‘읽은’, ‘같다’와 조사 ‘가’, ‘의’, ‘를’, 의존 명사 ‘것’ 따위이다.’라 하여, 조사까지도 단어에 넣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문제적입니다. 맞춤법 규정 제2항, ‘단어는 띄어 쓴다’대로 하자면 위에 보이는 조사들 역시 띄어 적어야 하니까요. 물론 제41항에서 조사의 띄어쓰기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조사는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조사를 단어로 인정하게 된 데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바로 ‘이다’를 서술격 조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조사는 활용을 하지 못하는데, 이 ‘이다’만은 유일하게 ‘이다/였다/일/인...’ 등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사를 단어로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 바람에 조사 전체에 대한 기존 틀이 깨지는 결과도 되었습니다.]
이 띄어쓰기의 단위인 단어에 속하지 못하는 것들로는 이 문제적 ‘단어’인 조사 외에 접사(접두사/접미사)와 어미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앞말(접두사의 경우는 뒷말)에 붙여 적어야 합니다.
문장부호의 하나이자 위에서 말썽이 된 쉼표에 관한 내용은 맞춤법 규정 부록에 실려 있습니다. <문장부호>라는 제목으로요. 그리고 이 문장부호와 관련된 띄어쓰기는 별도 설명이 없이 용례를 통해서만 밝히고 있습니다.
일례로 이 쉼표의 기능/역할은 15가지나 되는데 뒷말과는 띄어 씁니다. 즉 뒷말과 붙여 적으면 안 됩니다. 손쉬운 예로, 아래의 문장들에서 쉼표 뒤의 것들을 띄어 쓰지 않고 붙여서 적어 보세요. 모두 아주 괴상해져서 쉼표 뒤에서는 띄어 적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예시한 달인 도전 문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 '애걔, 보잘것없네'도 바로 이와 관련됩니다. 도전자는 원고지 쓰는 법을 떠올려 '애걔,보잘것없네'로 붙여 적었기 때문에 오답 처리가 된 것입니다.
-지은아, 이리 좀 와 봐. →지은아,이리 좀 와 봐.
네, 지금 가겠습니다. →네,지금 가겠습니다.
이리 오세요, 어머님. →이리 오세요,어머님.
이 띄어쓰기 용례 중에는 앞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숫자 띄어쓰기에 대한 예시(예 : 123,000)는 빠져 있습니다. 중대한 누락/오류라 할 수 있는데, 하루 속히 제대로 보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요. ‘띄어쓰기’는 한 낱말의 복합어입니다. 한 낱말이기 때문에 ‘띄어 쓰기’로 적으면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 동사형은 ‘띄어 쓰다’일까요, ‘띄어쓰다’일까요. ‘띄어 쓰다’입니다. 우선 ‘띄어쓰다’라는 한 낱말의 복합어가 없기 때문이고(글자 그대로의 뜻밖에 없는 말이라서요), 그 다음은 여기서 ‘띄다’와 ‘쓰다’는 모두 동격의 본동사들이기 때문에 보조용언 붙여쓰기 허용 조항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 : 동격 여부를 쉽게 알아보는 방법은 앞말의 활용을 ‘~(어)서’ 꼴로 바꾸었을 때 자연스럽게 의미가 통하면 동격입니다. ‘띄어서 쓰다’로 해보면 말이 되죠? 그래서 동격. 한편 ‘먹어 보다’와 같은 경우는 ‘먹어서 보다’로 바꾸었을 때 말이 안 되죠? 그래서 뒤의 ‘보다’는 보조용언인데, 맞춤법 규정상으로는 ‘먹어보다’로 붙여 적기가 허용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아/어 보다’ 꼴을 틀을 깰 수 없는 구성으로 규정하여 붙여 적기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먹어 봐(보아)’는 맞지만 ‘먹어봐’는 잘못으로 삼고 있죠.]
‘띄어쓰기’는 한 낱말이라 했습니다. 그 상대어 ‘붙여쓰기’도 한 낱말일까요? 답부터 말하면 한 낱말의 복합어입니다만, 여기엔 좀 부끄러운 과거사(?)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걸 ‘붙여 쓰기’의 잘못이라 했는데, 2012년 이후 국립국어원에서 공지도 없이 슬그머니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았습니다. 그처럼 뒤에서 슬그머니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만. ‘갖은양념’과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예전에는 ‘갖은 양념’의 잘못이었었죠.
한 가지 더요. 이 ‘붙여쓰기’는 ‘띄어쓰기’의 상대어인데다 문법 용어이기도 해서 한 낱말로 삼았는데요. 비슷한 말인 ‘붙여적기’는 어떨까요. 이 말은 ‘붙여 적기’로 적어야만 합니다. 한 낱말의 복합어가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동사형에서는 ‘띄어 쓰다’로 띄어 적어야 한다고 했죠? 따라서 ‘붙여 쓰다/적다’ 역시 띄어 적어야 바릅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대단히 복잡하지만, 한 낱말의 복합어는 한 낱말이므로 붙여 적는 것이고, 복합어가 아니면 띄어 적는다고 생각하면 속 편합니다. 그리고 복합어는 글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거나 전문용어일 때 한 낱말로 삼습니다. ‘띄어 쓰다, 붙여 쓰다/적다’는 모두 글자 그대로의 뜻밖에 없기 때문에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지 않은 말들입니다.
뭘 이처럼 복잡하게 해 놨느냐, 다 붙여 적을 수 있도록 하면 되지 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복합어로 삼으면 임의로 띄어 적을 수 없고 늘 붙여 적어야만 하는 까다로운 고급 말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복합어 숫자는 적은 것이 실제로 띄어쓰기에서는 편리하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 원고지 쓰는 법은 예전 활판인쇄 시대에 식자공/문선공들의 작업 편의를 위해 적용했던 관행일 뿐, 강행 규정은 아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었다.
- 한편 <한글 맞춤법 규정>은 강행 규정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어법에 맞는다.
- 맞춤법 규정과 띄어쓰기 규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띄어쓰기는 맞춤법의 일부분으로 맞춤법 규정 안에 들어 있다(맞춤법 규정 제5장).
- 조사/접사/어미는 홀로 쓰일 수 없어서 앞말(접두사는 뒷말)에 붙여 적는다.
- ‘띄어쓰기’와 ‘붙여쓰기’는 한 낱말의 복합어지만, ‘띄어 쓰다, 붙여 쓰다/적다’는 각각 동격의 두 낱말들이어서, 붙여쓰기 허용 조건에도 해당되지 않아 띄어 적어야 한다.
-溫草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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