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썩열과 ‘헌법 수호’
취임 후 반년을 넘기고도 내내 퇴임 말기 점수인 지지율 30%대의 신기록 수립을 이어가는 윤썩열. 그 윤썩열이 딱 하나 잘하는 게 있다. 걸핏하면 ‘헌법 수호’를 꺼내든다.
쉬운 예로, 윤썩열은 2022.10.20일 자신의 '종북 주사파' 발언에 대한 야당 반발과 관련,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아는 것"이라며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얘기가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덧댔다: "대통령은 헌법상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침 거기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제가 답변을 그렇게 한 것"
조선일보까지도 사설에서(11.11.) ‘단세포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질타한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서도 윤썩열은 ‘헌법 수호’를 꺼내들었다: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 관계를 사실과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로,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22.11.18. 도어스테핑)
이 MBC 사건에 대해 유승민은 아주 간단 명료하게 그 핵심을 찔렀다(전문이 긴 편이어서 여러 군데를 잘랐다).
...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행사장을 걸어 나오며 별 생각 없이 불쑥 내뱉은 이 말이 졸지에 ‘국가안보의 핵심축, 대통령의 헌법 수호, 국민들의 안전 보장’ 같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둔갑했습니다.
대통령의 말대로 MBC의 보도가 정말로 ‘증거를 조작한 악의적인 가짜뉴스’였고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보장을 해치고 헌법을 위반한 행위’였다면, 이 심각한 중죄에 비하여 전용기 탑승 배제라는 조치는 너무나 가벼운 벌 아니겠습니까. [중략] 그리고 MBC와 똑같이 ‘이xx, 바이든, 쪽팔려서’ 자막을 넣어 보도한 140여 개 언론사들은 ‘모두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중략] 말실수는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면 됐을 일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침묵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왜 자꾸 논란을 키워가는 건지 안타깝습니다... (유승민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minyoo)
사진: 윤썩열의 '이 xx'과 '바이든/날리면'과 관련된 후폭풍과 MBC에 대한 졸렬한 처사 관련 시사 만평 중의 일부
윤썩열은 ‘헌법 수호’ 대신 ‘헌법 준수’부터 해라, 선서한 대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제69조에서 명시한 대통령 취임 선서문이다.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할 국민과의 엄중한 약속이다.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모든 국사 처리가 그 범주에 든다. 손쉬운 예로 대통령의 결재 서류에는 행정 각부의 장들이 부서(副署)한다. 최종 책임자가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모든 국정 처리는 헌법 준수를 위해서 하는 일이고, 그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선서 내용에 들어 있는 최고의 가치인 국민의 자유를 자신의 고집대로 해석하고 제약한 대통령들 적지 않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만유불변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힘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민족적 발상을 해대는 대통령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국민과의 엄중한 약속을 잊고 자신이 무소불위한 권력자라는 사실만 챙긴다. 그런 사고방식이 헌법 준수는 잊게 하고 헌법 수호만을 외치게 한다.
'헌법 준수'를 선서용 낱말로만 끝내는 바람에 국민과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했고, 끝내는 자신들의 말로를 지저분하게 색칠했던 대통령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네 대통령(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감옥살이는 지극히 당연한 업보였고 그런 업보를 쌓아가는 건 생각 짧은 대통령 그 자신이다. 그 자신이 뭐라고 꾸며대어 임시변통을 해대도 진실의 거울이 써내려가는 역사의 판결은 대필되지 않는다.
사진: 윤썩열의 미래 예측은 이미 지난 9월에 등장했다. 그의 미래를 근심하는 박근혜의 얼굴이 화가 나 있는 듯도 하다(상좌). 상우 사진은 지난 10월 <윤석열 퇴진운동> 시위(광화문) 때 등장한 현수막. 맨 아래 사진은 보수의 보루인 대구 동성로에 내걸린 현수막.
‘헌법 수호’는 국민들이 해 왔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1961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던진 말이다. 소련의 핵폭탄이 뉴욕에 떨어져도 파리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미국이 정말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은 그 후 프랑스의 핵개발로 이어졌다. 지금 윤썩열이 입에 달고 사는 안보동맹강화 운운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어이없이 순진한) 철부지 발상이다.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턱이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6.25때 북진하여 압록강 물을 떠다 이승만에게 바친 건 국민들이었다. 헌법의 암흑기로 불리던 유신헌법 체제를 종식시킨 것도 국민들이었다. 민주화 요구로 군정 시대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게 한 것도(9차 개헌) 국민들이었다. 헌법을 지켜온 실질적인 골키퍼는 국민들이다. 위정자가 헌법조차도 자신의 발밑에 두려할 때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를 매섭게 일깨워주면서 헌법 가치의 최종 수문장 역할을 해낸 것은 국민들이었지, 일개 대통령 따위가 아니었다.
사시 9수라는 찬란한 역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윤썩열. 한 번은 시험장 아래 족발집에서 술 한잔할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여 시간 전에 답안지를 내고 나왔다. 그 바람에 그는 0.3~0.4점을 잃고 그 과목의 과락으로 그 뒤 5수인가를 더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의 과락 과목이 헌법이 아니기를 빈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의무인 '헌법 수호와 국가 보위'를 규정한 66조도 있지만, 국민과의 엄중한 약속을 규정한 취임 선서 조항(69조)도 있다. 그 모든 것보다도 최우선으로 잊지 말아야 할것은 헌법 제1조 2항이다. 헌법조차도 까마득히 잊었을 윤썩열을 위해 다시 한 번 더 적는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은 일개 대통령 따위가 아니라 국민이란 뜻이라고 부연해 줘야 알려나... 헌법에 무식한, 헌법을 망각하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그의 미래 시간들은 감방 선배 박근혜의 전철 따르기로 채워질 수도 있다. 저 위에 보인 박근혜와의 동시 등장 만평이 이미 지난 9월에 나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길한 예언일수록 잘 들어맞을 때가 많다.
- 溫草 최종희(20 Nov.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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