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추석 선물, 그리고 벌레 먹은 사과

[차 한잔]

by 지구촌사람 2011. 9. 9. 06:17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추석 선물, 그리고 벌레 먹은 사과

 

추석이 다가온다. 명절을 기다리는 우리네 사정(私情)들은 제각각이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인정을 실물로 접하게 되는 데서 오는 떨림일 게다. 얼굴을 대해서,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며 그간의 안부라도 나눌 수 있어서... 식으로.  그 때문에 명절만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괜히

설레고 가슴 안이 훗훗해져 온다.  

 

이번 주 들자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들이 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의 직장

동료도 서넛 있고, 일찌감치 직업전선에서 물러나 칩거한 학교 친구도 있다. (직장 동료들은 하나같이

모두 애틋한 사연을 가진 이들. 학생운동으로 학교를 마치지 못해서 기 죽어 지내던 이. 당시 해외근무는

일종의 특혜이자 큰 뽑힘에 속하는 일이어서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했지만 조건이 불리했던 이들. 그들

모두를 내가 현지에서 윗사람을 꼬드겨 추천/지정하듯 해서 진출시키기도 했다. 그들 중 한 아내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휴가로 들어와 있을 때 인사차 왔다면서 집에 들렀을 때 엄지발가락이 보이는 양말을

감추느라 무진 애를 쓰기도 했던... 암튼 그런 덕분인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을 꼽자면 어떤 씩씩한 여직원이다. 수소문 끝에 내 전화번호를 얻었다며

반가운 목소리로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떨어댄... 그녀가 올해의 수확(?)으로 오롯하다.  

 

그녀 앞에 '씩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데는 까닭이 있다. 입사 면접 당시 그녀는 현역 여군 중사였고,

정복을 입고 나타났다. 군인답게 씩씩했지만, 얼굴은 이른바 맏며느리감이었다. 딱 감 모양으로 홍조를

띠었고, 널찍했으며, 투실투실했다. 한 마디로 푸짐하고 넉넉했다. 여인의 지원 사유는 어머님 봉양이었다.

병환 중이신데, 여군 봉급으로는 제대로 수발 들기 어려워, 당시 그 업계로서는 '댠민국 최고 수준'을

모집 광고에 떡 박아넣은 배짱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어머님을 제대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합격

점수에 차고 넘치게 점수를 주었고, 옆에서 함께 면접을 보고 있던 외국인 임원은 내가 모두 설명을

하기도 전에 내 점수를 보고 따라서 적었다. 그 역시 나만큼이나 얼굴에 웃음을 깔면서.

 

여인은 기대대로 참 씩씩했고, 푸짐했고 착했다. 어려운 일 앞에서도 군인정신(?)을 발휘해서 머뭇거림

없이 해치웠고 뭐든 앞장섰다. 부서별 장기자랑에서는 합창단을 지휘했고, 그 잘 산다는 강남구청

관할 지역에도 판잣집들이 있다는 걸 내게 알려오는 바람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과 의류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도곡동 (당시는 터널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옴쭉달싹하지 못하고 끼어 있는

판잣집 촌에서 어렵사리 소망원을 꾸려가고 있던 젊은 부부들에게 주어지기도 했다.

 

그런 직장을 내 발로 그만두게 된 것은 내가 '친노조파'로 몰려서다. 노조가 생겨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 직장에 어느 날 갑자기 노조설립 신고 승인 공문이 날아들고 노조원들이 회사와

겨루기 시작했을 때... 흐미. 그 노조간부라는 녀석들 모두가 내가 회장으로 있던 산악회 녀석들이었다.

오랜 힘겨루기 과정에서 회사와 노조 모두 지쳐갈 때, 녀석들은 나를 회사측 대표로 지명했고, 나와만

대화를 하겠다고 나왔다. 그 바람에,  노조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 나는 웃기게도 승진 아닌 승진을 해서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밀어내고 한국인 최초로 부러워하는 자리로 부서이동을 했지만, 내

부서의 간부 직원들은 모두 엉뚱한 자리로 좌천하듯 수평이동을 했다. 총무과장을 접객부서 중 최하위

부서로 이동시키고, 독립과를 다른 부서로 편입시켜 기를 죽이는 식으로. 아주 지저분한 보복이었다.

 

내 발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은 그 회사가 처음이자 마지막. 그러면서도 내 뒤에 길게 끌리는 그림자들은

길었다. 내가 특히 아끼던 직원 중 하나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추석선물을 거른 적이 없다.

그 친구의 아버님이 그렇게 가르치고 키웠다. 밀양에서 감농사를 짓는 촌부지만, 아들이 내 부서에

배치되었을 때, 대학원까지 공부는 했지만 사회 공부는 시키지 못했다면서 잘 부탁한다고 찾아오시는

바람에 처음에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그의 부친.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자랐다면 뭐든 죄다

제대로 해내리라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록 주요업무를 영어로 소통해야 하고 문서 역시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거나 영문만으로 적어야 하는 그 분야에서는 남들에게 조금 뒤지긴 했지만...

 

암튼, 내게는 그처럼 회사를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생겼다. (모두 타의에 의한 전직이었다. 한 마디로,

망해서... 그룹사 규모의 대형회사들인데도 숱하게 망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상장회사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10년을 조금 넘는다. 그 만큼 회사들의 수명은 의외로 짧다. 영원불변할 듯한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들조차도. 심지어 내가 머문 곳 중에는 이 나라 최초의 공기업 부도라는 기록을 세운 곳도 있다)

 

요새 추석을 앞두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들이 이어지는 것은 모두 그런 내 불운이 가져다 주는

행운이다. 회사운으로서는 별로지만 내 개인적인 소득(?)으로는 남는 장사라고나 할까. 댓 군데의

조직을 거치면서 이어지는 참 사람들의 냄새. 그것이 명절 때면 더욱 새롭게 풍긴다. 잠시 잊혀졌던

그들의 참살이 모습과 인정이 살아난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목소리이야말로 가장 값나가는 추석선물

중의 하나에 들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어느 아는 이가 내게 전해주고 간 자가발효 진간장(특허품 수준이라고 해도 좋을) 선물을 들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상자 하나를 옮겨달란다. 일부를 냉장고 안에 보관하겠다면서...보니, 낯익은

사과들이다. 막내처남의 처가에서 해마다 보내오는 그 사과. 바로 아래 사진 속의 사과들이다.

 

 

 

 

막내처남 처가는 거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 사과 농사로 4남매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토록

힘들게 지낸 탓일까. 안사돈 분이 올해 검진에서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얼마 전 분당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했고, 회복되는 대로 곧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바깥 사돈도 허리 디스크가 재발되어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분이 해마다 명절이면 사과를 집집마다 택배로 보내온다. 벌써 십 년도 훨씬 넘게 해오신 일이다.

몇 해 전까지는 최상품(最上品)에 속하는 걸 보내왔다. 과장하자면, 어린애 머리통만 한 것들을. 그러다가

낙과 이야기를 하게 됐고, 그것들을 아까워하고 가슴 아파해 하다가, 그런 걸로 바꾸어 보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 뒤로는 저처럼 시장에 내보내지 못할 것들로 보내온다. 

 

하지만,  그 맛이나 크기는 전혀 최상품에 뒤지지 않는다. 달고 시원하고 맛있다. 어제도 올해 비가 많아서

당도가 엄청(?) 떨어졌다는 티브이 보도는 대포였음이 드러날 정도로 달고 맛있었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

할까 고심하다가, 내가 한 마디했다. 싸구려  시쳇말로.

- 여보. 정말이지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말이 맞네그랴. 엄청 맛있구만.

 

아내가 즉시 받았다.

 -'벌레 먹은 사과'보다 더 맛있는 게 있는데 뭐게?

 -몰러유. (내가 알 턱이 있나... 울 마나님 기본 실력이 얼마나 높은디)

 - 몰래 먹은 사과!

 - (허걱)

 

추석 선물은 그것이 얼마짜리이든, 실물의 선물이든, 목소리 듣기이든, 훈훈한 인정들이 담겨 있어서 참 좋다.

사람 냄새들이 거기에 배어 있어서 좋다. 정들이 오가는 게 참 좋다.  특히, 애틋한 사연들이 한 자락씩 깔려

있는 이들끼리 주고 받는 선물일수록 더욱 더. 그저께, 도서관에서 겨우 몇 달 사귄 이가 보내온 포도 한 상자

처럼... 그는 동사무소에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올해 초 환갑을 맞은, 수습 글쟁이다.  병신 소리를 들으며,

얻어맞고 차이며 버텨낸 노점상 10년에 조그만 물장사 터를 마련했다가 이제는 생활이 조금 안정되자, 평생

꿈꿔온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마음 박수를 친다. 매일. 

 

추석 선물 만세!                                                                              [9 Sep. 2011]

 

[덧대기 선물 하나] 아내의 저런 유머 실력 배양(?) 뒤안에는 스승이 있다. 바로 장모님.

                             여러 해 전, 아내가 며칠 누워 있을 때다.

                             (눕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몇 해 만에 누웠다 하면 며칠 간다. 감기 몸살이.)

                             상태를 물어오신 장모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농담을 걸었다.

                             - 이젠 집사람이 좀 시원잖은데 애프터서비스 좀 어떻게 안될까요?

                             장모님 왈,

                             - 이 사람아.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그냥저냥 고쳐 써!!!

 

                             그런 장모님을 올해를 넘겨서까지 뵐 수 있을는지...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