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기 한 토막 (2008. 4. 12 - 4.13)
토요일. 일산행.
진이 엄마 병원 (국립암센터) 들러 방문객들 점심 대접.
손님들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마마님 간단히 보행 운동시키고
파주로 공주 모시고 가서 장모님 댁에서 자다.
다시 일요일. 공주와 아침 일찍 병원행.
케이크 하나로 간단히 마마님 생일 행사 치르다.
엄마가 아픈 걸 알지만, 얼마나 아픈지는 잘 모르는
우리 공주. 집에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통 옆에 살더니만
엄마를 보고 나서는 표정이 밝다. 그나마 다행이다.
병원을 나와 서둘러 서울 교회로 가다.
신정동의 시골교회라 할 수 있는 신성교회.
공주가 서울에 머물 때 다니던 교회인데,
친구들이랑 어린 애들이 많이 있어서
당진으로 내려 오고나서도 가끔 가보고 싶어하는 그곳, 정든 교회
하루 반만에 집에 돌아오니
연탄불 죄 꺼져 있다.
다시 피우느라 번개탄을 넉 장 소비하고도 한 장만 성공하고,
그 다음 날 새벽에야 두 장에 불 붙이기 성공하다.
(연탄이 완전히 꺼져서 화덕이 차가워지니까
불 피우기가 쉽지 않더라.)
* 도시가스관이 부설되지 않은 곳이라 울 집은 기름보일러를 주보일러로
연탄보일러로 보조로 쓰고 있는데, 엄청 비용이 절감된다.
하루 6장, 한 달에 200장 미만인데 8만 원이 안 든다.
연탄과 씨름 중에 꽃배달이 오다.
잘 하면 퇴원해서 집에 있을 줄 알고
생일 축하용으로 내가 시킨 꽃인데...
주인 없이 구석차지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 괜히 울컥해지다.
저녁 때 서둘러 당진시내의 마트로 가다.
계란도 떨어졌고, 진이가 쇠고기 무우국 끓여달라고 해서...
그 바람에 프로모션용 공짜 쫄면을 두 번이나 먹어댄 공주님 덕에
생각도 하지 않았던 쫄면도 샀다. (그 세일즈 아주머니에게 미안해서)
화요일은 공주님의 소풍.
공주가 김밥보다는 주먹밥을 먹겠다고 해서
그 재료도 샀다. 소풍때 갖고갈 음료수와 과자도 고르고.
돌아와서 쇠고기무우국 맛있게 끓였다.
입맛 까다로운 내가 맛봐도 맛있고
무엇보다도 공주가 엄지 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다.
맛이 어떠냐고 묻자.
(아. 이러다가 내가 울 집 국 담당 요리사로 고정되는 건 아닐까.)
방글이와 토토 녀석은 오자마자 밥을 조금 주었지만
토욜 저녁과 일욜 아침 두 끼니나 굶은 게 불쌍해서
저녁때 한 번 더 주었다.
그 사이 도라지 밭과 더덕밭에서 솟고 있는
잡초들을 칼을 이용해서 뽑아냈다.
(잡초만 정확하게 뽑아야 할 때 제일 좋은 게 칼인 거 같다.
호미나 모종삽 같은 걸 쓰면 주변까지 들썩거려져서
자라는 것들에 피해도 가고, 깊이 파는 데 힘도 들지만
칼을 쓰면 쉽게, 깊이 + 쏙쏙 + 정확하게 들어가니까...)
2. 일기 또 한 토막 (2008. 4.14 - 4. 15)
월요일. 동네도서관이(00작은꽃 도서관) 휴관일인지라
4시반에 회사 나서서 학교로 가 진이를 태워오다.
집으로 돌아와 간식으로 케이크 한 조각, 귤 하나, 오징어구이 1/5쪽,
그리고 인디언 밥 세 큰술 대령.
공주 맛있게 먹다.
그리고 줄넘기를 하셨다.
그 사이에 나는 이런저런 마른 쓰레기들 태우다.
화요일 아침에 만들 주먹밥용으로
밥을 좀 되게 미리 해놓고.
우리는 좀 질게 해놨던 밥을 국에다 말아서 먹다.
여전히 맛있다는 소리를 합창하며.
식후 과일 디저트를 꼭 드시겠다고 공주가 말씀하시는 바람에
귤 두 개와 사과 하나를 깎아서 대령하다.
15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하다.
재료를 섞은 뒤 주먹밥을 만들기 전
공주에게 간을 보라고 하자, 아주 맛있다고 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다.
공주에게서 칭찬을 계속 들으니, 이 아비 은근히 기분 째진다.
주먹밥 재료를 두 가지 사왔는데, 볶음멸치가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습한 밥속에서 비린내를 풍길까봐 조금만 넣었고
가쓰오 김자반 재료를 많이 넣었다.
어제 미리 좀 되게 해둔 밥이 아주 적당하게 꼬들꼬들해졌다.
재료를 어른 2인분량으로 조절하여 뿌렸다.
그 전에 홍당무 잘게 썰어 볶아둔 것을 조금 보탰고...
그리고는 잘 섞었다. 물론 그 전에 참기름을 약간 넣었다.
뭉치기 좋고, 찰진 맛을 내니까.
(묵은 쌀을 이용해서 김밥을 만들 때도, 밥을 할 때
물을 부은 다음 참기름을 넣으면, 묵은 내도 안 나고, 밥이 찰지게 된다)
위생장갑을 낀 두 손을 이용해서 경단을 만들듯
재게재게 주먹밥을 만들었다.
공주님이 먹기 좋게 한 입감의 작은 크기로.
그리고, 햄을 썰어 도시락 양옆에 넣었다.
반찬도 되고, 주먹밥만 내리 먹으면 심심하니까.
김을 워낙 좋아하는 공주님인지라, 김을 더 잘게 반토막 내어
옆구리와 위에다 얹었다.
도시락 뚜껑을 덮은 뒤, 스푼과 포크를 두 벌 준비해서
마마님이 버리지 않고 모아둔 비닐 포장을 찾아내어 거기다가 담았다.
그 전날, 엄마 없이 몸 불편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진이 친구 정희를 위해 두 사람분을 싸달라는
우리 공주의 갸륵한 말에 감동했던 아비.
아비가 해 줄 수 있는 건
어른 밥공기로 두 그릇 분량의 밥을 넉넉히 퍼서
그걸로 주먹밥을 해주는 것뿐이었으므로.
사과 하나를 깎아서 따로 작은 통에 담았다.
그리고, 미리 사온 물 한 병과 공주님용 음료수, 그리고 감자튀김을 넣고
거기에 알로에와 포도 주스 한 통을 보탰다.
정희와 둘이서 먹는데, 혹시라도 모자랄까봐 싶어서.
드디어, 진이공주 소풍용 도시락 준비 끝!!!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시계를 보니 7시반이 넘다. 오매...
공주님 머리 곱게 빗어 방울 달고, 핀 세 개 꽂은 뒤
검은 모자 이쁘게 씌워주다.
학교에 도착하니 7시55분. 8시까지 오랬었지.
휴우... 나두 이제 출근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오전 주부 일과 끝.
[피에쑤] 소풍 신나게 다녀오신 울 공주님.
음식맛에 대한 품평에 은근히 신경쓰고 있던 내게
대박 소식을 전해왔다.
"아빠. 애들이 와서 내 꺼 다 먹었어.
제일 맛있대. 햄두 남자애들이 달려들어서 다 먹었어.
나는 겨우 하나밖에 못 먹었어..."
학교 갈 때는 소풍 가방이 무겁다고 낑낑대던 공주님이
올 때는 그 가방 빙빙 돌리며 오셨당!
역쉬, 주부는 해놓은 음식 맛있다고 먹어주는
가족들 바라볼 때가 젤 행복하다더니...
공주님 덕분에 내가 주부곁불 좀 쬈다. ㅎㅎㅎ [15 April 2008]
-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