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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소리 없는 웅혼함이자 황홀한 서러움

유치원으로 간 꼰대의 돌직구

by 지구촌사람 2014. 9. 5.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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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가의 노을은 소리 없는 웅혼함이자 황홀한 서러움이다

내가 그 집을 찾는 이유. 그건 노을 때문이다. 고가의 빼어난 붙박이 흥행 상표는 단연 저녁노을이다. 해질 무렵, 나만을 위해 오붓하게 도려낸 듯한 고가의 창문이 통째로 선사하는 바닷물 길과 그 끝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지는 노을의 장관. 그건 혼자 보기 아까운 황홀경이다. 깊이를 모르는 감흥의 우물이자, 소리 없는 떨림판의 집결지가 된다.

석양에 물든 노을을 대하면 없는 동행이라도 찾아서 옆에 앉히고 싶어진다. 함께 맛보노라면 감동이 몇 배로 더 부풀어 오를 듯하다. 두 친구에게 약속 장소를 고가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목소리에 물방울처럼 생기가 맺혔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게다. 그들도 내 선전(?)에 넘어가 고가 출입을 하는 처지다.

나는 저녁놀이 좋다. 특히 바닷가에서 막힘없이 통째로 대하는 노을 앞에서는 내 가슴이 자꾸 좁게만 느껴진다. 갈비뼈를 들어내서라도, 답답하게 칸막이 쳐진 내 가슴을 활짝 열어 넓히고 싶지만, 내가 겨우 하는 짓이라고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숨을 참는 게 전부다.

그러고는 낙조를 기다린다. 노을이 검붉은 피울음을 토할 때 쯤, 수평선이 그걸 받아 안을 채비를 갖추는 모습을 기다린다. 그 느린 소멸의 장관 앞에서 숨을 멈춘다. 이윽고 잦아든 울음을 말없이 다독이며 한풀 꺾인 뜨거움까지 죄다 조용히 품어 안는 바다. 나는 비로소 그 너른 바다 가슴 앞에 넋을 놓으며 날숨을 쉰다.

바닷가의 노을은 소리 없는 웅혼함이자 황홀한 서러움. 그래서인지 황혼의 노을 바라기는 웅장한 교향곡을 묵음(默音)으로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널브러지는 하늘이 땅에서 숨죽여 흐느끼는가 하면, 그걸 껴안은 바다는 어깻짓 하나 없이 도닥여주는 정겨움이 있다. 한없는 속깊음. 그래서인지 황혼의 노을 바라기는 웅장한 교향곡을 묵음(默音)으로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널브러지는 하늘이 땅에서 숨죽여 흐느끼는가 하면, 그걸 껴안은 바다는 어깻짓 하나 없이 도닥여주는 정겨움이 있다. 한없는 속깊음. [Nov. 2001]

​                                                         -<고가(古家)에서 만난 여자 친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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