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만들어 먹은 곶감
과일 중에서 나는 감을 제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바람이 세게 불면, 이른 새벽에 감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떨어진 땡감을 주워 우려먹기 위해서.
우리 집 식탁에는 늘 두 가지의 과일이 오른다.
디저트가 아니라 아예 고정 메뉴.
그중 넉 달도 넘게 오르는 게 감이기도 하다.
그런 내 버릇을 아는 고마운 이들 덕분에
감 부자 호강을 누릴 때가 많다.
작년에도 그랬다.
그런데, 보내오거나 얻은 감들이 희한하게도
여느 해와 달리 대봉(흔히 '총알 감'이라고도 부르는)이 많았다.
물렁물렁한 연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달게 먹을 수 있는 것.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대봉>
연시를 기다리다가, 늦게 온 녀석들 일부는 곶감 만들기로 전환했다.
진 모친의 아이디어.
깎은 감들을 바깥공기와 제일 많이 접하는 세탁실 위에 매달았다.
난생 처음 만들어보는 곶감.
<요 녀석들은 연시 만들기용>
한 달쯤 지나자, 제법 곶감 태가 났다.
먹어봤다.
우와, 만세!!
난생 처음 자가 제조(?)한 곶감.
그래서였을까,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그 감을 내게 건네 온 이들을 뒤늦게 떠올린다.
그리고, 어린 시절 왕겨 속에 숨겨 두고서
우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자만 먹었던 그 불효를 떠올린다.
당시는 그것이 불효인 줄도 까마득히 몰랐던 철부지 시절을.
내 아버님은 나만큼이나 감을 좋아하셨는데...
부모님 떠나신 지 벌써
30년과 36년이 지났다.
불효의 더께도 날로 두꺼워간다.
그때는 모르고 흘려보냈던 불효일수록 더욱더.
○ 감의 상태/종류별 명칭
감에는 여러 이름이 붙는다. 모양과 상태에 따라서.
반시는 납작해서, 땡감은 떫어서, 단감은 익지 않아도 달아서.
연시와 홍시, 연감은 같은 말이다.
물렁하게 잘 익은 게 연시인데, 그래야만 홍시가 되어서다.
사전에 보이는 말뜻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반시(盤柹) : [같은 말] 납작감(모양이 동글납작한 감).
연시(軟柹) : [같은 말] 연감(물렁하게 잘 익은 감).
홍시(紅柹) : [같은 말] 연감(물렁하게 잘 익은 감).
단감 : 단감나무의 열매.
삽시(澁柹) : 맛이 떫은 감.
땡감 : 덜 익어 맛이 떫은 감.
총알감 : 없는 말. <=품종명 ‘대봉/봉옥’의 세칭.
원산지 : 동북아시아 (중국)
○ 진영 단감의 유래
진영 역장(1923~25년)을 지낸 일본인 하세가와(長谷川)가 진영에서 한국 여성과 결혼한 후 1927년 최초로 재배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하세가와는 일본인 식물학자인 요시다, 사토오, 히까미 등 세 사람을 한국으로 초청. 단감 보급을 위하여 토질과 기후, 풍토 등을 연구 조사한 후 진영의 토질과 산세, 기후 등이 단감 재배에 최적지라고 판단하고 진영읍 진영리 부곡 신용리에 일본산 단감나무 약 100주를 시험적으로 재배한 것이 진영 단감 재배의 시작.
하세가와는 공직자 귀촌 사례의 효시? 아무래도 예쁜 사람 곁에 바짝 붙어서 자연 속에서 일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사랑은 뜻을, 사람을, 깊게 이끈다.
○ 감 관련 시조
널리 알려진 노계 박인로의 대표작인 「조홍시가(早紅柿歌)」는 그가 41세 때인 1601년(선조 34)에 지은 시조로, 가장 깊이 교유하던 한음 이덕형을 찾았을 때 노계를 대접하기 위해 내어놓은 홍시[붉은 감]를 보고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버이를 그리워하며 다하지 못한 효성이 불현듯 생각나서 쓴 작품.
이덕형은 재상까지 지냈지만, 박인로는 명리에 뜻이 없어 지방 말직인 만호와 같은 직위에 머물렀다. 맛있는 것을 보고 불효를 떠올릴 정도였지만 사실 노계는 3년여의 여막(廬幕. 궤연(几筵) 옆이나 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가 거처하는 초막) 시봉도 했던, 지극한 효자였다.
반중(盤中)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 시재에 뛰어나고 걸작도 많이 남긴 노계지만 그는 문관이 아닌 무관이었다.
예전에는 글로 심성을 깊게 갈고 닦은 무관들도 많았다. 충무공처럼...
그런 이들이 그립다.
노계의 고향은 경북 영천. 영천 곶감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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