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 배꼽으로 나올 경우, 원본은 이곳에 있다 : http://blog.naver.com/jonychoi/220300405124
냉이 도사, 냉이 캐러 나서다/최종희
어제 토요일 오후 3시.
일과(?)를 접고, 바람도 쐴 겸 해서
봄 냉이와의 첫 친견례를 가지러 나섰다.
울 집 두 뇨자분덜은
격주 행사인 음악 재능 기부를 위해
모 요양원에서 행사 중이셨는지라, 혼자서.
내 딴에 두 분이 돌아오셨을 때
깜짝 놀라게 해주려는 속셈도 조금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내 점수를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벌어보려는
잔머리가 더 많이 작용했다고 해야겠지만. ㅎㅎ히
네 시 반경 귀가하신다 하기에
그 시간대를 맞추기 위해 3시에 나섰던 것.
30분쯤 훑었을까나.
어렵쇼. 냉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전혀.
15년 경력의 이 냉이 도사를 겁내서인가
아니면 깔봐서인가.
하기야, 좀 이르긴 하다.
이곳 파주 기준으로는 식목일 즈음이 전성기니까.
그래도 있긴 있을 터인데...
다른 곳으로 향하려고 발걸음을 끌고 있을 때
아싸~ 한 녀석이 눈에 띈다.
한 녀석이 있으면 다른 녀석도 있을 터.
냉이 씨는 가볍게 날려서 퍼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곳에
무더기로 자리 잡는다.
그런데 캐고 보니, 봄 냉이가 아니다.
가을냉이.
냉이는 사시사철 나온다.
봄 냉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가을냉이라 한 것은 늦가을에 발아하여
추운 한 겨울을 버틴 것들을 말한다.
가을에 자라서 먹거리로 쓰이는 가을냉이가 아니고.
그런 것들 중에는 혹한을 견디다 못해 잎이 고사한 것들도 있고
다행히도 발아 시기가 더 늦거나 보온이 되는 곳에서 자라나
갈색 잎이긴 해도 그래도 동사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가을냉이1. 추위를 견디다 못해 잎이 고사 상태에 이른 것.
가을냉이 2. 잎의 고사 상태가 1에 비하여 덜 진행된 것.
그래도 잎의 기능은 10% 남짓 정도만 남아 있을 정도로,
혹한과의 싸움을 힘겹게 치른 것이다.
두 번째 가을냉이2를 캐 봤다.
이처럼 혹한을 견딘 것들은 뿌리가 보통이 아니다.
온힘을 다해 양분을 뿌리에 비축해 둔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뿌리 윗쪽에 새 순이 나오고 있다.
나는 녀석을 다시 묻어 주었다.
그런 혹한을 견딘 것은 후손 번식을 위한 생존과의 사투였음이기에
봄이 오면 이내 다시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길 빌면서...
이처럼 혹한을 견딘 것들 중에 잎이 고사할 정도인 것은
새 잎을 내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우리 눈에 띌 때는 여름냉이가 된다.
그리고 지금쯤 새 잎을 달았거나 달기 시작하는 것들이
봄냉이가 되는데, 겨울을 견딘 것들에 비하여 뿌리가 부실하여
냉이 향이 적은 편이다. 대신 먹기엔 부드럽고.
그런 봄냉이는 여름 전에 씨앗을 맺고, 그것들이 다시 가을에 발아한다.
우리가 먹을 때 가을냉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다.
여름냉이는 또 다시 늦가을에 씨앗을 뿌리고
겨울을 나기 전에 눈에 띄면 인간의 먹거리가 되지만
사람들이 냉이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덕분에
무사히 겨울행을 하게 된다.
그 대신 그 무서운 추위와의 싸움을 해야 하지만.
내가 가을냉이로 구분해서 말한 냉이들인데 (집에 와서 씻은 것)
보다시피 이처럼 뿌리가 아주 길다.
혹한 속에 혹시나 자신의 잎이 고사하더라도
뿌리에 저장한 생명력들이 새 봄이 오면 그 힘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애타는 생존 노력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녀석들은 다행히도 잎의 고사 상태가 다른 것들과 달리
비교적 싱싱한 편.
뿌리가 길고 억센 듯하지만
봄에 캐는 가을냉이들은 전부 다 먹을 수 있다.
꽃망울을 달고 있는 냉이와 늦가을에 캐는 나이든 냉이들과는 달리...
(자료 사진 좌 : 뽀리뱅이. 사진 우 : 황새냉이. 출처 : 네이버)
그건 그렇다 치고
냉이를 캐러 나온 놈이 가을냉이만 캘 수 있나.
그래도 봄냉이를 조금이라면 캐 가야 할 텐데...
둘러보니 뽀리뱅이가 제법 눈에 띈다.
그러면 반드시 냉이도 있게 마련인데...
냉이는 냉이와 비슷한 뽀리뱅이나 황새냉이와 같은 지역에서 자란다.
뽀리뱅이 옆에 살짝 어깨를 맞대고 있을 때가 많은데
두 가지가 비슷한 탓에 슬쩍 지나가는 눈길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도 된다.
* 봄 풀 중에 먹을 수 없는 건 거의 없다.
애기똥풀이나 동이나물과 같은 독초를 제외하고는.
뽀리뱅이 역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물기가 좀 많은 편이지만. 말려서 먹으면 그래서 좋다.
황새냉이는 뿌리 향이 냉이보다 강하다.
그래서 매운 것을 싫어하거나 카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황새냉이의 뿌리를 볶아 가루로 만들어 조미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조금만 넣어야 한다. 음식 맛에 매운 향기를 더해준다.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개간한(?) 산 아래 밭 쪽으로
있다!
이것이 봄 냉이의 모습이다.
지난해 뿌려진 씨앗들이 땅 속에서 한 겨울을 넘기고 발아하여
날씨가 조금 풀리자 서둘러 잎을 내고 뿌리를 내린 것들.
하지만 너무 작다. 지름이 2센티나 될까 말까.
어린 봄 냉이의 모습.
이런 녀석들은 캐 봤자 잎도 뿌리도 여려서 씹을 맛도 없지만
냉이 맛이 들어있질 않다.
두어 주일쯤 뒤에 와야 한다.
그때까지 안녕!
(그래도 캘 때 그곳에 있는 것을 싹쓸이 해서는 안 된다.
몇 그루쯤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녀석들이 씨를 맺고, 그 주변에 다시 후손들을 남긴다.
그래야만 우리도 내년에 냉이 맛을 볼 수 있게 된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그래도 제법 된다.
서너 집에서 나눠 먹어도 될 정도로.
냉이는 캐오는 게 일이 아니라 다듬고 씻는 게 더 큰일이다.
캘 때 최대한 흙을 털어줘도
집에 와서 마른 잎 떼어내고 잡티 걷어내고 한 다음에도
열 번 이상 씻어줘야 한다.
잔 뿌리 사이, 잎과 뿌리 사이, 잎 사이에 흙이 끼어 있다.
그럴 때 냉이를 욕해선 안 된다.
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후손을 위한 생명력 보존을 위한 사투의 과정에서
빈 틈이 있으면 동사하거나 양분 비축이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촘촘히 흙과 가까이하려 했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촘촘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현장 어디에서고 빈 틈이 많지 않다. 거의 없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치열하기 사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단순한 삶을 산다.
어제의 저녁 식사.
캐 온 냉이들을 다듬은 뒤 씻고 있는데,
울 집 뇨자분들이 돌아오셨다.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웬일인가 했더니 마트에 들러 한 주일 분의 먹거리 외에
이런저런 것들을 사시느라 그랬다나.
요즘 대형마트에서 통 크게 할인 판매를 한단다.
덕분에 엊저녁 식사 메뉴는 초밥과
'단족발'(단순 가미 후 압착하여 쪄 낸, 담백한 족발의 상표명)
내가 냉이 캐러 간다는 걸 알고 있었나?
암튼,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냉이 보러 나가서 바람도 잘 쐤고... ㅎㅎㅎ.
어제는 이래저래 꽤 많이 남는 장사를 했다.
일도 그런 대로 했고, 냉이도 캐면서 바람도 쐤고,
맛있는 저녁 식사도 얻어 먹었고.
흡족한 일상!
하기야, 인생이 뭐 별 건가.
이렇게라도 마음 빚 없이 살아내는 게 남는 것이지 뭐. ㅎㅎㅎㅎ [Mar. 2015] -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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