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다음 날*의 다짐
- 원시인만이라도 면하자!
- 빈속에 막걸리를 먹지 말자!
- 이를 닦고 자자!
제목만 보고 거창한 걸 기대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녀석한테는 저 정도가 딱 제격.
설날 공식 행사(?)는 대개 서너 시경이면 끝난다.
그 뒤론 각 가정의 개별 행사 차례.
우리 집으로 돌아온 뒤
‘남은 세배는 내일로!’를 외치며
두 ‘뇨자분덜’은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 시각의 찜질방행은 내게 나 홀로 저녁 식사를 뜻한다.
그런데... 여섯 시를 향해가도 배가 고파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만둣국 한 그릇으로도 족한데
(갈비를 여러 대 뜯은 까닭에)
양념꽃게의 유혹을 못 이겨 밥 한 그릇까지 무리했던 탓.
제2호 김치냉장고를 열자
<우국생> 막걸리가 있다. 그것도 두 병씩이나.
그곳에 다른 막걸리도 아닌 한 달짜리
<우국생>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한 해 두어 번이 되기도 어렵다.
오매 땡 잡은 거!!
반가움에 얼른 꺼냈고
그때까지도 배가 부른지라 오징어를 구워 몸통만 공격했다.
만년 노처녀 싱글이 할매를 무릎에 앉히고 안주를 나누면서.
한참 뒤, 투덜거리는 진 모친 잔소리에 잠을 깼다.
안경이나 벗고 자라면서.
돌아보니 등받이 겸용 베개에 내 머리가 걸려 있다.
또 다시 한참 뒤. 새벽녘.
난 약을 찾아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가슴 통증.
난 빈속에 술을 하면 (시원찮은 안주나, 밥을 먹지 않고 술을 하면)
새벽녘에 잠이 깨고, 약을 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에이... 빈속에 막걸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아는 놈이,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다니.
그려. 올 한 해는 그것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내자.
그리고... 우씨. 이라도 닦고 잘 걸.
술꾼 냄새가 잠결에도 선명하잖아.
잘 때 이를 닦는 것이 아침 점심 때의 이 닦기보다도
열 배쯤 효과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것 하나도 못 하다니...
올해는 원시인만이라도 면하자.
빈속에 술 먹지 말고
자기 전에 이는 꼭 닦자. [Feb. 2015]
[참고] ‘다음 날’과 ‘다음날’은 그 뜻이 다르다. 오늘의 다음인 내일, 즉 그다음 날을 가리킬 때는 ‘다음 날’. 그러나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은 ‘다음날’이다. 즉, ‘뒷날/훗날’로 바꾸어 써도 될 경우에는 ‘다음날’. ‘다음날’의 준말은 ‘담날’. ‘그다음’은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자리’를 뜻하는 한 낱말이다. 아래 참조.
그는 약속대로 바로 하루 뒤 다음날 돈을 돌려주었다 : 다음 날의 잘못.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언제 다음 날에 다시 보자고 했다 : 다음날의 잘못.
[참고] 그는 약속대로 하루 뒤인 그 다음날에 나타났다 : 그다음 날의 잘못.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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