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장어 집의 풍경 하나
오랜만에 꼼장어* 집엘 들렀다.
집에 들어가 봐야 나 홀로 저녁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이기도 했고
한 해 넘게 들르지 못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고생들이 하나같이
진학이나 취업에서 잘 풀려나가는 집이기도 해서
가끔 녀석들의 뒷얘기가 궁금해질 때면 들르기도 하던 집이다.
혼자서 차지하곤 하던 예의 그 맨 구석 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여인 둘 앞에 소주병이 하나씩.
그리고 네다섯 살 정도 되는 사내아이가
한 여인의 옆에 앉아 젓가락을 매만지며 놀고 있다.
막걸리를 두어 잔 했을 때다.
옆 자리에서 여인들의 목소리가 건너온다.
술기운이 번졌는지 아까보다 반 옥타브 정도 높아진 목소리.
A : 언니. 지금사 얘기지만 이 애, 아까 얘기하던 그 사람 아이야.
그 벌인가 봐. 얘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도.
B : 허걱
A : 뭘. 어차피 셋 중에 무조건 하나를 골라잡아야 했잖아.
나이도 그랬지만 배 안에 씨가 자라고 있었으니까...
결국 주먹심과 입심이 센 사내한테 잡힌 꼴이지만.
그나저나 언니는 그 사람하고 몇 년째지?
B : 5년 넘었어.
A : 근데 왜 잘 안 돼?
B : 전에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듯하던데, 요샌 토옹...
A : 왜?
B : 그 사람은 가방끈이 길잖아. 난, 바닥이고...
A : 언니. 그런 문제는 아닐 거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마.
그 사람 내가 보기엔 언니가 좋긴 하지만 수준이 안 맞는 거야.
언니의 그 말투, 사고방식... 뭐 그런 것들이 몸 섹스와 다른 거지.
살아보니깐 부부란 건 수준을 떠나서 일단 말귀가 통해야 하는 것 같아.
저울 알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야 하는 거. 언니는 한쪽만 밝히는 거 같어.
언니 나도 지금 40이야. 사십 중반이 넘으면 여자로서는 끝이야.
얼른 아무나 잡아. 언니는 이미 한참 늦었어. 60대 남자들도 40대 여자들까지만
여자로 보는 시대거든...
그날 나는 내가 시킨 막걸리 한 병과 꼼장어 두 마리를 깨끗이 치우지 못했다.
여자들의 목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술기운이 번질수록 목소리가 높아가는 제 어미 옆에서
내내 젓가락을 손에 든 채 마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이의 시선과 마주친 뒤로, 술도 안주도 들어가질 않았다.
언니라는 이가 그 아이 이름을 두어 번 불렀을 때
주위를 맴돌던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고 있었다.
아이의 어미가 아이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소리까지도
맘 놓고 해대는 까닭이 비로소 짐작되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빠져 나왔다.
다른 때는 남은 안주를 싸들고 돌아와 식구들과 함께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내내 여인들의 목소리보다도
멀뚱거리는 아이의 눈동자가 더욱 천진스럽게 따라왔다.
홍수 때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강아지 한 마리의 그림과 자꾸만 겹쳐졌다.
스티로폼 한 장에 위태하게 올라와 있던 여러 해 전의 그 풍경과. [Feb. 2015]
* 꼼장어 : ‘곰장어’의 ‘곰-’을 경음화한 발음으로 부산 지역에서 발원하여 전국으로 번진 말이다. ‘곰장어’는 바다에서 나오는 어종의 정식 명칭인 ‘먹장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바다에서 나오는 장어로는 이 먹장어 외에 ‘붕장어’, ‘갯장어’ 등도 있는데 구분은 외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크기(길이)로 하는 게 가장 빠르다. ‘먹장어(곰장어)’가 가장 작은데 50~60센티 정도, ‘붕장어’는 90센티 내외, ‘갯장어’는 2미터에까지도 이른다. 붕장어가 속칭 ‘아나고’로 불리는 횟감용 생선이며, ‘아나고(穴子)’는 짐작하듯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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