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바닷가 여인, 전라도 여인과 결혼하라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5. 5. 31. 09:06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바닷가 여인, 전라도 여인과 결혼하라/최종희

-‘결핍이 결핍된 시대에 부쳐

 

어저께던가. 방송을 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나왔다. 스웨덴에서 연구한 것인데 아이가 태어난 뒤 탯줄을 4분 정도 늦춰서 자르면 아이의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내용이었다. 대조군과의 철저한 비교를 거친 실증적 연구란다.

 

1960년대에 읽었던 내용 중에, 어느 일본인 학자가 주장한 수유법이 있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면 갓 태어난 아이에게 12~24시간 지나서 첫 젖을 먹이고, 아이들 수유는 절대로 배불리 하지 마라. 아이가 스스로 입을 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어미가 알아서 적당한 때에 젖을 빼라.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주장은 여러 모로 힘을 얻었다. 그리고 아주 잘(?) 자연스럽게 실천되었다. 왜냐. 배불리 먹이고 싶어도 빨릴 젖이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 두 가지 얘기의 공통점은 결핍을 통한 생존력 강화 훈련이다. 탯줄을 조금 늦게 자르면, 따뜻한 자궁 속에서 내내 안전하게 머물다가 엄혹한 세상 밖으로 던져진 아이는 생존을 위해 탯줄에 더 의존한다. 죽어라 매달린다. 그래서 탯줄 안에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철분까지도 빨아들인다. 요즘 고가의 약제 제조 원료로 쓰이는 이른바 제대혈[臍帶血](분만 후 산모와 태아를 연결하는 탯줄에서 얻은 혈액)을 아이가 알아서 흡수하는 것.

 

모자라게 젖을 먹이라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젖이 모자라면 아이는 제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바짝 긴장한다. 촉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발달되고 의식은 차렷 자세가 된다. 그러니 머리가 좋아지는 훈련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이뤄진다. 베풀지 않아서, 넉넉하게 주지 않아서, 이뤄지는 지극히 효과적인 조기 교육인 셈이다.

 

군대의 고급 교육 중에는 <생존법>이란 과목도 있다솥 없이 밥 지어 먹는 법, 식수가 없는 무인도 바닷가에서 식수를 만들어 먹는 법, 흙탕물 간이 정수법... 등 여러 가지다. 일반인들이 알아둬도 아주 쓸모 있는 그런 것들이 적지 않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방식들을 찾아내게 된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 결핍된 상태를 겪었거나 겪게 될 경우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존을 위해 인간이 머리를 쥐어 짜 낸 덕분이다. 늘 가까이 있는 솥 하나, 손만 뻗으면 실컷 먹을 수 있는 물이 없는 경우를 겪어본 이들이 찾아낸 생존법.

 

*

정치계의 거두이면서도 가사문학의 대가로 우뚝 선 천재 문인 송강 정철, 시가 문학의 완성자 격인 고산 윤선도. 이 두 분의 고향이자 뿌리 쉼터는 각각 전남 담양과 보길도다. (송강은 태어나긴 서울에서 했지만 가세가 기울어 낙향한 아버지 덕분(?)에 거기서 자라면서 기대승 등과 같은 거유들을 멘토로 삼을 수 있었다.)

 

이런 고색창연한 분들 말고, 내 문학의 자궁이라 할 수 있는 선배들로 두 분이 있는데 소설가 이청준(1939-2008) 님과 평론가 김현[1942-1990](필명. 본명은 김광남 교수)이 그분들이다. 이 두 분의 고향은 각각 전남 장흥과 진도. 그러고 보니 이 두 분과 엇비슷한 연배의 김승옥(1941~ ) 선배 또한 나기는 일본 오사카였지만, 정신적인 자양분을 섭취한 곳은 전남 순천이다 

 

내 얕은 기억으로도 전라도 출신의 저명 문인들은 그뿐만이 아니다. 지병인 난소암을 숨긴 채 7년간 집필을 계속하여 육신을 바쳐 대하소설 <혼불> 10권을 엮어내신 최명희. 그분의 저작물을 후대의 어떤 여류 문인도 따라간 이가 아직은 없다. 그 노력과 열정, 독특한 착점, 수많은 고유어와 유산 언어들의 채용... 등 모든 면에서... 최명희 님의 고향은 전북 남원이다.

 

내가 불꽃 시인으로 명명할 정도로 새벽마다 수많은 시편들을 불꽃처럼 명멸시켰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세는나이 43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지리산 등반길에 산화하여 요절한 그녀는 전남 해남 출신. 그녀가 잠자리로 삼았던 곳도 아파트 옥상에서 바닷가가 손에 잡히던 경기도 안산이었다.

 

번뜩이는 감각적 문체로 오연한 작가 은희경. 그녀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총체적인 판매량으로만 보자면, 작년도 1위를 했던 공지영을 앞지르는 작가 신경숙. 공식 집계로만 천만 권이 넘으니까 열 집에 두 집쯤은 신경숙의 소설책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중학교만 졸업한 뒤 오빠들이 머물고 있는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하면서 산업체 부설 특수 야간고를 다녔다. 그녀가 맡았던 건 공정상 맨 처음의 일이어서, 학교에 가려면 그날 밤 같은 팀이 일할 수 있도록 나머지 분량들을 5시 전에 미리 다해놔야만 했다. 그녀의 고향은 전북 정읍.

 

최명희 작가의 선배 격이자 모든 면에서 한수 위인 분으로 몇 해 전에 작고하신 박경리 님이 있다. 26년 동안 써내려간 <토지>. 앞으로 후대의 작가들 중 이분의 절반 정도라도 해낼 수 있는 이들이 나오려나 모르겠다. 박 작가님의 고향은 경남 통영. 남편을 육이오 전쟁 통에 잃은 데다 그 뒤 아들까지 잃고, 몸 고생 마음고생으로 어렵게 살아오시던 선생은 어느 날 재봉틀 한 대만 들고 원주로 둥지를 옮긴다. 재봉틀 한 대로 먹을거리를 대면서 소설을 쓰다가 안 되면 그 재봉틀을 끌어안고 죽으리라 결심하셨다던가.

 

통영 얘기가 나오고 보니, 그곳 출신의 대가 예술가 이름이 죽 떠오른다.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시조 시인 김상옥, 화가 이중섭, 작곡가 윤이상... 등등. 거목이시던 이은상 님은 그 바로 옆 동네인 마산 출신이시고.

 

이 나라 문인들의 글에서 이름 모를 산새/풀꽃등의 표현을 대하면 글을 쓰지 말라는 호통까지 치시는 바람에, 그 뒤로 그런 졸렬한/무지한 표현들을 몰아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셨던 김정한 선생님은 내 정신적인 스승이시기도 한데, 예전의 경남 동래군 북면, 지금의 부산시 동래구가 머뭄터였다. 그러고 보니, 내 좋아하는 후배 작가 중의 하나인 정일근 시인도 고향이 그 근방인 진해다.

 

(내 좋아하는 후배 시인들로는 정일근, 공광규, 기형도... 등 몇이 있는데, 내가 함부로 후배소리를 참칭한 것은 그들이 80년대에 대학들을 다녀서다. 하하하. 정 시인은 대학생 때 이미 가장일 정도로 늦깎이로 학교를 다녔다. 정 시인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와 동년배이자 그를 잘 아는 이 하나가 나와 아주 가까운 지인이다. 세상은 참 좁다.

 

막상 거명하고 보니, 이 사람들은 모두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은 그들의 시 속에 녹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정들이 각별한데다가 그걸 담아낸 언어들에서 어머니의 부엌 냄새가 날 정도로 유별나다는 점 때문인데... 기형도는 아예 연평도 출신의 섬 사나이이고, ‘멀덕국의 사나이 공광규의 고향도 바닷가와 그리 멀지 않은 충남 청양으로 알고 있다.)

 

*

특정 지역을 거명하게 되어 미안한 일이지만, 전라도는 고난의 땅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몰려서, 애매한 백성들이 누대에 걸쳐 그 고통을 껴안고 살아낸 곳. 사랑하는 아내들의 고향이자 자신의 처갓집들이 자리 하고 있는 곳임에도 왕건은 죽음을 앞두고 전라도에 미운 살을 깊이 박았다. 그곳의 인재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조선조에서는 함경도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전라도로 유배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가장 늦게 간선 고속도로가 뚫렸고, 고속철도는 다독임 차원에서 마지못해 부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시사철 쌀밥을 먹게 된 게 1970년의 일인데, 전라도에서만은 80년대까지도 보리밥을 먹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씩씩한 가난 탈출의 상징이기도 했던 새마을 노래가 끊길 정도로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었던 80년대에도, 돈이 없어 중고교 진학을 못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곳도 전라도였다. 작가 신경숙도 그러한 이들 중 하나였고,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이들 중에도 그처럼 돈이 없어 중고교 진학을 하지 못하여 검정고시 등으로 그 결핍을 채운 이들이 적지 않다.

 

바닷가 사람들 역시 입을 것, 먹을 것 외에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대대로 늘 모자라는 것투성이인 것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연평도 출신의 섬 사나이 기형도가 경기도 광명으로 이사한 뒤 철거민 촌에서 지내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뭍에도 바닷가와 매한가지로 모자람이 넘쳐나던 곳이 있음을 저절로 깨우쳤다고 했던 것처럼, 바닷가는 원초적 수준의 삶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해서는 결핍으로 충만한 곳이다.

 

요즘의 통영. 파독광부들까지 돌아와 독일촌도 꾸미고 이곳저곳에서 은퇴자들까지 몰려들어서 한국의 나폴리니 뭐니 하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통영 역시 예전에는 바닷가일 뿐이었다. 충만한 것은 멀리 펼쳐져 안으로만 출렁이는 바람에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그 바다 끝 수평선과 늘 뽀뽀를 해대고 있는 파란 하늘뿐. 물질적으로 모자람투성이인 곳에서 자라는 이들은 정신적으로 그 결핍을 보완해 간다. 언어로 대궐을 짓고, 그림으로 궁궐도 그리고 음악으로 천상을 노래하기도 하면서. 통영이 시인, 화가, 음악가들로 부자가 된 이유다.

 

*

요즘 시대는 결핍이 결핍된 시대라고 한다.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다. 되레 넘쳐나서 탈이다. 아이들은 백만 원대를 오가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깨뜨리거나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아주 간단 명쾌하다. 새로 사면 돼죠 뭐.

 

무수옹(無愁翁)이란 말이 있다. 본래의 한자 뜻은 근심걱정 없이 지내는 늙은이인데,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저절로 어리석어서 도무지 근심걱정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으로 뜻풀이도 발전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죄다 무수옹(無愁翁)’이다. 그리되었다. 뭐든 척척 알아서 사주는 부모들 덕택에.

 

음식이고 옷이고 뭐고 모자라는 게 없다 보니, 필요한 것에 대한 소중함 따위는 아예 생각 안에 머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아쉬움 등으로 갈무리하거나 다듬을 일도 전혀 없다. 물질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빈곤 내지는 조잡을 낳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양산(量産) 체제로 가동 중이어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인지라, 당사자들은 전혀 감감이다. 그 바람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의 악순환 고리만 자꾸 즐비하다. 온 세상이 무뇌충세계로 들어차는 느낌이다. 무서운 세상으로 발전(?)해 간다.

 

*

제목으로 돌아가자. ‘바닷가 여인, 전라도 여인은 결핍의 실물이다. 그들은 정신 영역에서 다른 이들에 비해 한수 위다. 자녀들의 지능지수가 평균치 이상인 것이 그 좋은 증좌다. 판소리 완창을 해낼 수 있는 이들이 전라도 출신이거나 그곳 출신의 대가들을 스승 삼아 공부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도 좋은 예다. 몇 시간을 읊어야 하는 그 길고도 복잡한 가사를 암기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구나 전승 초기에는 기록에도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소리로만 암기해야 했으니, 그 지능 역량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이들은 모태에 머물면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 아버지의 씨앗에 피와 살을 더해서 내용물을 채우는 것은 어머니의 몫. 그래서 밭이 좋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고 통하는 진리의 하나로 대우받아 왔다. 사람을 키우든, 작물을 키워내든.

 

그런 과정에서 결핍의 실물이었던 어머니가 해내는 일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자궁 안에서든 밖에서든. 교육 환경 조성 방식으로만 보자면 유태인들의 그것과 아주 조금 흡사하다. 100% 일치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하버드 대학생들의 1/3, 아이비리그 학생들 중 1/4이 유태인인데, 그런 유태인들이 전 세계 인구의 고작 0.2%불과하다. (하버드 대학에는 그래서 유태인 학생들을 위한 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 그런데, 그들의 가정을 가보면 하나같은 게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 수준이 중상류층 이상임에도 물질적으로 넘쳐날 정도의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고학력 현상이 대물림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일부 가정들과 아주 다른 점이 그것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집에서는 유태인 방식과 부분적으로는 흡사하긴 하지만, 물질적 풍요 면에서는 그래도 유태인 가정들을 훨씬 앞지른다.)

 

그런 유태인들이 전 세계의 정치/경제를 주름잡는다. 알게 모르게, 앞에서 혹은 뒤에서. 금리 하나만 까닥해도, 심지어는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가 시장이 1% 이상 요동치게 만드는 미 연방준비위원회(약칭. ‘미 연준’). 그 연준의 현 의장인 재닛 옐런 (Janet Yellen, Janet Louise Yellen. 1946~ )은 유태인이다. 전임자 버냉키 의장 또한 그러하고. 그뿐이랴. 옐런보다는 10년 연하지만 옐런보다 먼저 IMF 수장에 오른 프랑스 재무장관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Christine Madeleine Odette Lagarde. 1956~) 역시 유태인.

 

아이는 물질적으로 좀 모자라게 키워야 한다. 넘쳐나서는 안 된다. 생각을 할 줄 모르고, 생존을 위해 성심성의껏 노력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까닭에. 그래서 비창의적인 인간으로 자라고, 즉물적 욕망 충족이 안 되면 참을성 없는 인간 겸 파괴적 인간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발전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인륜/도덕/예의 따위는 아예 처음부터 설 자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리되도록 이끄는 데에 부모가 99% 기여하신 공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이고.

 

어른 역시 마찬가지다. 흘러넘치는 물질적 풍요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머리 굴릴 필요가 전혀 없으므로. 항상 제자리에 머물고, 모자라거나 하면 원시인마냥 반응한다. 도박/절도/사기 따위와 같은 드러나는 범죄가 아니라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는 것은 물질적 충족을 위한 탐욕이라서다. 탐욕에 꿰여 자신이 그 탐욕으로 더럽혀지는 줄도 모르고 마냥 거기에 몰입한 인간은 원시인만도 못한 존재로 급락한다. 원시인은 겉으로만 더럽게 보일 뿐 속까지 더럽지는 않으니까.

 

이야기를 마치자. 물질적으로 결핍되지 않아서 결핍이 결핍된 사회. 그건 하류 인간의 대량 양산으로 이어질 뿐이다. 결핍이 가져다주는 인간적 숙성 과정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결핍의 실물을 껴안자.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많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뿌리 뽑자. 그런 짓은 무뇌충 열차의 탑승권 예매나 다름없는 짓이므로.

 

그리고 결핍이 주는 참다운 가르침에 솔깃해 하자. 결핍의 상징으로 내건 내 마음의 전라도 여인을 미인도에 옮겨 담은 뒤, 내 마음의 서재에 모셔 두자. 매일 면대하면서 깨달음 한 줄씩을 챙기는 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마음이 더욱 흡족해지면 그 미인도에 뽀뽀도 해대고. 아 그림에 뽀뽀 좀 한다고 누가 뭐랄까. 마나님의 눈꼬리 방향이 달라지거든, 그때는 실물에 해주는 걸로 입막음을 하면 되지 뭐. 하하하. [May 2015]

                                                                                  -溫草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