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가 좀 까다로운 놈이냐/최종희
늬가 좀 까다로운 놈이냐?
내가 뭘 그리 까다로운데?
늬는 마, 한두 가지만 까다로운 게 아냐.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들 솎아내고,
재주가 승한 이들 중에는 무엇이든 비틀고 꼬아대어
세상을 빼딱하게만 보는 이들이 있다며, 그런 ‘삐딱이’들 걸러내고,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이들의 상당수는 그저 입으로만 떠들지
손발의 수고는 멀리하는, 이른바 몸수고 기피가 몸에 밴 이들이 많다고 싫어하고
그런 것들을 대충 갖추고 있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은근히 온갖 탐욕(명예욕에서부터 소유욕, 물욕, 과시욕...)과
뒷전으로 손잡고 있는 이들 엄청 싫어하고
책 안 읽는 사람들 싫어하고...
야 임마, 너 같이 까다로운 놈도 세상에 흔치 않을 게야.
그래, 그렇다 치자.
다 좋은데, 너 책 잘 안 읽잖아.
그런데도 어떻게 내 친구 노릇을 그리 오래 하고 있냐?
야, 임마*. 내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데...
성경도 열 번 이상 읽었고,
<좋은 생각들>을 한 권도 안 빼놓고 다 읽었고,
... 도 ....도 읽었고.
('야 임마'* : 내 친구의 최고 수준의 욕이 '야 임마'다.
그 아래 등급이 '야 이녀석아'.
참고로, 이 '임마'는 '이놈아'의 준말인데 현재로서는 '인마'의 잘못이다.
'임마'를 버리고 '인마'만을 표준어로 삼았기 때문. )
*
두어 주일 전, 한 해에 최소한 두세 번은 꼭 보고 지내온 친구와
낮술 한잔을 했는데
주기가 오르자 그 친구가 쏟아놓은 말들이다.
어제, 낮술을 했다.
출판계에서 만난 아름다운 후배들이, 내가 요즘 두어 주일 정도
짬이 생겼다고 하자, 7월 언제쯤인가의 약속을 앞당긴 것.
2차는 탁자 두 개짜리의 조촐한 간이 노천카페(?)에서 했다.
그러다가 후배에게서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의 하나인
‘손발의 수고’ 얘기가 나왔다. 그 말이 자신의 분신이 되었다며...
그래서 위의 얘기를 들려줬다.
4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내 친구가 나를 그리 씹었다며. 하하하.
그래도, 그 친구의 말이 하나도 서운하거나 하진 않았다.
도리어, 나를 제대로 읽어낸(?) 녀석의 시선이 친구다웠다고나 할까.
후배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가정 형편이 허락지 않아, 고졸 학력이 전부다.
(하기야, 언젠가 돌아보니 내 초등학교 동창 중
중학교를 마친 여학생은 겨우 둘이고, 남학생이 일곱이던가.
대학까지 마친 사람은 여학생 하나에 남학생 둘뿐이다.)
그런 내 친구. 참으로 열심히 올곧게 살았다.
떼어먹어도(?) 좋을 빚까지 평생 걸려 갚아낼 정도로.
형편이 안 되는데도 아빠가 사준 바이올린으로 지금은 유럽의
유명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가 된 딸은
그 바이올린 빚을 20년 넘게 갚아왔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고
친구는 그 딸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유럽엘 다녀왔다.
가방끈 짧은 내 친구가 그래서 좋다.
그저 맑고 푸근한 웃음만 어리면
그저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들로 여기는 내 웃기는 미남미녀 기준도
실은 오랫동안 대해온 그 친구의 얼굴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이고...
나이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무욕의 삶을 살아내는 내 친구가
그래서 엄청 이쁘다... 그래서 술맛이 더 좋아진다.
낮술 한잔에 담긴 말과 느낌들이 두어 주일의 시간을 건너뛰어
내 마음속에서 또 다시 한 줄로 세워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그려진 그림이긴 했지만.
그것도 해가 남아 있을 때... [Ju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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