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님 말씀이야 다 옳습지/최종희
누군들 안 그러랴만, 울 집 마마님 말씀도 이따금 왔다 갔다 하신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씀바귀 잎사귀들이 제철일 정도로 아주 잘 자랐더군.’ 하면
그것들이 자라고 있는 위치를 묻는다.
길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숲속과 같이, 공해에서 안전한(?) 곳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고하면, 다시 다른 말로 나의 은근한
‘고들빼기김치’* 담그기 작전을 비튼다.
[*주 : 흔히 말하는 ‘고들빼기김치’는 실은 ‘씀바귀김치’다.
이때의 ‘고들빼기’는 ‘씀바귀’의 전라도 방언.
김치를 담글 정도 크기의 고들빼기 뿌리는 알뿌리가 아니라 잔뿌리 상태.
고들빼기는 아주 어릴 때만 빼고는 잔뿌리. 수확할 때도 잔뿌리 상태로
거두어 약재로 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다른 건일 때는 또 말씀이 달라진다.
두어 주일 전, 마마님이 집 근처의 살구 따기를 제안해 왔다.
위치를 물으니, 작년에도 땄던 곳이란다.
아하. 어딘지 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경계선용 자연림.
그러다 보니, 관리는 단지 분양업체인 LH의 몫인지라
수목 방제 횟수가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드문드문.
그래도, 수목 방제용 약제는 대체로 조금 독한 편이다.
그 얘기를 하자, 마마님 말씀은 조리정연하다.
수목 방제는 두어 달 전에 했고, 며칠 전에 비도 여러 번 왔으며
LH 방제작업을 보니, 길가의 것들에만 흉내를 내듯 뿌리고 가더라.
고로, 안쪽에 있으니 안전하다.
어허. 대체로 90% 이상 공동구역의 것들에는 거의 탐내지 않는 마마님이신데
(그래서 내가 어디서 채집농업 결실을 갖다 바칠 때는
시시콜콜 채취 지역을 보고해야 한다. 주변 환경을 포함하여)
그처럼 말씀하실 때는 기어이 그걸 수중에 넣으시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그럴 땐, 긴말 할 것 없이 따라야 한다.
‘마마님 말씀이야 다 옳습지’, 소리를 웅얼거리면서.
(다만, 입 밖으로 내진 말고...)
그럴 때 말꼬리를 잡는 건,
노력 봉사를 회피하려는 같잖은 핑계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마마님의 의도에 반역하는 행위로 부풀려 질 수도 있다.
나는 예의 그 나무타기 실력을 발휘하여
살구나무에 올라가 열심히 흔들었다.
그리곤, 의기양양하게 수확물을 들고 들어와
마마님께 나의 충실한 명령 수행 결과를 현물로 보고했다.
아래 사진의 것들이 바로 그 노력 봉사의 결실이다.
(그런데, 마마님이 탐낼 만도 한 것이, 웬 살구가 웬만한 자두만큼이나 크다.
천도복숭아 작은 것과 나란히 놓으니 똑같다. 크기가. 흐미.)
*
위에서 잠깐 비친 ‘마마님 말씀이야 다 옳습지’는
속담 ‘사또님 말씀이야 다[늘] 옳습지’의 번안(?)이다.
‘1.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말을 빈정거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2.제 의견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에게 귀찮아져서 한 걸음 양보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할 때는 당사자에게 들리게 해선 안 된다.
위에서, 입 밖으로 내지 말라고 덧붙인 이유다. 하하하.
사또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덧붙이기로 한다.
우리말에 ‘판관사령(判官使令)’이란 말이 있다.
‘아내의 말에 잘 따르는 사람을 농으로 일컫는 말’인데,
[골계전(滑稽傳)]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부터 비롯한 말이다.
부인을 몹시 무서워하던 어느 판관(判官)이 하루는 부인에게 혼이 난 다음
관청에 나와서 사령(司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한쪽에 푸른 기를
다른 한쪽에는 붉은 기를 세워놓고 내가 무서운 자는 붉은 기 아래 서고
아내가 무섭지 않은 푸른 기 아래 서라고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붉은 기 쪽으로 가는데
유독 한 사람만 푸른 기 아래 섰다. 판관이 푸른 기 아래에 서 있는 사람에게 대견한 듯이
어째서 아내를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제 처가 항상 말하기를 남자 3인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므로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였다"고 대답했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른바 일제 용어 ‘공처가’의 우리말인 ‘처시하(妻侍下)/엄처시하’의 원조 격인 듯만도 해서.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다.
중대사가 아닌 한은 아내의 말에 군소리 없이 따라주는 것이
아내를 존경하는 작은 일도 될 수 있으므로.
부부간에 오래 살다 보면, 상대를 존경하는 일이 줄어든다.
존경은커녕 그 반대의 경우만 더 늘기도 한다.
한편, ‘존경씩이나?’하면서 놀라듯 외면할 일도 아닌 것이
존경은 상대방 말을 존중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서로를 존경하는 부부들의 실상을 헤집어보면 실제로도 그렇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서조차 서로의 고집을 내세워
불꽃 튀기는 언쟁으로까지 비화시키는 일.
그걸 나중에 돌아보면 부끄러운 바보짓들로 남는다.
‘판관사령’!
때로는 그렇게 살 필요도 있다.
사소한 가정사에서 서로 부딛는 걸 막아주는 요긴한 길잡이도 된다.
목숨 걸고 부딪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공평/대의/정의’ 등과 같은 것이지
아내의 의견을 꺾거나 누르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한낱 고집으로만 보일지라도. -溫草
[Jul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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