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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앞에서 : ‘약간’과 ‘-씩이나/자그마치’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5. 7. 2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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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앞에서 : ‘약간‘-씩이나/자그마치

 

페터 자거의 <옥스퍼드 & 케임브리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간의 오랜, 치열한 차별화를 이모저모 다룬 책자인데, 읽는 이는 재미나다. 무엇에서건 두 대학은 서로에게 질세라 기를 쓰고 차별화로 맞선다. 이를테면, 26명의 영국 총리가 자기 학교 출신일 정도로 빼어난 정치가를 배출한 데서는 옥스퍼드가 앞선다고 으스대고, 노벨상 배출에서는 케임브리지가 앞섰다면서 옥스퍼드를 약 올린다.

 

노벨상 부문을 대하고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기에? 그 책에는 자료가 없기에 다른 곳을 뒤졌다. 그런데, 그곳의 내용이 더 의구심을 자아냈다. 전 세계 대학 중 노벨상 수상자 배출 순위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다음으로 케임브리지대라고 되어 있어서... 내 알기로는 2위는 90여 명 가까이 배출한 시카고대학*인데.

 

[참고 : 내가 이걸 기억하게 된 계기는 시카고의 시어즈타워 꼭대기 층에 올랐을 때 접했던 광경 때문이다. 그곳 전망대 층에는 시카고 명물(?)에 속하는 것들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있는데, 거기서 시카고대학의 노벨상 수상자 수가 70몇 명인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1995년의 일이다. 시카고미술관 외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무시했던 시카고를 그 뒤로는 다시 보게 됐다.]

 

각 대학이 직접 정리한 자료가 가장 믿음직스러울 듯하여, 뒤졌다. 그러다가 하버드의 자료를 대하고서 웃었다. 크게... 세상에나, 150여 명이라는 최대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에서 적어놓으신 문구는 약간의 몇몇 교직원과 졸업생(several faculty and alumni)이 이 영예로운 상을 받았다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수상자별로 작성한 리스트가 붙어 있었는데, 헤아려보니 총 48. 어라. 모든 자료에서 거의 '150여 명(some 150 persons)'으로 꼽히는 학교에서 그 숫자를 몇몇(several)’이라 하고 48명만 명단에 올린다?

 

뭔가 이상해서 예전에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살펴봤다. 시카고대학의 자료들을 다시 훑다가 그 까닭을 알았다. 시카고대학에서는 학부/대학원/연구소 등을 거쳐 간 이들을 망라해서 산출한 숫자이고, 하버드대학에서는 학부와 대학원 모두를 거쳤거나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교직원/교수로 재직한 자 등으로 졸업생과 교직원의 정의를 좁혀서 적용하고 있었던 것. 시카고대학식 계산으로는 150여 명이었다.

 

몇몇이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대하고 터뜨렸던 웃음이 저절로 거둬졌다. 서울 소재 모든 대학들의 도서관 장서를 합해도 따라가지 못할 1800만 권*의 책을 지닌 학교답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1365일 어느 날 어느 시각에 가 봐도 도서관의 불이 죄다 꺼져 있는 적 없고, 어느 기숙사에도 불이 죄다 꺼진 곳은 없다는 학교다운 겸손함.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무서운 힘이 비수처럼 번쩍인 다음이었다.

 

[참고 : 국립중앙도서관이 작년에야 겨우 천만 권에 이르렀고, 서울대는 도서관뿐 아니라 학교 구석구석에 있는 것들에다 잡지류까지 전부 끌어 모아야 간신히 5백만 권쯤 된다. 숫자로나마 겨우 동경대 수준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 1990년부터 4년 동안 250억 원을 쾌척한 김승연 회장이다. 도서관 시설 개선 등에 크게 기여한 분들 - 관정 이종환, 조천식-윤창기 부부 등-도 있지만.

 

그는 화끈한(?) 사람이다. 지나치게 화끈해서 자식을 위해 몽둥이까지 휘두를 정도로. 그는 일찌감치 그룹 내 비정규직 2,043명을 화끈하게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는가 하면, 천안함 유족들을 채용하기도 하고, 한국을 위해 일했다고 간첩 혐의를 받아 수감됐던 로버트 김을 발 벗고 나서서 후원하기도 했다. 서울대 출신도 아닌 그가 서울대 도서관에 책 구입 자금을 지원한 것은 딱 하나. 미국 유학 시절 (그는 멘로대와 드폴대 대학원을 나온 국제정치학 석사다), 미국 대학의 도서관들에 비치된 수많은 장서들을 보고, 책이 국력이라는 걸 체득해서였다.]

 

우리 같으면 어쨌을까.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었기 망정이지, 서로 자기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학했다면서 죄다 자신들의 학교 출신이라고 끌어다 붙이지 않았을까. 학부와 대학원의 출신 학교가 다른 사람들이 대여섯 명만 배출되어도 틀림없이 그러고도 남을 듯하다. 실제 총 수상자는 5~6명이지만 어떤 학교는 학부 2, 대학원생 3명 식으로 계산해서, ‘자그마치 5명씩이나배출했다고 내세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다 보면 학교별 수상자를 합하면 열 명도 넘게 될 게 뻔하고.

 

150여 명의 노벨 수상자들을 몇몇이라고 표현하는 배포와 여유. 그리고 그 수상자들의 명단 자격에 엄격한 기준을 세워 도리어 줄여서 발표하는 그 당당함. 무엇이든 큰 것이 더 크고 멋진 모습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은 정신의 골격이다. 그것이 올바르고 당당할 때, 시간과 장소를 넘어 빛난다. 그것이 진리다.

 

하버드대학교의 교훈(校訓)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진리(Veritas)’로만 표기되어 있는 까닭이 새삼스럽다. 서울대의 교훈은 거기서 따온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으로 꽤 그럴 듯한데, 정작 진리를 평생의 빛으로  삼은 이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는 게 흠이다.  서울대생들은 재학생일 때만 좀 그럴듯하다.       

 -溫草

 

[참고] 위에서 언급된 대학들의 노벨상 수상자 수 [20157월 현재]

 

1. 하버드대 : 150여 명. (학교 측 명단에는 48명만 기재)

2. 케임브리지대 : 90(대학교 홈페이지 자료. 이하 모두 같음)

3. 시카고대 : 89

4. 컬럼비아대 : 82

 

[참고]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내역

             - 문학상 2, 평화상 1, 과학 분야 17.

                특히 2002/2008년은 화학상/물리학상 분야 독점.

 

2014년 아카사키 이사무·아마노 히로시 : 물리학상

2012년 야마나카 신야 : 생리의학상

2010년 스즈키 아키라·네기시 에이이치 : 화학상

2008년 시모무라 오사무 : 화학상

고바야시 마코토·남부 요이치로·마스카와 도시히데 : 물리학상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 : 물리학상

다나카 고이치 : 화학상

2001년 노요리 료지 : 화학상

2000년 시라카와 히데키 : 화학상

1994오에 겐자부로 : 문학상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 : 생리의학상

1981년 후쿠이 겐이치 : 화학상

1974사토 에이사쿠 : 평화상

1973년 에사키 레오 : 물리학상

1968가와바타 야스나리 : 문학상

1965년 도모나가 신이치로 : 물리학상

1949년 유카와 히데키 : 물리학상

                                                                                            [Jul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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