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맞춤법.띄어쓰기] 기자 및 글쓰기 지망생의 오류, 그리고 ‘간만에’와 ‘나름’
1. 어느 기자의 글 : 전지현과 00.
[전략] 2003년쯤 까닭없이 좋아져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사람 중에 전지현이 있었는데, 그 사진 이미지를 훔쳐보며 망상을 키우기도 했다. [중략] 그녀가 맡은 역의 실제인물이라는 남자현은, 나와 인연이 깊다. [중략]남자현 스토리를 지역의 신문에 크게 싣고난 뒤, [중략] 이 분에 대한 자료가 워낙 드물고, 조소앙과 같은 저명인사의 언급을 제외하면 당시의 신문 쪼가리 기사에 밖에 의지할 수 없는 스토리를 [중략] 그리도 휑한 그 삶의 빈간들을 내가 직접 들어가서 살아내는 희한한 작업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다.
이 글은 중견 기자의 글이다. 이곳에서 두어 번 예문을 인용했던... 여러 방면에 걸친 10여 권의 저서도 갖고 있는 이다. 그런데, 항상 맞춤법이 문제다. (‘띄어쓰기’는 독립적인 규정으로 되어 있지 않다. 맞춤법 규정 중의 일부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띄어쓰기의 잘못도 실은 맞춤법의 잘못에 든다. 그렇기 때문에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것은 맞춤법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는 말도 된다. 글쟁이가 맞춤법을 무시하고 글을 쓴다?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그는 글을 쓸 때 게시판에 직접 타자하는 듯하다. 그러니, 자신의 글에서 보이는 맞춤법의 잘못이 눈에 띄지 않는 것. 초고를 문서 작성기에만 작성해도 맞춤법의 잘못 중 90% 이상이 걸러진다. 해당 구절에 밑줄이 그어지니까. 게다가 그는 워낙 다작에 속타이다 보니, 그 바람에 저절로 퇴고를 건너뛰게 되었고, 그런 버릇들이 이런 잘못들의 지속적인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어떤 이가 그에게 많은 저서들의 출간과 관련하여 맞춤법.띄어쓰기 문제는 어떠했냐고 묻자, 기자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글을 오래 써 온 덕분에) 그런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아주, 너무나 쉽게 답하는 것을 보면서, 글쓰기에 한 번 나쁜 버릇이 들면 참으로 그 버릇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절감한 적이 있다.
문제 부분으로 가보기로 하자.
-까닭없이, 헤어나오기, 실제인물, 싣고난
윗글에는 복합어와 관련된 띄어쓰기의 오류가 자주 나온다. 실생활에서도 유의하지 않으면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루는 이유는 글쓴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중견 기자이자, 지금도 열심히 저술을 하고 있는, 책을 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이 활자로 대한 낱말들의 쓰임에 중독된다. SNS의 세상에서 타인들의 잘못된 말들에 자신도 모르게 쉽게 물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을 활자의 각인효과라 한다. 요즘은 워드 프로세서 따위로 작성된 글자도 활자의 범위에 속한다.)
‘까닭없이, 헤어나오기, 실제인물, 싣고난’은 모두 없는 말로 각각 ‘까닭 없이, 헤어 나오기, 실제 인물, 싣고 난’의 잘못이다. 즉, 한 낱말인 복합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복합어 인정 기준에 대해서는 다른 게시판에서 여러 번 다뤘다. 그중 가장 흔한 기준이 의미 특정(특화) 여부다. 글자 뜻 그대로의 의미만 지니고 있을 때, 곧 별달리 따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말이 아닐 때는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지 않는다. 위의 경우에 ‘까닭없이’와 ‘싣고난’ 같은 경우가 명백하게 이러한 기준에 든다. 즉 ‘까닭없이/까닭없다/싣고나다’ 등은 모두 없는 말로, ‘까닭 없이/까닭 없다/싣고 나다’ 등으로 띄어 적어야 한다. 위의 글에도 보이는 ‘훔쳐보다(남이 모르게 가만히 보다)’의 의미가 글자 그대로 훔치는 게 아니라 ‘남이 모르게 살짝’의 뜻으로 의미가 특화된 것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헤어나오기’와 ‘실제인물’ 등도 마찬가지 이유로 복합어로 인정하지 아니한 경우지만, 앞의 두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일상적으로 붙여 쓰려는 유혹이 강한 말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헤어나오다’를 쉽사리 한 낱말로 여기려 드는 것은 ‘벗어나다’의 유의어인 ‘헤어나다’가 있어서다. ‘헤어나다’가 있으니 당연히(?) ‘헤어나오다’도 한 낱말의 복합어일 듯해지므로. 그렇지만 아니다. ‘힘든 상태를 헤치고 벗어나다’를 뜻하는 말로 ‘헤어나다’가 있으므로 굳이 ‘헤어나오다’까지 인용(認容)할 필요가 없는 것. ‘벗어나다’는 있지만 ‘벗어나오다’를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지 않은 이유와도 같다.
‘실제인물’ 역시 글자 뜻 그대로의 의미만 있으므로 복합어로 선정될 이유가 없는 말이다. 즉, ‘실제 인물’의 잘못.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보니, 혹시나 싶어서(유혹에 약해져서) 붙여 쓰고 보는, 그런 말이다. 이 말과 ‘실제 사건, 실제 상황, 실제 현실’ 등을 비교해 보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글자 뜻 그대로의 의미만으로 유통된다. 그래서 한 낱말의 복합어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 분
삼인칭대명사 ‘이분’의 잘못이다. 아주 흔히 틀리는 경우에 해당된다.
우리말에는 (의존)명사와 ‘이/그/저’ 등의 관형사가 결합하여 한 낱말을 이루는 것들이 제법 되는데 ‘늙은이/젊은이/어린이, 이곳/저곳/그곳’ 등이 그 좋은 예.
그중에서도 조심해야 할 인칭대명사들이 제법 된다. 이를테면, ‘이분/그분/저분’, ‘이이/그이/저이’, ‘그자[-者]/이자/저자’와 낮잡음 말인 ‘그치/이치/저치’ 등이 그러한 것들. ‘그놈/그년’도 인칭대명사인데, 주의할 것은 ‘저 놈/저 년’은 이러한 인칭대명사가 아니라는 점. 의미 특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에 밖에
이것은 어법상의 잘못이다. ‘밖’은 의존명사와 조사로 쓰이는데, 위의 경우는 의존명사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바, 의존명사로 쓸 때는 앞의 구(어절)가 관형어 형태여야만 한다. 앞말에 의존하므로 그래서 의존명사라 하는 것. ‘그 밖에/그 밖의 경우’ 등에서 쓰인 ‘밖’이 의존명사인데, 그 때문에 ‘그 밖’으로 띄어 적어야 한다. 흔히 붙여 적기 쉬운 말 중의 하나.
위와 같은 경우에는 ‘신문 쪼가리 기사에 밖에 의지할 수 없는’을 ‘신문 쪼가리 기사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으로 바꿔야 한다. 차선책으로는 ‘신문 쪼가리 기사밖에 의지할 수 없는’도 있겠으나 앞의 문장이 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빈간
이는 ‘빈칸’의 잘못으로 ‘빈간’은 없는 말이다. ‘간(間)’의 한자어에 혹하여 잘못 적기 쉬우나 우리말에서는 ‘초가삼간(草家三間)/목욕간(沐浴間)’ 등과 같이, 명백하게 굳어진 한자어 표기가 아닌 것들은 ‘칸’으로 적는다. ‘짐칸/일등칸/삼등칸/화물칸/침대칸...’ 등등. 다만, ‘찻간’과 같이 앞말에 사이시옷이 받쳐지는 것들은 예외이다. 뒷말 첫소리가 격음/경음일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받칠 수 없다는 원칙과 관련된다.
위에서도 적었듯, 이러한 것들은 상당 부분 퇴고만 해도 바로잡힐 수 있는 것들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게시판에 대고 직접 타자하기보다는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해서 초고를 작성하는 것.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맞춤법에 맞는 글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글쟁이들 중에도 이런 버릇이 든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시인들의 경우가 우심하다. 아예 대놓고 맞춤법을 무시하려는, 정말 간 큰 이들도 있다. 그것도 이른바 중견 시인이라는 이들 중에. 그런 이들에게 돌아갈 사후 평가는 어떤 것일까. ‘비문/비문법의 우등생이기도 했다’라는 꼬리표가 붙지 말란 법도 없으려니...
2. 어느 문학 수업 수강생의 글
문학교실 쫑 파티는 식당에서 안하고 우리집에서 댄마끼를 해 먹고 놀았다. 일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신 귀한 분들께 솜씨는 없지만 따뜻한 밥한끼 대접하고 싶었다. 편한 분들이어서 흉 될 것도 없었고 음식 가지수가 많지 않아도 맛있고 오랜만에 떨어 본 수다도 재밌었다. 어떤 선물보다도 반가웠던 손카드가 감동이었다.
이 글은 올해 문학교실 강의에 참석했던 분의 일기체 글이다. 중년 여성으로서 문학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짬이 있되 아름다운 생을 꿈꾸시는 분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 아직 문학 수업 수강 중에 계신 분이니, 어떤 쪽의 수업이라도 맞춤법/띄어쓰기 부분에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셨을 듯하다.
이참에, 글쓰기에 뜻을 분들에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흔히 좋은 글 쓰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당나라 때의 명문장가인 한유의 삼다(三多)가 거론되곤 한다. ‘많이 읽고(多看), 많이 짓고(多作), 많이 생각을 하라(多商量)’가 그것.
그런데, 나는 이 순서를 좀 바꾸고 싶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을 해본 뒤 쓰기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뿌리가 있는, 제대로 된 글을 한 줄이라도 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줄의 글 앞에서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과시욕에서 긁적거리게 되는 얕은 글의 위험에서도 벗어나게 해준다. 오랫동안 글을 쓰도록 이끌어주는 힘도 그와 같은 뿌리에서 나오고.
-쫑 파티
이는 한 낱말인 ‘쫑파티’의 잘못. 알다시피 ‘쫑파티’는 학기가 끝나거나 어떤 일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곧 속어다.
속어란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 혹은 ‘상말(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을 이른다. ‘삥땅’, ‘깡다구≒깡’, ‘빠구리’, ‘야코죽다/야코죽이다’. ‘야코’, ‘얍삽하다’, ‘짝퉁’ 등이 이 속어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이러한 속어도 표준어에 속한다. 표준어의 요건에 보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규정도 있는데?
실은 ‘①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②대상을 낮추거나 낮잡는 말’인 비어(卑語/鄙語)도 표준어에 속한다. ‘구닥다리[舊-](여러 해 묵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사물/생각 따위를 낮잡는 말)’ 같은 말이 비어다.
이런 비어와 속어가 표준어에 속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상세한 설명은 이곳 게시판의 ‘비어(卑語/鄙語)’와 ‘속어(俗語)’도 표준어다 항목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blog.naver.com/jonychoi/220154965541)
-안하고
‘안하고’는 ‘안 하고’의 잘못이다. ‘안’은 부정을 뜻하는 독립부사. 낱말은 띄어 적는다는 띄어쓰기의 대원칙에 따라서 띄어 적는다. (‘띄어 쓰다’와 ‘띄어 적는다’는 원칙대로 띄어 쓰지만, ‘띄어쓰기’는 한 낱말이므로 붙여 적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흔히 하는 말로 ‘안벌고 안쓴다’고 하는데, 이때도 ‘안 벌고 안 쓴다’로 띄어 적어야 맞다.
이걸 흔히 실수하는 데에는 비슷한 것들과 헷갈려서 그럴 때도 잦다. 우선 ‘안’은 ‘아니’의 준말인데, ‘아니’ 또한 당연히 독립부사다. ‘아니 오시는 임; 비가 아니 올 때 얼른 오면 좋으련만;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등에서처럼 독립부사로 쓰일 때는 당연히 띄어 적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하다, 않다’ 때문에 이게 약간 흔들리게 된다. ‘않다’는 ‘아니하다’의 준말인데, 두 말 모두 한 낱말이다. ‘못지않다, 얼토당토않다’가 각각 ‘못지아니하다’와 ‘얼토당토아니하다’와 같은 말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참에 기억해 두자. ‘아니하다’와 ‘안 하다’는 설령 그 의미가 비슷한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말이라는 걸. 하나는 한 낱말이고 다른 하나는 두 낱말이다.
-우리집
우리말 중에서는 대명사 ‘우리’가 들어간 복합어로는 딱 세 개밖에 없다. ‘우리나라/우리말/우리글’. 나머지 것들은 위에서 설명한 복합어 인정 기준대로 글자 그대로의 뜻밖에 없기 때문에 복합어로 인정받지 못한 말들이다. 즉, 모두 띄어 적어야 한다. ‘우리 학교, 우리 엄마, 우리 집, 우리 집 강아지, 우리 동네...’ 모두 띄어 적는다.
-댄마끼
일본 음식을 뜻하는 말인데, 한글 표기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덴마키’가 되어야 옳다. 일본어로는 てんまき[転摩機]. 본래는 뭘로 싼 음식을 둘둘 말아서 만드는 기계를 뜻했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을 뜻하게도 되었다.
우리나라 일식집에서는 생김 한 장을 4등분하여 그 안에 간을 한 초밥을 넣고 맨 위에 날치 알을 얹은 것을 주로 뜻하는데, 요즘은 밥 대신 그 안에 이것저것(주로 채소류)을 넣은 다음 맨 마지막에 날치 알만 얹어 먹는 것까지도 그리 부르는 이들이 생기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쌀종이를 이용한 ‘월남쌈’이 유행되자, 쌀종이 대신 생김을 활용한 한국식 김쌈이 등장한 셈이랄까.
-일년 동안
‘일 년 동안’의 잘못. 시간을 나타내는 의존명사 앞에서는 반드시 띄어 적어야 한다. 다만 그 앞의 수/관형사가 아라비아 숫자일 때는 붙여 쓸 수 있다. ‘1년 동안’처럼.
비슷한 경우로 ‘한 해 동안’이라 할 때도 띄어 적어야 한다. 다만, ‘한해살이풀’처럼 한 낱말의 복합어로 인정된 경우에는 당연히 예외로서, 붙여 적어야 한다.
-밥한끼
약간 까다로운 경우지만, 원칙적으로는 ‘밥 한 끼’로 띄어 적어야 한다. ‘밥한끼’라는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이처럼 낱 낱말이 세 개 이상 연속될 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붙여 쓰기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예를 들면, 원칙적으로는 ‘갈 둥 말 둥, 본 둥 만 둥, 울 듯 말 듯’ 등으로 띄어 적어야 하지만, 이것들은 각각 ‘갈둥말둥/갈둥 말둥/본둥만둥/본둥 만둥/울듯말듯/울듯 말듯’ 등으로 붙여 적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경우에도 이러한 부사구들이 구로서 뒤의 말을 수식할 때는 수식하는 말 앞에서는 반드시 띄어 적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본둥만둥 하더니, 본둥 만둥 하더니’처럼 적어야 한다.
-가지수
사이시옷을 받친 ‘가짓수’의 잘못이다. 낱말 표기가 잘못되었다.
-손카드
이 말은 현재 사전에 없는 말이다. 아울러 손으로 만든 것을 뜻하는 것일 때는 ‘수제 카드’로 하는 게 적절하다. 왜냐 하면 우리말에 ‘손-’을 넣어 합성어(복합어의 한 가지 종류)를 이루는 것들에는 ‘손지갑/손수건/손가방/손대야’처럼 손에 들어갈 만하거나 손에 들고 다니거나 할 정도의 작은 크기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3. ‘간만에’와 ‘나름’
이것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일반인의 경우, 생각 없이 따라하다 보니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어서 일부러 골라 봤다.
-간만에
문법 얘기라면 골 아프겠지만, 이것은 문법에 어긋나는 용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법적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즉, 이때의 ‘간’은 기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이틀간/한 달간/삼십 일간’ 등으로 쓰인다. 요즘 널리 쓰이는 ‘간만에’의 뜻과 비슷한 표준어로는 ‘오래간만에’가 있고 그 준말은 ‘오랜만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간만에’는 희한한 잡종이다. 접사로 보기에는 그 앞말이 없고, ‘오래간만에’와 비교하면 앞의 ‘오래-’가 싹둑 잘렸다. 즉, ‘오래간만에’라는 말이 길다고, 귀찮다고 마구잡이로 잘라낸 잡종어다. 그런데, 이 말을 비문법적인 말이라 하여 표준어에서 무조건 잘라내는 것에도 무리는 있다. 왜냐 하면 언어란 언중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생물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언중들의 관행을 인정하여 국립국어원에서도 한 걸음 양보하여 ‘간만에’를 ‘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조금 긴 시간이 지난 뒤에’를 뜻하는 부사로 인용(認容)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간만’이라는 명사는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그럴 경우 ‘오래간만에’의 현재 뜻풀이인 ‘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뒤에’와도 그런대로 어울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비문법적인 구조로 이뤄진 부사들이 우리말에 적지 않게 있기도 하니, 관행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나름
‘나름’은 의존명사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의존명사는 반드시 그 앞에 관형어 꼴이 와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어법은 ‘내 나름대로 한다고 했다; 그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었을 듯; 네 나름의 공부 방식을 찾아내는 게 공부 잘하는 지름길’ 등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내 나름/제 나름/그 나름’ 대신 앞의 관형사들이 전부 생략된 채 죄다 ‘나름’으로만 적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다. 이런 현상은 구제의 여지가 없다. 설사 ‘나름’을 일반명사로 격상시킨다 하더라도 용례를 전부 포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법에는 물들지 않는 것이 첩경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만 봐도, 관형어가 없는 ‘나름’의 사용은 잘못된 어법으로 나와 있다.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래 자신들의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말들까지도 남들 따라서 반납할 것인가? 다른 쪽에서는 ‘나는 나야!’라는 깃발을 열심히, 버릇처럼, 흔들어대 온 사람들 아닌가... [Dec. 2015]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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