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띄어쓰기.맞춤법] 기자/작가/전문가들의 일상적 오류
늘 말하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글에서 맞춤법의 오류는 없도록 해야 한다. 단 한 줄의 글을 쓰더라도 반드시 되돌아보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퇴고다.
그런데, 이 나라의 글쟁이들에게는 묘한 배짱들이 있다. 까짓것 그런 사소한 맞춤법/띄어쓰기 따위야 좀 틀려도 뭐 대수인가 하는... 사실, 틀릴 수도 있다. 제대로 익히고, 그걸 몸에 배게 하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쉽게 오를 수 없는 고지(?)만 같은 것이기도 하므로. (그러나 막상 작심하고 해보면 두어 달도 안 걸린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 그 버릇을 평생 유지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태도들에서 정작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다른 측면이다. 맞춤법/띄어쓰기조차 용감하게 무시하는 이들치고, 자신의 글을(글 내용을) 제대로 퇴고하려는 애씀을 버릇 삼고 있는 이들이 아주 드물다는 점이다. 한번 휘갈겨 놓으면 그것이 명문쯤 되는 것으로 착각들 하고 있는 것인지...
띄어쓰기는 사실 맞춤법의 일부다. 맞춤법 규정 속에 이 띄어쓰기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띄어쓰기를 무시하거나 잘 못하는 사람은 맞춤법을 무시하거나 잘 모른다는 게 된다. 명색이 글쟁이라는 사람이 맞춤법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아래에 예를 든 글들 중 마지막 글의 주인장은 내 알기에 이른바 글쟁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맞춤법 부분에서 흠을 찾아낼 수가 없다. 완벽하다. 띄어쓰기에서 고난도에 해당되는 두 말에 대해서도 전혀 실수하지 않으셨다. 정성 들여 퇴고를 하신 게 분명하다. 그런 것이다. 퇴고의 힘은.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월트 휘트먼(1819 ~1892). 휘트먼은 36세에 자비 출간한 그의 작품 <풀잎>을 죽기 직전까지 계속 퇴고했다. 5년 ~ 9년 간격으로 총 7판의 개정판이 나왔는데 오늘날 영미인들의 영문학 필독서로 꼽힌다. 일반인은 물론 특히 영문학 전공자들에게. 첫 번째 이유는 풀잎에 담긴 그의 깊은 사색을 배우고자 함이지만, 두 번째로는 그의 다듬기 노력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를 배우기 위함이다.
우린 어떨까. 한국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집을 추천하라면 어법과 작품성 모두에서 전범이 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불행히도 없다 쪽이다. 아직까지는. 불행히도... 가장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는 모 여류 시인의 작품들조차도 어법으로 보면 오류투성이인데, 그녀는 어법 지키기 따위는 시인이 할 일이 아니라는 투로 일관해 오고 있다. 시적 허용과 무관한 일반적인 것들에서조차도... 이를테면, ‘가려진/가린’은 하나같이 죄다 ‘가리운’으로 되어 있고, ‘사랑스러운’을 ‘사랑스런’으로 쓴 건 운율상 시적 허용으로 봐준다 치더라도, ‘자랑스런/애교스런/불편스런’ 등과 같은 표기에서 보이는 잘못된 ‘-스런’을 남발하고 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다.
내 잡문 중의 하나에 <퇴고하지 않는 글쓰기는 교정/반성이 없는 인생과 같다>라는 긴 제목이 달린 게 있다. 그 글 말미는 이렇다. ‘그런 글쟁이는 발전하기는커녕 퇴화하고, 이내 잊히고 이윽고 매몰된다. 글뿐만 아니라 그 인생도.’ (http://blog.naver.com/jonychoi/20158076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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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00이 수십년째 올리고 있는 ‘편집자의 0’은 가끔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그것 때문에 알게모르게 신상의 불이익을 받기도...
-‘수십년째’ : ‘수십 년째’의 잘못. ‘년/개월(달)/일’ 등과 같이 기간을 나타내는 단위들은 모두 별개의 한 낱말들. 고로 그 앞에서는 반드시 띄어 적어야 한다.
-‘불러 일으키기도’ : ‘불러일으키다’는 ‘어떤 마음/행동/상태를 일어나게 하다’를 뜻하는 한 낱말. ‘부르다’와 ‘일으키다’의 두 동사가 곧장 구상적으로 연결된 형태, 곧 ‘불러서 일으키다(일으켜 세우다)’의 뜻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추상적인 의미를 지닌 말로 심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의미 특정/특화라고 한다) 한 낱말의 복합어가 되었다.
여기서는 되레, 띄어 써야 할 것은 붙여 쓰고, 한 낱말이기 때문에 붙여 써야 하는 것은 띄어 적고 있다. 짐작만으로 써대는 버릇 탓이다.
-‘알게모르게’ : ‘알게 모르게’의 잘못. 자칫 한 낱말의 부사이겠거니 하고서 확인도 안 해 본 채 용감하게 붙여 쓴 경우다. 한 낱말의 복합어로 인정되려면 위에 말한 대로 글자 그대로의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지녀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의 경우는 굳이 붙여 써서 의미를 특화해야 할 의미 자체가 없는 말.
참고로, 우리말에서 ‘-게’가 들어간 5음절의 부사는 ‘물이못나게(부득부득 조르는 모양)’뿐이다. 왜 복합어로 인정했는지, 그 뜻풀이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알게 모르게’와의 차이점과 더불어.
[사례 2]
4자매가 모여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죠. 벌써 삼년전의 일인가봐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걱정인데 좋아질거라 믿을려고요.
-‘삼년전의’ : ‘삼 년 전의’의 잘못(원칙). 위에 보인 ‘십수년째’의 경우와 흡사하다. ‘년’과 같이 기간을 나타내는 단위는 한 낱말이므로 띄어 써야 하고, ‘삼’은 수/관형사. ‘전’ 역시 독립 명사다. 그러므로 모두 띄어 적어야 한다. 여기서 ‘삼’ 대신 아라비아 숫자 3으로 표기했을 때는 붙여쓰기가 허용된다. 즉, ‘3년 전의’라고 적을 수 있다.
여기엔 예외가 있다. 이와 같이 낱 낱말들(단음절어)이 연속될 때 그걸 모두 띄어 적으면 보기에도 이상하고, 가독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다, 지면 낭비도 되기 때문에 이럴 때는 붙여 적기도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이 붙여 쓰기는 예외이고 원칙적으로 띄어 써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붙여 썼을 때 의미 구분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 허용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볼 둥 말 둥 하더니’와 같은 경우 이것을 ‘볼둥 말둥 하더니’나 ‘볼둥말둥 하더니’로 붙여 적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예외적인 허용 규정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볼 둥 말 둥’이라는 부사구가 ‘하더니’를 수식하는 구조이므로, 붙여쓰기를 어떻게 하더라도 ‘하더니’와는 띄어 적어야 한다.
-‘일인가봐요’ : ‘일인가 봐요’의 잘못. 흔히 실수하기 쉬운 대목이다. 이때의 ‘보다’는 보조형용사. 보조용언이므로 본용언에 붙여 쓰기가 허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우선 ‘-인가’에 쓰인 원형 ‘-이다’는 용언이 아니라 서술격조사다. 유일하게 활용을 하는 조사인데, 활용으로 인하여 용언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조사이므로, ‘보다’가 보조용언이기는 하지만 붙여 적을 수가 없다.
또 하나. 더 큰 요인으로는 이 ‘보다’가 다음과 같이 보조형용사로 쓰일 때는 구성으로 묶인다는 점이다. ‘구성’이란 쉽게 말하면 관용적 용법 내지는 고정된 틀이다. 그래서 어떠한 구성으로 쓰일 때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붙여 쓰기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보조용언 붙여쓰기는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허용된다’라고 하는 것.) 아래의 예들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1. (동사나 형용사, ‘이다’ 뒤에서 ‘-은가/는가/나 보다’ 구성으로 쓰여)
이제 모두들 집에 돌아왔나 보다; 열차가 도착했나 보다.
2. (동사 뒤에서 ‘-을까 보다’ 구성으로 쓰여)
남기지 말고 그냥 죄다 먹어버릴까 보다; 한 대 때릴까 보다.
3. (동사나 형용사, ‘이다’ 뒤에서 ‘-을까 봐’, ‘-을까 봐서’ 구성으로 쓰여)
야단맞을까 봐 얘기도 못 꺼냈다; 강도일까 봐 문을 열지 않았다.
4. (형용사나 ‘이다’ 뒤에서 ‘-다 보니’, ‘-고 보니’ 구성으로 쓰여)
도둑을 잡고 보니 아는 놈이더군; 가다 보니 다 왔더군.
-‘좋아질거라’ : ‘좋아질 거라’의 잘못. ‘거’는 의존명사 ‘것’의 구어체. 이것을 제대로 ‘좋아질 것(이)라고’로 생각해 보라. 그러면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명해진다.
-‘믿을려고요’ : ‘믿으려고요’의 잘못. 이것은 일상 언어생활에서 불필요하게 흔히 벌어지는 ‘ㄹ’ 첨가의 예다. ‘먹을려고/참을려고/입을려고/잘려고 했는데 말이야’ 등에서 보는 것처럼, 각각 ‘먹으려고/참으려고/입으려고/자려고’로 쓰고 말해야 할 것을 불필요하게 ‘-ㄹ’를 첨가하여 어법에서 벗어나는 경우들이다. 이 경우 대개 ‘-고요’를 ‘-구요’로 발음하여 ‘믿을려구요’로 말하곤 하는데, 이러한 것을 습관음이라고 한다. 바르게 적어야 할 때 이 습관음 버릇 때문에 흔히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니 조심하여야 한다.
[사례 3]
왜 저의손 잡아주지 않으셨나요./ 아무도 필요없었는데/ 단 1시간만 계셨으면 되는데/ 식장앞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울고만 딸은
-‘저의손’/‘식장앞’ : ‘저의 손’과 ‘식장 앞’의 잘못. 이것은 낙서 삼아 편하게 긁적인 것으로 보이는 바, 띄어쓰기 자체를 전혀 생각조차 안 한 경우라 하겠다. 이런 글쓰기 버릇은 다른 일상에서도 대충 그냥 얼른 때우기 식으로,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가 많다. 글쓰기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필요없었는데’ : ‘필요 없었는데’의 잘못. ‘필요없다’는 없는 말.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이 말은 ‘필요(가) 없다’라고 적었을 때 글자의 뜻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별도의 복합어로 인정할 만한 까닭이 없으므로 한 낱말의 복합어로 인정되지 않은 것.
-‘울고만’ : ‘울고 만’의 잘못. 우선 ‘울고말다’라는 말이 없으므로 잘못이다. 한편, ‘말다’룰 보조 용언으로 보아 ‘울다+말다’의 붙여 쓰기 허용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말 또한 ‘끝내 울고야 말았다’에서처럼, ‘-고(야) 말다’의 구성으로 쓰이는 말이어서, 잘못이다. 위의 예문을 ‘식장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끝내) 울고야 만 딸’로 풀어 써 보면 쉽게 이해되리라.
[사례 4]
죽음같은 이별이 온다해도 오늘은...
-‘죽음같은’ : ‘죽음 같은’의 잘못. 아주 무척 많이 틀리고, 헷갈려 하는 부분이다. ‘불같다/철석같다/철통같다’와 같은 한 낱말들도 꽤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여기서 쓰인 ‘같다’는 형용사. 따라서 낱말은 띄어 쓴다는 원칙에 따라 ‘죽음 같다’로 띄어 써야 한다. 그럼 어째서 위와 같이 붙여 쓰는 말도 있는데, 띄어 써야만 할까. 그건 바로 여러 번 이야기한 복합어 성립 요건 때문이다.
‘불같다’를 보자. 그 뜻은 우리도 알다시피 ‘1.정열/신념/감정 따위가 뜨겁고 강렬하다. 2.성격이 매우 급하고 격렬하다. 3.다그치는 기세가 드세거나 무섭다.’이다. ‘불’은 대체로 빛과 열을 내면서 타는 것, 화재(火災), 빛을 내어 어둠을 밝히는 물체 따위를 의미하는데, 그러한 ‘불같다’에서 그러한 ‘불’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담긴 것은 1번 뜻뿐이다. 나머지는 ‘불’에서 심화되거나 추상화된 그런 의미들뿐이다. 그래서 ‘불같다’가 한 낱말의 복합어가 되었다. 그런 의미 특화 때문에.
‘죽음 같다’를 보자. 죽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일이지만 낱말 뜻으로만 보면 그저 죽는 일, 죽어서 생명이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래서 ‘죽음 같다’라고 해도 ‘불같다’에서와 같은 심화된, 추상화된 의미가 없고, 그저 ‘죽는 일만 같다, 죽어서 생명이 사라지는 일만 같다’라는 단순한 뜻뿐이다. 그 과정 이후의 엄청난 후유증 따위와는 무관하게... 그래서, ‘죽음 같다’라는 말은 한 낱말의 복합어 ‘죽음같다’라는 말로 굳이 격을 높이지 않아도 쓰임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둔 것이다.
이처럼 ‘-같다’를 접사로 활용하여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은 말들은 적지 않다. ‘한결같다/하나같다/생때같다/감쪽같다/실낱같다/악착같다<억척같다/철통같다/금쪽같다/철석같다...’ 등등.
마지막으로 ‘굴뚝같다’의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의미는 ‘바라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몹시 간절하다’이다. 이 뜻 안에 ‘굴뚝’이라는 보통명사의 의미가 하나라도 들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 추상적인 의미뿐이다. 하지만, ‘굴뚝 같다’라고 적으면 ‘굴뚝처럼 크고 길게(혹은 우뚝) 솟은 모양이다’라는 뜻이 된다. 키가 큰 험상궂은 사람과 한밤중에 마주쳤다고 치자. 그때는 ‘어둔 밤에 굴뚝 같은 시커먼 사내가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라고 띄어 적어야 한다. 이제 복합어와 비복합어의 차이를 제대로 아시게 되었기를...
-‘온다해도’ : ‘온다 해도’의 잘못. 이 또한 자칫하면 실수하기 쉬운 표기이다. 이때는 ‘온다(고) 해도’로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된다. 이때의 ‘하다’는 ‘–라고 이르다/말하다’의 뜻이다. ‘죽인다 해도 난 그 일 못해!’의 경우, 그 말은 ‘죽인다고 말해도 난 그 일 못해!’의 뜻이 되니까.
그러니 이 표현을 ‘온다고해도/죽인다고해도’로 적어 보라. 틀린 표기임을 단박 알 수 있으리라. 띄어쓰기에서 헷갈릴 때는 이처럼 앞뒤를 고려하여 조사(보조사 포함)를 넣어 보면 어떻게 적어야 할지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사례 5]
아님 극도의 편리함으로 인해 점점 단순화 되어 머리 쓸일이 없게 됨을 역으로 표현한 의미인지. [중략]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며 욕심도 미움도 악도 없는 존재가 되는거야~ [중략] 어찌보면 내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자문자답이였던것 같다.
-‘단순화 되어’ : ‘단순화되어’의 잘못. 흔히 헷갈리는 부분이다. ‘화(化)’는 명사 뒤에 붙어 ‘그렇게 만들거나 됨’을 뜻하는 접미사인데, ‘단순화되다’에 보이는 ‘-되다’가 동사인지 접사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되다’ 또한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피동형 동사로 만드는 접사다. 접사는 앞말에 붙여 적어야 하니까, ‘단순화되다’로 붙여 적는다. ‘단순화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명사 뒤에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 ‘-하다’가 붙은 꼴. 그러므로 ‘구체화하다/형상화하다’ 등처럼 붙여 적는다.
-'쓸일 : '쓸 일'의 잘못. '쓸일'이라는 낱말은 없다. '쓸일'이 사전에 없는 낱말이라는 걸 모르거나, 띄어 써야 하는지 어떤지 헷갈릴 때는 '머리 쓸일'을 풀어 보라. '머리를 쓸 일'이 된다. '머리쓰다'는 없는 말이지만 만약 있다고 할 경우에도 '머리쓸 일'이 되지 않겠는가.
'쓸일'이 한 낱말인지(복합어인지)를 생각해 볼 때도 복합어 요건을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쓸일'과 비슷하게 관형형 '볼'이 붙은 한 낱말의 복합어 '볼일'을 생각해 보자. '볼일'은 글자 그대로 뭘 보아야만 하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라든가, '용변' 대신 쓰는 말이잖은가. 그걸 떠올린 뒤 '쓸일'에도 그런 의미 이동/심화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없다. 그러니, 한 낱말의 복합어로 인정할 이유도 없는 것이므로 '쓸 일'로 띄어 적는 것이다.
-‘되는거야’ : ‘되는 거야’의 잘못. 앞서 다뤘듯이, ‘거’는 의존명사 ‘것’의 구어체. 의존명사 앞에서는 띄어 적어야 한다.
-‘어찌보면’ : ‘어찌 보면’의 잘못. ‘어찌보다’라는 낱말이 없다. 띄어쓰기가 헷갈릴 때는 원형(기본형)을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된다. 다만 ‘어찌하다’는 한 낱말의 복합어. ‘어떠한 방법으로 하다’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 외에 ‘어떠한 이유 때문에’라는 뜻을 나타내는, 심화된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문자답이였던것’ : ‘자문자답이었던 것’의 잘못. ‘-이었-’의 준말이 ‘-였-’이므로 거기에 또다시 ‘-이’를 붙여 ‘-이였’으로 쓰는 건 비정상. 즉 잘못이다. 표기를 할 때 좀 헷갈린다 싶으면 거기서 멈춰서 잠시 생각 고르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온다.
[사례 6]
대체로 간단한 오류가 들어 있는 문장을 수백 개 들으면서 이 중 오류가 있는지를 찾아내도록 하는 테스트에서, 7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문법적인 오류를 거의 모두 찾아내었다. [중략] 그중에서도 쓰기와 관련된 부분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계속 노력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중’과 ‘그중’ : 위의 예문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가져온 게 아니다. 이런저런 예문감을 훑고 있는데, 눈에 띄었다. 놀랍게도 완벽했다.
이 글은 조기 외국어 교육과 관련된 전문적인 글의 일부로서 언어학 부분의 칼럼 초고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띄어쓰기는 물론 맞춤법까지 놀랍도록 완벽했다. 작가니 뭐니 하는 사람들과는 판이했다. 글쓰기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예를 든 ‘이 중’과 ‘그중’은 띄어쓰기에서 무척 까다로운 부분이다. 뒤의 말은 복합어지만, 앞 말은 두 낱말이라서 띄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그’는 본래 동격의 대명사/관형사다. 하지만, ‘그중’만 복합명사가 되었고, ‘이 중’은 제외되었다. 사유는 여러 가지지일 터이지만, ‘이중’이라 표기할 경우, 한자로 표기가 되지 않는 ‘그중’과는 달리 -- ‘기중(其中)’으로 표기하면 ‘그중(범위가 정해진 여럿 가운데)’의 뜻과는 달리 ‘그 가운데’가 된다 -- 여러 한자어 ‘二重/泥中/二中/里中/二衆’과의 연결 혼동 문제도 고려되었음직하다.
‘이/그/저’가 붙어 한 낱말을 이룬 복합어들 중에는 이처럼 특별히 구분해서 암기해 둬야 할 말들이 좀 있다. 특히, ‘저-’가 붙은 말들에 그런 게 많은데, 나중에 한꺼번에 다루기로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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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무시파들의 하나같은 핑계.
"아 이 바쁜 세상에, 거 뭐 그런 것까지... 시간 없어. 바빠요, 바빠."
바로 이것이 나쁜 버릇의 시작과 끝이다.
우리나라는 검색 천하.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후일담, 드라마/영화에 보이는 소품이나 의상,
뉴스, 시합 결과... 따위는 생각 나는 대로, 얘기가 나오는 대로,
심지어 수다판이나 술자리에서도 수시로 검색한다.
그런데도 긴가민가한 낱말 하나는 검색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글쟁이들조차도. 그게 아예 버릇이 되었다.
낱말 검색 버릇, 두어 달만 들이면 이내 박사가 된다.
공부하지 않고는 못 배기고, 검색하지 않으면 찜찜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버릇이 들면, 그땐... 걱정할 게 없다. 저절로 실력이 쌓이기 때문에.
뭐든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사람한테는,
제아무리 시간을 줘 봐도, 여전히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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