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一事一思] 퇴고하지 않는 글쓰기는 교정/반성이 없는 인생과 같다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2. 5. 18. 16:04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퇴고하지 않는 글쓰기는 교정/반성이 없는 인생과 같다

 

    고은 선생의 시 중에 아래와 같은 <그 꽃>이라는 유명한 3행 단시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선생은 이처럼 짧은 시를 두고 몇 달을 고심했다. 그리고 나중에 발표 후에도 한 번을 더 고쳤다. 그게 현재의 저 시구들이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박목월 선생의 시 <나그네>다. 소리 내어 읊조리면 읊조릴수록 시어들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3.4(3) 조와 7.5 조의 민요조를 맛깔나게 잘 버무린 덕분이다. 선생은 저처럼 쉬운(?) 시를 쓰기 위해 대학노트 반 권을 썼다.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느라. 나중에는 수정의 편의를 위해 연필과 만년필을 병용했다. 수없이 고쳐지는 부분은 연필로 썼고, 그렇게 해서 확정된 부분은 만년필로 표기했다.

 

  작가 이문열은 우리말 중에서 3.4조가 읽는 이들에게도 제일 편하고 울림이 가장 잘 전달된다는 걸 일찍 깨달은 사람이다.  퇴고(推敲)할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그런 율조를 살리기 위해서 그는 부단히 노력했다. 시가 아닌 산문인데도 말이다. 이런 퇴고의 편의를 위해서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글쓰기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작가들 중 하나다.

 

  이처럼 글쓰기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퇴고를 통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는 이들의 작품에서는 독특한 체취가 풍긴다. 성석제 같은 이는 한때 한 페이지에서 같은 낱말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도 없이 고친 적도 있고 (그 덕분에 이 시대의 가장 빼어난 ‘이야기꾼’으로 그는 일찍이 올라섰다), 김영하 같은 이는 자신의 글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 명료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번역될 말들은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것들이라 해도 퇴고 과정에서 단호하게 배제한 적도 있다.

 

  이런 모든 글쓰기의 수고들은 퇴고 과정을 통해서 다져지고 살진 모습으로 남는다. 명작들은 예외 없이 이런 되돌아보기를 통한 수정 작업, 곧 퇴고를 수없이 거친 것들이다. 독자에게 전해진 후에도 (발표 후에도) 고쳐질 때가 있는데, 어떤 작품 중에는 전면 개작 수준으로 완전히 뜯어 고쳐진 것들도 있다. 그 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되돌아보기(퇴고)는 제대로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 중의 필수 과정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는 이들 중에 (혹은 더 정확하자면, 작품을 그려낸다고 할 정도로 글쟁이 흉내를 내는 데에 그치는 작가/시인 중에) 이 퇴고를 대충 대충 해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할 경우, 어느 얼치기 시인 하나는 시 3편 퇴고에 딱 5분도 안 걸리는 걸 본 적이 있다.

 

  글은 사람이다. 작품의 앞뒤나 그 안 깊숙이에서는 그 작가가 그 작품 한 편을 두고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적당히 긁적거린 것들은 어떻게 해도 표가 난다. 독자들이 그걸 모를 것 같지만, 주의 깊은 이들은 안다. 그래서 독자들도 그런 작가들에게는 그 작품을 한 번 쓰윽 간단히 훑어봐 주는 것으로, 답한다. 그런 이들은 작품으로 세상에 그 이름이 기억되는 일이 여간해선 생기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퇴고하지 않는 글쓰기는 교정/반성 없는 인생과 같다. 그런 글쟁이는 발전하기는커녕 퇴화되고, 이내 잊히고 이윽고 매몰된다. 글뿐만 아니라 그 인생도. (To me, writing without revision is equivalent to the life ignoring correction/introspection. Such a writer is far from development, gets degenerated, forgotten soon, and buried in short course. Included in there are not only the writings but also his life.)*      [May 2012]

 

* 영문 표기를 덧댄 것은 나중에 혹시라도 영문을 병기해야 할 경우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해본 것이다.   글을 쓸 때 껴안고 있던 심정들이 영문 표기를 가장 손쉽게 해주는 길이기도 하므로.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