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클로버를 따면서
- 자세히 보면 예쁘다. 너도 그렇다.
최 종 희
내게 돈 안 되는(!) 재주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네잎클로버를 따는 일이다. 어디서고 작심하고 겨누면 대개 몇 분 안에 몇 개는 손쉽게 딴다. 요즘 아침마다, 산책길에 1~2분씩을 투자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손에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열 개 안팎의 네잎클로버가 쥐어진다.
네잎클로버. 대체로 행운의 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선지 다섯 잎짜리는 그와 반대로 악운으로 여기는 근거 없는 미신도 있다.
네잎클로버는 우리 같은 전문가(?)들에게는 아주 흔히 눈에 띈다. 다섯 잎짜리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여섯 잎짜리도 있다. 아주 드문 편인데, 나도 지금까지 겨우 두 개밖에 따지 못했다. 그 정도로 귀하다. 그래선지 겹벌 행운으로 여긴다. 즉, 두 배의 행운으로 여기며 애지중지한다.
<이것이 여섯 잎짜리. 하나로 보이는 맨 위 한가운데 잎이 두 개가 들러붙어 겹쳐져 있다.
잎맥으로 확인된다. 그 잎의 선단부 하트 모양을 봐도 두 개가 잇따라 있는 게 보인다. >
그래서 압착하면 대체로 이상한 모양이 되곤 한다. >
며칠 전, 어느 출판사 사장과 점심 약속이 있던 날 아침, 아파트 뒤꼍에 살짝 만든 우리 화단 근처를 돌아보다가 네잎클로버를 한 주먹 땄고, 다섯 잎 클로버도 두어 개 땄다. 그리고... 여섯 잎 클로버도 하나.
서둘러 대충 압침을 한 뒤, 코팅을 했다. 마르기도 전에. 처음으로 녹색이 보전된 걸 만들었다. 완전하게 말려서 코팅한 것들과는 영 딴판으로, 녹색이 싱싱해서 보기에 좋았다. 잘 말린 것들은 오래 보관할 수는 있지만 색깔이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초록 시절과는 달리 추레해 보이기도 한다.
그걸 그날의 점심 자리에서 사장에게 건넸다. 네 잎짜리에서부터 여섯 잎짜리까지 차례로 하나씩. 그랬더니, 그는 네잎클로버도 실물은 처음 본다면서, 그것들을 모두 액자에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두겠단다.
그때 내가 아부를 살짝 했다. 여섯 잎짜리까지 준 것은, 그 사장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출판 사업에 - 그다지 돈도 안 되는 그런 일에 - 십여 년 넘게 매달려온 사람에게 언젠가 돌아갈 행운을 두 배로 해서 미리 기원하고 싶어서라고. 여섯 잎짜리는 나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네잎클로버를 따는 일. 생각보다 쉽다. 요령이라고 해봤자, 빠뜨리지 않고 재빨리 훑는다는 정도.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조급해 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훑는 시선을 갈지자로 해서 좌우로 번갈아 보되, 건너뛰는 부분이 없도록 하라는 것 정도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드시 네잎클로버가 눈에 들어온다. 저 여기 있었어요! 하면서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때로는, 저를 발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듯도 하다.
다시 말하면, 토끼풀 천국이라 할 만치 많은 곳에서도, 네잎클로버는 수줍음 많은 처녀처럼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느 누군가의 눈길이나 손길에 발견될 때까지는. 그러려면, 네잎클로버를 맞이할 사람은 그 작은 풀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죄다 훑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 하다 보면, 찾던 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눈에 그 보물이 보인다. 예쁘디 예쁜 모습으로.
*
요즘 서울의 교보문고 건물 밖에는 배너 하나가 걸려 있다. 그 내용은 위의 제목에 인용한 것과 비슷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바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전문이다. 그렇다. 자세히 훑거나 뜯어보면 무엇이고 예쁘기 마련이고, 자꾸 그렇게 하다 보면 뭐든 사랑스럽게 된다. 내가 네잎클로버들에게 손길을 자꾸만 내미는 것도 어쩌면 내 방식의 풀꽃 사랑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피어났다가 스러져가는 것들 중에서도 사람 곁에 머물면서 더 오래 사랑받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챙겨주고 싶은.
나는 내가 딴 네잎클로버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에게 건네주면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네잎클로버를 딴다. 들여다보면 예쁠 그들을 위해.
그걸 지닌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미신이든 아니든, 나는 그것들을 마냥 나눠주고 싶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라도 있음을 작지 않은 내 행운으로 여기면서. [May 2012]
* '여섯잎클로버'와 '여섯 잎 클로버' : 현재 우리말 사전에 '네잎클로버'는 있지만, 다섯 잎, 여섯 잎짜리에 대해서는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 만큼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탓. 위의 제목에 붙여서 적은 것은 '네잎클로버'와 같이 '여섯잎클로버'가 지닌 겹벌 행운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다. '여섯 잎 클로버'로 적으면 여섯 잎짜리 클로버라는 구상명사의 의미만 지니게 되기 때문.
* 위에 적었듯, 네잎클로버가 내게는 남아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다음 정모 때, 울 찻집 식구들에게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네잎클로버와, 다섯 잎짜리들을 내 마음의 선물로 드릴까 한다. 모든 분들의 삶에 행운이 보태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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