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아그라 생산 공장인데??
최 종 희
“내가 비아그라 생산 공장인데...”
누가 내게 비아그라나 그 비슷한 종류의 것들을 내밀거나, 필요하냐고 물어오면, 얼마 전부터 내가 하기 시작한 대답이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나은 답인 듯도 싶고,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전에는 누가 그걸 주면 굳이 사양하기도 뭐하고 해서 받았다. 바깥 나라, 특히 미국엘 가면 그곳의 옛 친구들이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한 뭉치씩 건네기도 하고, 어떤 미국인 친구는 병째로 슬쩍 내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한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내게 건네고 싶은 온정어린 마음씨를 재미있게 담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획득해서(?) 내 서랍 속으로 들어간 비아그라 류는 나름 그 역할을 십분 해냈다. 나보다 한참 연상인 동료 부장은 내게 그런 게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내 방 출입이 잦았고, 내가 업무상 어쩔 수 없이 환대해야 하는 시청/구청의 담당 과장들, 경찰 간부, 출입기자, 심지어는 안기부(90년대 초입이었던 당시엔 안기부였다.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뀐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99년의 일)의 담당들까지도 내 방을 기웃거리는 일이 잦았다.
바쁠 때면 내가 먼저, “그것 필요해서 오셨어? 경기 좋은 모양이네...”하면서 두어 알을 꺼내주면, 이내 고맙다는 소리들이 헤죽거렸다. 내 방을 나서는 그들의 엉덩이에 힘깨나 들어간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런 비아그라였다. 내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타인들의 육체적 욕망 해결에 작은 도움이 될 뿐인 낱알 물건. 그 바람에 나는 녀석이 광범위하게 누리는 인기에 무심했고, 저절로 관심도 줄었다. 있으나마나 한 것. 그게 나와 비아그라 녀석과의 관계였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비아그라 소리를 많이 해댄다. 녀석이 필요해져서는 아니다. 나는 ‘내 삶의 비아그라’라는 말속에 녀석을 넣었다. 내 나름, 녀석의 효용을 살린 셈이다.
삶의 비아그라. 그 주원료는 어떤 사물일 수도 있고 지향이나 대상일 수도 있으며 꿈일 수도 있다.
산책길에서 대한 네잎클로버, 아침마다 출근 버스를 향해 힘찬 엉덩이로 씩씩한 발걸음 소리를 뿌리고 가는 듬직한 동네 새댁의 맑은 표정, 점점 더 많이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 아르바이트하러 나오는 엄마를 따라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7살 세영이의 씩씩한 아침 인사, KBS ‘러브 인 아시아’의 다문화가정 표창 행사에서 올해 대상을 수상한 필리핀 여인의 그 해맑은 미소와 진정어린 감사 인사(결혼 17년차인 그녀의 남편은 결혼 초 한쪽 다리 절단에, 이제는 뇌졸중으로 전신마비 상태. 몸져누운 시어미도 있고... 16살짜리 딸은 엄마의 인사말 내내 주룩주룩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이 나라 하늘 밑 어디에선가 오늘도 하루의 삶을 알차고 얼 있게 살아내고 있을 사람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때때로 눈이슬과 더불어 엉겨오는 그리운 이들...... 그 모든 것들이 그들과 나의 삶에서 비아그라의 원료가 된다.
거기에 그것들에 관심하고 껴안으려는 얼마간의 애씀과 몸수고만 보태지면, 비아그라 완성품이 태어난다. 그 생산 공장은 바로 나다. 타인과 나의 삶, 또는 주변의 사물들을 원료 삼아 삶의 활력소이자 정신의 원기소를 만들어내는 곳, 그것은 곧 나 자신이다.
내가 내 삶의 비아그라 생산 공장이라고, 자신 있게 내뱉는 까닭. 그것은 내 삶의 생력소를 만드는 건 내 자신이라는 걸, 새삼 고맙게 깨우치게 되어서다. 그것도 타인들 덕분에, 뒤늦게이긴 하지만. [Ma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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