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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어와 성형 언어, 그리고 노무현 떠올리기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2. 1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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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내용은 3월에 발간될 <말과 글> 봄 호에 게재될 내 글이다.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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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어 닦아 보기 : 정치 언어와 성형 언어, 그리고 노무현 떠올리기

 

요즘은 가히 만유정치(萬有政治. omnipresent politics)’의 시대라 할 만하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만유인력이 늘 작용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 일상은 안팎 모두가 정치 행위의 영향권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정치의 영향은 더욱 커지고 넓혀지며, 강고해지고 완강해진다.

   

단순한 예로,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의 질에서부터, .퇴근 길의 도로 상태, 그 위의 대중교통 시스템, 교통신호 체계... 등을 보자. 그 모든 것들이 정치적 행위의 결과물인 정책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정책의 내용에 따라서 그 품질과 형식을 달리한다. 정책 결정은 대표적인 정치 행위에 들며, 그 내용은 언어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정치 행위 전반에 언어의 관여는 필수적이다.

 

뻔한 말이지만, 정치 언어는 정치적이다. ‘정치적이라 함은 용어 선택과 겨눔, 결과와 효용 등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고려되고 선별되어 정치적 용도로 단장되고, 정치적 목적으로 판단되고 수용됨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윤색되거나 변질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언어 발달 측면에서 보자면 정치적 언어는 최고도로 발달된 언어 형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언어 발달 단계에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이론[주1]이 있지만, 크게 보면 대체로는 다음의 세 단계를 이룬다 : 주로 모방에 의존하는 익히기 1단계, 연상과 논리가 구축되는 익히기 2단계,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확대 발전시켜서 창조적 표현에 이르는 3단계.

 

정치적 언어는 그중 3단계에 속하는데, 정치적 언어에도 그 손질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3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일반 언어에 선별 수준의 손질을 가하여 초보적 상징성을 덧붙이는 것인데, ‘조립(assembly)/공작(maneuvering) 단계라 할 수 있다. 함축적 의미 전달을 위해 주로 비유와 이미지, 관용구와 속담 등을 활용.착안하는 언어 선별 수준이다. 예를 들면 백의종군’, ‘한 알의 밀알’, ‘국민 대통합’, ‘빅 텐트와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는 조작(manipulation) 단계이다. 정치적 이미지의 강도나 선명성을 증강시키고, 흡인력과 정보 유통력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언어 조작을 한다. 특히 집중적인 특정 이미지 확보와 각인을 위해, 언어 조탁을 거쳐 카피라이터 수준의 홍보 용어를 개발(창안)하는 단계다. 예를 들면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체제 교체’, 나아가 세대교체를 이루자.”라든가, “단순히 정치판 손보기나 물갈이 수준이 아니라 불판자체를 통째로 바꿔야 합니다.”와 같은 경우다. 이 단계에서는 긴 문장 대신 구호화되어 압축되는 특징도 보인다.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시대교체를!’이라든가, ‘정치판의 불판 자체를 바꾸자!’ 등으로.

 

세 번째의 손질은 언어 성형(language cosmetic surgery) 단계. 미화와 분식(粉飾)을 통해 추상화와 고위 상징 개념을 반영한다. 주로 긍정적 비전 담기 등에 사용되는데, 추상적 표현으로 뭉뚱그려짐에 따라 내용(실체적 진실)은 더욱 모호해지는 특징이 있다. , 언어는 아름다워지지만 실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거나, 도리어 감춰진다. 예를 들면, ‘창조경제[주2], ‘국민행복캠프’, ‘새정치’, ‘저녁이 있는 삶’, ‘행복 발전소등이 이에 속한다.

 

정치 언어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현대 정치 행위의 90% 이상이 언어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절대적 수단(absolute means)’이 되었다. 인상비평 수준의 단순 이미지[주3] 정치 시대에는 언어가 보조적 수단이었지만, 오늘날의 정치에서는 연설, 유세, 기자회견 등과 같은 직접적 소통은 물론이고, 정책 입안, 정보 유통 및 전파(매스컴, SNS...) 등도 모두 언어에 의해 이뤄진다.

 

광의의 정치 언어에는 그 정치가의 외모/표정/어투/톤과 제스처도 포함된다. 화법에서 내용(콘텐츠)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들이다. 청중들의 시선 집중력, 흡인력, 호소력 등과 같은 측면에서 발언 효과를 좌우한다. 대선 주자들은 시선 마사지로 표를 얻고, 손과 몸짓으로 감동을 키우고, 입으로는 콘텐츠를 엮어내어 승부한다. 주자들의 이미지 메이킹에서 이제는 실물 비주얼도 언어 문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발언 태도, 외모, 표정, 성량, 높낮이 조절, 제스처, 시선 관리, 사투리 잔재... 등과 같은 요소들이 주자들의 이미지 형성에 직접적/총체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요즘과 같은 오디오/비주얼 시대에는 정치인의 존재 가치가 이러한 비문자 언어에 의해서 판단될 때도 흔하다. 특히, SNS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 시대의 파급 효과가 급증하고 그 효과가 집단지성을 좌우하기도 하는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는, 이 광의의 정치 언어가 정치 시민(유권자)들의 판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인상 비평을 좌우할 정도다. 그 때문에 정치적 언어의 윤색 과정에서 이를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정치가들도 드물지 않다. 우리가 정치인의 언어를 관찰할 때, 그 앞모습은 물론이고 옆모습과 뒷모습까지 빼놓지 않고 살펴야 하는 이유다.

 

위에서 다룬 것처럼, 정치적 윤색이 가장 고도화된 언어가 성형 언어. 성형 언어는 성형 미인[주4]과 동격이다. 껍데기만 잠시 그럴 듯하다. 심하게는 그때뿐인 1회용품일 때도 잦다. 소구력은 있지만 콘텐츠가 없다. 알맹이(실체와 진정성)는 가출 상태다. 가출자를 찾아내려면 가출 신고를 하고 찾기에 나서야 하듯, 알맹이가 빠진 정치적 성형 언어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맹이를 알아보려면 찾아내기의 수고를 거쳐야 하고, 그 결말은 허망/실망으로 수렴될 때가 많다. 가출자가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있을 때가 많듯이. 정치판에서 쓰이는 언어들이란 본래 거짓을 진짜처럼 그럴 듯하게 만들기[주5]용이라고 콕 집었던 조지 오웰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선각자적 관찰이었다.

 

성공적(?)인 선동정치가의 대표 격인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 도리어 감정적인 느낌으로 행동을 정하는 여성적 소질을 갖고 여성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보수층에 의하여 정치 상품으로 발탁되어 대선 후보가 되었던 박근혜는 꼼꼼히 챙기는 수첩공주라는 세심한 여성적 이미지로 국민행복캠프를 앞세웠다. 유권자들은 그녀가 그런 수첩에 담긴 국민들의 삶 하나하나를 챙겨줄 친절하고 자상한 근혜 씨일 것을 믿으며, 국민들에게 안겨줄 행복한 미래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절망으로 돌아왔다. 박근혜의 대표적인 성형 언어인 창조경제만 해도 알고 보니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에 가까웠다. ‘창조경제가 수첩 속에 숨겨둔 개인적 민생과 결합되자, 그 실체는 최순실-박근혜의 경제 공동체 지갑 챙기기 모습으로까지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의 언어에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박근혜의 성형 언어가 국민을 유린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분열의 씨앗도 되고 있다. 우리나라 헌정사에 지워지지 않을 대표적 흑역사의 하나가 그렇게 박근혜의 언어에서 발원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말했다. ‘정치가 중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잘못하는 사람도 있다. 설령 언변이 빼어나더라도 그 안에 철학과 사상, 가치가 담기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말처럼, 정치가라면 알맹이가 제대로 담긴 말을 해야 한다. 나아가, 알맹이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 밑바닥에는 말하는 이의 진심이 담겨야 한다. 진정성과 정직함이 배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분식/치장 언어가 된다. 그것이 가식과 결합하면 나쁜 성형 언어가 된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태생적 공약(空約)들이 그렇다.

 

노무현의 어록은 풍성한 편이다. 아래에서처럼 대충 몇 개만 살펴보더라도.

 

- 언론의 자유는 언론 사주의 특권과는 구분됩니다. 언론은 자유를 누려야 하되, 언론 사주는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론사와 대치 관계일 때)

- 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나 (장인의 용공 이력 공격을 받을 때)

- 권력자에게는 수십억 원씩 바치면서 작업사고로 사망한 근로자의 보상금 몇 천만 원을 가지고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게 기업정신인가. (일해재단 청문회 때)

-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퇴임 인터뷰)

- 제가 생각하는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1988. 국회 첫 질문)

-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합니다. (제주 4.3 위령제)

- 패배를 받아들여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는 않으며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꿔가는 게 세상 이치지만,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2008. 퇴임 고별 만찬사)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금도 회자되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가 있다. 당선인 인사 때와 대통령 취임사에서 빠지지 않고 쓰인 말이다. 거기에 공정한 사회를 덧붙여서, 현재 민주당계 대선 후보 세 사람 모두가 이 말을 대선 캠프 문간에 주련(柱聯)처럼 내걸고 있을 정도다. 그만치 와 닿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 뜯어보면 이 말은 고급한 비유어도 아니고, 추상화 단계를 거쳐 꾸며진 상징어도 아니다. 전혀 성형되지 않은, 그저 평범한 보통명사일 뿐이다. 그야말로 자연산이다.

 

참여정부에서 대변인을 했던, <대통령의 말하기> 저자 윤태영. 그는 노 대통령이 곤란한 처지였을 때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기자들 앞에 나가서 고상한 언어로 꽤 근사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니가 대통령이냐? 늬가 대통령 해라라며 꾸짖고는 기자들 앞에 나서서 대뜸 미안합니다라는 말부터 했다. 윤태영의 최근 술회(2017.1.20.)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대통령 전세기 안에서 라면을 먹었고, 가장 값싼 국산 담배인 디스를 피웠다. 퇴임 후에는 자전거 뒤에 보조용 카트를 매달아 거기에 손녀딸을 태우고 자신이 페달을 밟으며 들판의 농로를 달렸다. 비서가 운전해주는 승용차 대신에.

 

그의 언행 모두는 자연산이었다. 의도적으로 꾸미거나 전혀 가리지 않는 바람에 날것 냄새가 지나치게 나기도 해서 그게 흠이 되기도 했을 정도로. 그의 언어에는 진심이 담겼고, 진정한 열정이 배어 있었다. 정치 언어에도 지켜져야 할 도덕이 있다. 미덕까지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정직이다. 임시방편, 임기응변용의 거짓말로 때워서는 안 된다. 거짓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링컨은 말했다.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며 전 국민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김선일 피랍 사건 때(2004.6.21.) 밤새 보고 받고 숙의하느라 새벽에 관저 소파에서 잠든 노 대통령.

당시 그는 이라크 파병 때문에 발생된 사건이라서 몹시 고민했다.

출처 : 가톨릭신문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안에 그의 사상, 철학... 등 모든 것이 담긴다. 숨겨진 성격까지도 드러난다. 언어를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의 행동 선택 유형까지도 예측이 가능하다. 대선 주자들의 언어를 유심히, 그리고 세밀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국민행복캠프줄푸세[주6] 등의 성형언어에 속아서 잘못 뽑는 바람에 온 국민이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이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두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바보다. 우리가 꿈꾸는 새 정치에 쓰일 새로운 정치 언어들을 감독해야 하는 이유다.

 

내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걸 해내야 한다. 그 이유를 일찍이 플라톤이 이렇게 요약했다 :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게 되는 형벌 중 하나는 당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통치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바보 노무현의 모습을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말한 대로 과장급 대통령이었을지라도, 최소한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최대한의 정직으로 국민을 대한 진심어린 인간이었으므로. []


[주1] 대체로는 다음의 네 계열로 나눌 수 있다 : 스키너(B. Skinner)의 행동주의 이론, 반두라(A. Bandura)의 학습 이론, 촘스키와 레넨버그(N. Chomsky & E. Lenenberg)의 생득이론, 피아제와 비고츠키(J. Piaget & L. Vygotsky)의 인지발달이론.


[주2] 아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세 가지로,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생각이 널리 퍼진 적도 있다. 최초 발설자는 이철희 의원(2013.4.13.)


[주3] 정치인의 단순 이미지라 함은 좋은 사람(good guy)', ’나쁜 사람(bad guy)‘, ’썩 좋지는 않아도 조금 나쁜 사람(moderately bad guy)‘ 등의 단순 구분법에서부터, 소속 정당, 고정화된 과거 이력... 등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자료에 의존하여 집단적으로 형성된 일의적 이미지를 말한다.  

[주4]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묘하게도 60대치고는 몹시 고운 할머니인 박 대통령의 얼굴도 성형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다.


[주5]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English Language)’, 1946


[주6] 줄푸세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참모들이 개발하고 박근혜가 내세운 구호. 세금은 이고 규제는 고 법질서는 운다는 뜻의 줄임말.



저자 소개 : 서울대 사대 국어과 졸업. 작가/저술가.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대표.

언어는 그 사람이다를 달고 산다. 문학 행위 수단으로서의 한국어에 관심해 오면서 작가용 국어사전인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을 펴냈다. 그 뒤 최근 몇 해 동안, 언어심리학(인지과학인 아닌)에 매달려, 언어를 통해 사람을 읽어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20166월에 탈고한 <박근혜의 말>이다. 그 밖에, 저서로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 <내가 따뜻한 이유> 2종이 있으며, <(가제) 언어 현미경을 통한 대선 주자 검증>(근간)<열공 우리말>(2월 중 출간 예정)이 있다.

블로그 : ‘네이버/다음’ <최종희의 생각 변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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