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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 없으면 의사가 굶어 죽는다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5. 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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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 없으면 의사가 굶어 죽는다

 

시카고 외곽에는 미국 최대 물류 회사의 유통기지 하나가 있다. 몇 만 평 규모. 그곳을 방문하려는데 그 회사에서 호텔로 일반 차가 아닌 리무진을 보내왔다. 아래 사진이 그것.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유통기지를 돌아볼 때 하도 넓어서 차가 필요한데 그때도 따로 기사를 붙이기가 그래서 아예 하루를 전세 낸 듯했다.




그런 대규모 시설을 안팎으로 둘러보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데, 꽁초들을 그냥 아무 데에나 버렸다. 저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나 싶었지만, 그걸 지적하면 결례가 될까 봐 그냥 못 본 척했다. 나는 외부 방문객인데다 나 역시 흡연자인데...

 

LA에서의 일. 작지 않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을 방문했을 때인데 그도 흡연자인지라 때가(?) 되어 우리 둘이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사장이라도 금연 건물 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터라서. 맛있게 피우고 나자 그가 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을 둘러보니 쓰레기통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도 그를 따라서 바닥에 버리고 나서, 물었다. 쓰레기통이라도 세워 놓으면 다른 직원들도 바닥에 버리는 일이 없을 것 아니냐고.

 

그가 말했다. 일부러 쓰레기통을 세우지 않았단다. 그런 쓰레기라도 건물 밖에서 눈에 띄어야 외부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일거리가 생긴다고. 그래서도 더욱 대형 건물이든 중.소형건물이든 건물 주변에 그 흔한 쓰레기통 하나 없는 거라고. 쓰레기통이 없는 게 히스패닉계 사람들의 밥벌이를 만들어준단다.

 

*

집에서 담배를 피울 일이 있으면 나는 1층으로 내려온다. 우리 아파트는 101호가 없는데, 그곳을 쉼터로 만들어서다. 땅값이 싼 곳에 지은 대형 평형이다 보니, 그 공간이 거의 50여 평에 가까워서 중앙에 둥근 모자 꼴의 목제 원형 탁자도 있다. 앉아서 놀기에 딱이다. 그러다 보니 외부인들이 꼬인다. 중고등학생에서부터 이웃 아파트 주민들까지도. 젊은 녀석들이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기도 해서, 주민들의 원성이 잦다.

 

아침에 내려가 보면, 엉망이다. 여기저기 널린 담배꽁초는 기본이고, 온갖 휴지와 팩 종류의 음료수, 과자 봉지, 소주병에다 맥주 캔들까지... 그걸 치우기 위해 아침 8시 반이면 나이 지긋한 청소부 아저씨가 온다. 손잡이가 높이 달린 커다란 쓰레받기와 빗자루, 대형 쓰레기봉투가 담긴 카트가 기본 장비.

 

그분이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하다가 어느 날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런 것들 치우는데 짜증도 좀 나시죠?” 하면서.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 “이런 것 청소하는 일 없으면 내 일자리도 없지요. 내 일인 걸요 뭐... 다만, 바닥에 침들을 좀 안 뱉었으면 좋겠는데. 침은 빗자루로도 잘 안 쓸려서...”

 

*

우리나라에서 사교육비로 쓰이는 게 최소 18조에서(통계청 자료) 30조 원(민간 기관 추계)이다. 한 해 국방비 예산과 거의 맞먹고, 교부세(46)를 빼면 순수 공교육 예산의(2017년 기준, 10.5) 거의 두 배다. 쉽게 말해서 학원에다 쏟아붓는 돈을 육해공군 유지/개선 비용으로 쓸 수만 있다면, 국민들은 지금보다 세금을 7.5%쯤 덜 내도 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90% 이상이 사교육을 받는단다. 하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울 집 외계인 아가씨도 여러 해 전부터 사교육비 지출 원인 제공자다. 처음에는 사교육에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친구들도 다 다닌다는 일반론을 꺼내들더니, 거기에 반응이 없자, 학원 보내주면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마음 약해진 엄마가 보내주자, 몇 달을 못 견뎠다. 이번에는 그룹 과외를 시켜달란다. 그 역시 몇 달. 그 사이에도 성적은 요지부동, 지극히 성실(?)하게 반에서도 중간 이하를 지켰다.

 

뭣도 낯이 있다고 몇 달은 그냥 지내더니, 이번에는 개인 교습(초빙 가정교사)을 시켜 달란다.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기필코 보여주겠노라고. 그 결과는 위의 사교육 단계(?)에서 이미 증명되었으므로 생략한다. 지금은 그나마 자신과 뜻이 맞는 여교사 집에 개설된 공부방에 다니고 있다.

 

사교육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에는 여러 이론들이 있다. 내 경우는 단순한 편인데, 학원 등에 보낸다고 해서 공부하려는 기본적인 열의/관심이 없는 아이들의 태도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둘째로는 사교육을 통해서 모든 아이들의 성적이 오른다면 꼴찌는 누가 하나?와 같은 몹시 범인류애적 걱정 때문이다. (울 집 공주는 한 학년 420명 중 성적순으로 자신의 아래에 70명씩이나 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 분이다. ㅎㅎㅎ. 하지만 딸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잘하는 게 있고, 그쪽으로 발전시켜 나가리라고 믿고 있어서다. 본인이 원한다면 대학에 안 가는 것도 찬성이지만, 전문대 정도는 가고 싶어하신다... 나도 그 정도는 다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못 알아듣는 용어가 너무 많으면 안 되니까.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 해서라도 간다.)

 

셋째로는 사교육 바람에 공교육 담당자들의 군기가 엄청 느슨해졌다는 개인적 관찰 결과도 한몫한다. (짧게 말해서, 요즘 교사들을 보면 좋은 교사 1/3, 보통 그렇고 그런 교사 1/3, 나쁜 교사 1/3이다. 나쁜 교사 중에는 아주 나쁜 학부모를 겸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지난번 대선 후보 중에 사교육 폐지(?)를 주장한 이가 있었던 듯도 하다. 나는 150% 찬성이다. 사교육에 칼을 빼들었던 전두환이 그립다 할 정도로, 사교육의 폐해는 이 나라를 좀먹는 보이지 않는 교육 망가뜨리기의 원흉 중 하나에 들고 있는 지 오래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사교육이란 말 자체를 떠올리기조차 기피해 왔을 정도.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교육의 전면적인 폐지는 교육계 주변에서 그래도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오고 있다고 생각해 온 수많은 선의의 비공식 교육자들을 굶어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나쁜 교사들에 물들거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보통 교사들까지 치면, 이미 이 나라의 공교육 알맹이는 뿌리 뽑힌 채 오래인데 -요즘 중학생들조차 빨간 루즈를 바르고 학교 다니고, 그걸 탓하려는 교사[]는 일부 극성 학부모의 말매를 맞는다 - 그나마 사교육 종사자들이 없으면 학력 유지가 될 법이나 한가 싶어지기도 한다.

 

*

유럽 속담에 토마토 철이 되면 의사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얘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좋은 의사들은 환자에게 토마토와 같은 식품 위주의 건강 생활을 늘 권한다.

 

환경미화원의 직업 유지를 위해 담배꽁초를 더욱 많이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착한 의사들은 자신의 직업 유지와는 관계없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담배꽁초와 토마토 사이. 어쩌면 그것이 인생 항로에서 우리의 좌표를 압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택의 기로들이 연결되어 선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溫草

[Ma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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