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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낱말, ‘고려장(高麗葬)’의 현대판 여운...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7. 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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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낱말, ‘고려장(高麗葬)’의 현대판 여운...

 

고려장(高麗葬)’. 사전상의 뜻풀이는 이렇다.

1. 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 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 지냈다는 일. 2.주로 나이 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 따위에 버려 두고 오는 일.

 

어렸을 때 나는 그 고려장을 목도한 적이 있다. 불장난으로 산불을 내어 뒷산을 태워 먹기 전이었으니까,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그 산불 때문에 우리 산의 경계를 대충 알게 되었다. 피해 규모와 액수를 따질 때 어깨너머로 들어서...).

 

초가을쯤이었을까. 해거름 무렵 마당가에 서 있는데, 동네에서 우리 집 뒷산 쪽으로 올라가는 지게꾼과 그 지게를 따라가는 사람 하나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지게 위에 사람이 얹혀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엄니를 불렀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온 엄니는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한숨 끝에다 짧은 말을 매달았다.

 

그예 더 이상 지켜내기가 힘들었나 보다. 고려장을 하려는 걸 보니... 그나저나 저쯤 높이면 우리 산에다가 하는 건 아니구나.”

 

그들은 동네에서 동냥 머슴네로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두 아들과 아비 하나. 아들들은 그 무렵 20대 근처였고, 아비는 나이가 불명했지만 칠순을 넘긴 것으로 짐작들 했다. 어미 없이 어린자식들만 데리고 동네로 들어온 영감이 동냥으로 키운 자식들이었다. 문둥이들이 머물고 가던, 짚으로 만든 헛간 같은 곳에서.

 

그걸 보다 못해, 동네에서 유복한 이 하나가 문간방을 내줬다. 동냥밥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문간방을 내준 이의 젖머슴/애머슴[나이 어린 머슴]으로 시작하여 꼴머슴[땔나무나 꼴을 베는 일을 하는 어린 머슴]으로 자라났다. 그 사이 늙어간 아비는 더 이상 동냥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인집에서 밥과 옷은 대줬기 때문에. 그러다가 똥오줌 수발까지도 아들들에게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자식들은 새경 없는 머슴들인지라 한약 한 재조차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저런 사정이 쌓이자,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말이 고려장이었던 듯하다. 자식들이 아비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가는 걸 어느 누구 하나 말리거나 탓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사실로 보아. 하지만, 그 고려장은 실현되지 못했다. 며칠도 안 돼, 자식들이 도로 아비를 문간방으로 모셨고, 영감은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오기 전에 죽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게에 얹혀 갔다. 상여를 부르고 어쩌고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처지 때문에. 그리고 나는 전과 비슷한 자리에 서서 그걸 지켜봤다. 엄니를 부르지는 않았다.

 

                                                              *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몇 년을 두고 다퉈 온 어느 집안에서 사건이 나고 말았다.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나 사상자가 생겼다. 명절날 술 한잔들을 걸친 뒤, 부모를 제대로 잘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고, 그 말을 처음 꺼낸 장남 부부가 주 피해자가 되어 장남은 사망했다. 서로 치고 받은 그 밖의 형제들도 크고 작은 상해를 입었다.

 

42녀 모두가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직접적인 발단은 형제간에 돌림방이 되다시피 한 부모 건사 문제가 몇 해 전 요양원행으로 결정되면서부터. 맞벌이 부부에다 지적장애자 자식까지 있어서 부모를 건사하기 어려운 장남이 부모 모시는 일을 동생들에게 맡기기 시작하면서 생긴 오랜 고름이 뻥 터진 것이었다. 요양원에 모신 뒤로 자식들의 발걸음이 뜸해졌고, 이제는 한 해에 한 번이나 찾아갈까 말까 할 정도로 서로가 미루게 된 것.

 

거기에다가 재산 상속을 둘러싼 씩씩거리기가 가세하고, 형제간의 사회적/경제적 처지가 다른 것도 작용했다. 출가외인이라 할지라도 재산 상속에서는 몫이 있기 마련인 장녀와 막내딸이 뒤늦게 마음을 바꿔 제 몫을 찾겠다고 나선 것도 기름에 불을 부었다.

 

그런 판국에 장남이 누나와 동생들 앞에서 부모를 잘 모시자고 말을 꺼낸 것이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말뿐인 형이면서, 유류분* 이상으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이미 받고서도 실질적인 책임은 모두 동생들에게 떠민 형이 뭘 잘한 것이 있느냐는 둘째의 공격을 맏이인 장녀가 슬그머니 거들고 나섰고,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이미 상당분이 부모 재산을 거덜 낸 셋째가 목소리를 높이면서부터였다.

 

*유류분[reserve, 遺留分] : 사망자 근친자(상속인)의 생계를 고려하지 않고 사망 직전에 모두 타인에게 유증하는 처분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일정 비율의 재산을 근친자를 위하여 남기도록 하는 제도.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그 법정 상속분의 1/2,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그 1/3(민법 1112).

 

                                                              *

이들이 벌인 사건의 단초가 된 것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이 많은 부모들을 모시고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공통적인 것들이기도 하다. 누가 모시느냐, 어디에 모시느냐, 모신 뒤의 책임 분담(실질적인 뒤처리)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와 관련된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에서부터 돌아가신 뒤에 벌어질 재산 분쟁의 그림자들까지.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이젠 부모를 어떻게 요양원에 버리느냐는 식의 심정적 판단에서 물러서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점일 듯하다. 어설프게 집에서 모시다가는 도리어 안 좋은 끝을 보게 되는 일도 흔하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아간 결과이기도 하고.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다르다. 둘 다 민간기관인 것은 공통이지만, 요양원에서는 치료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건강보험 적용에서도 대차가 난다. 요양원에서는 80% 정도까지 보험 급여 대상이 된다. 입소 기간의 제한 등이 있지만, 그건 실무적으로 합법적인 처리도 가능하다. 그리고, 요양원에도 방문 의사가 있고 전문 보호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양병원과 같이 돈만 내면 누구나 입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요건에 해당되어야만 한다. 치매 등의 노인성질환이 있고 그에 따른 요양 급수 판정(인증)을 받아야 한다.

 

요컨대, 집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이 효도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전문가들에게 맡기되 관심과 정성의 끈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는 분들의 예후가 좋고, 그 최후도 아름답다. 요양원(요양병원)에 모신 뒤에 이어지는 자식들 간의 우애 있는 협업, 그것이 현대판 고려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

한참 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동냥 머슴네영감의 죽음에 대해서다. 어쩌면 그 고려장의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앞당겨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못된 일을 겪고 나면 어르신들이 삶의 끈을 빨리 놓아버리곤 하니까. ‘내가 빨리 죽어야 이 꼴 저 꼴 안 보지란 말은 자신에게 다짐 삼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왔지 않은가.

 

처음에는 무서워서 그 고려장으로 사용한 뒷산 중턱 근처를 얼씬도 못했다. 한참 뒤에 가보니 한 길 깊이로 파놓은 그곳에는 밥그릇과 수저, 말라비틀어진 반찬 몇 가지, 그리고 호리병 하나가 있었다. 머슴 자식들은 아비에게 그것들만 안기고 돌아선 그게 눈에 밟혀 아비를 되찾아 왔지만, 그 앞에서 하루나 이틀쯤을 보냈을 아비는 돌아온 뒤에도 그 정황을 내내 끌어안고 지냈을 듯하다. 자식들이 박은 크고 선명한 대못으로...

 

치매 부모들도 자식들을 가끔 알아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 순간에 새겨지는 자식의 모습이 부모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는 아직 수치화된 게 없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만, 대단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부모를 위한 죽음 맞이. 그 출발은 그 자리에 우리 자신이 들어서 보면 확실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죽음의 형태와 장소, 그 내용대로 부모를 바라보면, 형제자매들 간의 그 볼썽사나운 짓거리들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자신이 그 자리에 미리 서 보면 된다. 다른 일들도 그렇지만. -溫草

                                                          [July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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