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생활’이 어째서 한 낱말의 복합어가 되지 못했을까?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부부 생활’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복합어가 아니기 때문에 ‘부부생활’로 붙여 적으면 잘못입니다. ‘부부 생활’로 띄어 적어야 합니다. ‘부부 생활’이 어째서 한 낱말의 복합어가 되지 못했을까요.
꼭 붙어 지내라고 부부로 인정해 줬고, 그렇게 한 몸처럼 지내는 특별한 생활이니, 당연히 한 낱말의 복합어로 삼아야 하는 말 같은데요. 더구나 ‘일상생활/사회생활/학교생활/문화생활/공동생활/경제생활/교단생활. 교편생활/언어생활/정신생활’도 한 낱말이고, ‘가정생활’도 한 낱말이거든요.
이 부부 생활이란 말이 다른 낱말들의 뜻풀이에 쓰이고 있는 의미를 잠깐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 불임증[不妊症] : 임신을 못 하는 병적 증상. 결혼하여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나 삼 년이 지나도록 임신하지 못하는 경우를 이른다.
- 법정 재산제[法定財産制] : 법률로써 부부간의 재산 관계를 규정하는 제도. 부부의 재산의 귀속, 그 관리 방법, 부부 생활에서의 비용 부담 따위에 관하여 규정한다.
‘불임증’에 쓰인 ‘부부 생활’이란 부부간의 성애, 곧 성생활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정재산제’에 쓰인 그것은 부부로서 살아가는 것/상태를 뜻하고요.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뜻을 묶어서 특정화하면 ‘부부생활’이란 복합어가 탄생될 듯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목이 잡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활’이란 말의 뜻풀이 중에는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감. 또는 그런 상태’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 ‘부부’가 결합되면 ‘부부로서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감. 또는 그런 상태’가 되죠. 정작 문제는 ‘부부로서의 어떤 행위’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거죠. 가정생활의 뜻풀이를 ‘1.가정을 이루어 사는 생활. 2.가정 안에서의 생활’로 손쉽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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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생활’이 한 낱말의 복합어가 될 수 없는 까닭. 그것은 그 의미를 한마디로 특정화할 수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부부는 남편과 아내일 뿐이지만, 낱개의 존재로서는 모래알 같이 수많은 사람들로 나눠지고, 그런 부부들이 엮어내는 생활 양태 역시 한마디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탓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딱히 뭐라 콕 집어 규정할 수 없다는 거죠.
하기야, 부부간의 촌수는 0입니다. 무촌입니다. 촌수 표기에서 홀수인 1촌, 3촌, 5촌은 상하 관계*이고 짝수인 2촌, 4촌, 6촌은 수평관계*인데, 부부간의 촌수만큼은 홀수와 짝수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무촌인 만큼 무관계인가 하면, 그만큼 상하/수평 관계를 따질 수조차 없는 관계라는 뜻도 됩니다. [*주 : 3촌은 1촌의 형제자매, 5촌은 3촌의 형제자매. 한편 2촌은 형제자매, 4촌은 3촌의 자식들, 6촌은 5촌의 자식들임. 단, 이것은 편의상 구분법이며, 재종조(증조부 형제의 아들)나 3종조(고조부 형제의 손자), 종손(형제자매의 손자) 등과 같은 경우는 4촌, 6촌, 8촌이라 하더라도 상하관계임. 상세한 것은 아래의 계촌표 참조.]
이런 것들과 아울러, ‘부부 생활’이란 말이 두 개의 낱말로 쪼개져 있는 걸 대하면,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부부로서 엮어내는 생활이란 언제든 조각날 수 있는 것, 언제든 분리될 수 있고, 그 순간 ‘부부 생활’이란 것 자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런 분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부부와 생활 사이의 틈새를 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늘 ‘부부 생활’에 작은따옴표를 자주 찍어서 묶어놔야 할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최소한 한 번씩은 그 말이 지닌 의미에 대해 돌아볼 수 있을 듯도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말을 뒤집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활생(活生) 부부!’. ‘부부를 살려내자!’ 혹은 ‘부부로 씩씩하게 살아내자!’라는 뜻이 되는군요. ‘활생(活生)’은 아직 우리말에 없는 말이지만, 이참에 우리끼리 ‘활성(活性)+환생(還生) →활생(活生)’쯤의 합성어 하나를 만들죠 뭐. 좋은 일이니까요. [溫草]
[참고] 계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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