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조차 엉망인 작품은 아예 읽을 필요가 없다!
며칠 전 어느 작가와의 통화에서 소설의 현주소 얘기 끝에 서로 의견이 갈리자, 그는 최근 발간한 자신의 두 번째 작품집을 읽어봤느냐고 물어 왔다. 그것으로 자신의 항변을 갈무리하려 들었다.
나는 ‘조금 읽다가 말았다’로 답했다. 실은 제목 앞에서 식상하여 표지조차도 열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제목의 일부에 ‘백수00’가 있었다. 사전에 없는 말.
작자는 아마도 ‘백수건달’이 있으니 그쯤으로 짐작해서 쓴 듯하지만 그걸 ‘백수 00’로 적는다 해서, 의미가 잘못되는 말도 아니다. ‘백수’ 자체에 ‘백수건달’의 의미가 들어 있으므로 더더욱. [흰머리를 뜻하는 ‘백수(白首)’로 썼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가 사용한 낱말은 사전에 없다!] 그렇다면 표기 하나라도 제대로 챙겨서 바르게 적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말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의 기본적인 책무이자 도리다. 허투루 멋대로 내쳐서는 안 되는 엄중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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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열은 말썽을 자초하는 신문 칼럼을 써댄 뒤, 그 역풍으로 현역 작가 작품집들을 그의 집 앞에서 불태우는 초유의 현대판 분서갱유를 겪었다. 그 뒤 그가 출간한 수필집의 제목은 <신들메를 고쳐매며>(2004)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시기를 견뎌내고 나서, 작가 나름의 심정을 ‘신발 끈을 고쳐 매고서’ 다시 일어선다고 하려 한 듯하다.
하지만, ‘신들메’는 우리말이 아니다. 북한어다. 나아가 그 뜻도 우리가 짐작하는 ‘신발 끈’이 아니다. 신발 끈은 알다시피 신발이 발에 꽉 맞도록 조이는 끈이지만, ‘신들메’는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신을 발에다 동여매는 끈’을 뜻한다. 샌들이 벗겨지지 않도록 발목이나 발등에 묶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올바른 명칭은 ‘들메끈’이다. 신을 '들어 메는(들메는*)' 끈이라는 데서 왔다. 그것이 바른 말이다 . [*'들메다'라는 말이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신을 발에다 끈으로 동여매다'라는 뜻의 동사다].
예수 시절엔 오늘날과 같은 신발 대신 샌들류를 신었기 때문에 그것이 벗겨지지 않도록 신발을 발에 묶어두어야 했는데, 그때 쓰인 끈이 바로 ‘들메끈’이다. 그것을 맨 처음 번역할 때 이북 사람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북한어 ‘신들메’가 쓰였고, 그 뒤로도 몇 번의 성경 개역이 이뤄졌지만, 그 말만은 손대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다. 지금도.
제목 <신들메를 고쳐매며>에 붙여 쓴 ‘고쳐매며’도 잘못이다. ‘고치다’와 ‘매다’는 동격의 본동사들이다. ‘매다’가 보조용언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는 띄어 써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보조용언 붙여 적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제목으로 채택한 <신들메를 고쳐매며>는 통째로 잘못이다.
그가 그걸 출간했을 때, 나는 표지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뭐라고 적었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차치하고라도 제목부터가 엉터리 우리말로 된 책자는 뚜껑부터 매몰되어야 한다. 그것이 작가인 그에게 독자인 우리가 내려야 할 무언의 채찍이기도 하다.
그가 비록 개인적으로는 나의 직속 선배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는 대학입학 검정고시도 나의 2년 선배요, 심지어 같은 대학 같은 과의 2년 선배다. 나는 그의 이천 부악문원 서실에서 낮에도 밤에도 여러 번 <우국생> 막걸리를 마주했고, 100끼니 넘게 식사도 함께했다. 그럼에도, 나는 단연코 그리한다. 그리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작품 제목을 잘 짓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집 제목에 쓰이는 말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는 작가의 작품은 읽어볼 가치도, 읽어 줄 필요도 없다. 우리말 작가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게을리하여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이는 그 순간 작가라 불릴 자격 자체가 없으므로. [溫草]
[Jul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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