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 타자와 맞춤법
내 가까운 사람 중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을 쓴 이가 있다. 장편소설 기준 열댓 권도 좋이 될 분량의 글. 그걸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써 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라, 그에게 말했다. 양손 타자를 익혀서 좀 편하게 쓰라고. 그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이들에게서 하나같이 나오는 답. 어느 세월에 그것까지 익힌담?
막상 해보면 암 것도 아니다. 양손 모두를 사용해서 자판의 글자 위치를 익히는 데에 길어야 이틀쯤 걸리려나. 손가락 끝의 감각에 자판 위치를 확실하게 접목시키는 데에도 그쯤 걸린다. 하루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만 투자해도 된다. 속도와 오타 줄이기에 긴요한 실전 연습은 사람마다 조금 다르긴 해도 그 또한 전부 쳐도 일주일 안팎이다.
그 기간 동안은 하루 한 시간 정도씩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핵심이자 필수다. 기억과 감각의 합체가 관건인데 그것을 유지해주는 데에 정기적 자극이 필수라서다. 그래야만 자판 위치의 암기 효과도 좋아지고 확실해지며, 손가락에도 기억력이 새겨진다. 마치, 수동 운전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저절로 몇 단인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거의 자동으로, 손이 알아서 변속기 레버를 조작하게 되듯이.
나는 영타를 먼저 익혔다. 첫 직장 생활이 해외에서였는데, 70년대 당시에는 모든 교신이 텔렉스로 이뤄질 때였다. ‘졸때기’였던 나는 비교적 알아서 해내는 쪽인지라 텔렉스 담당으로 현지 여직원이 있음에도 그걸 익혀 두었는데, 퇴근 후 긴급 연락 등에 텔렉스 조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저절로 주가(?) 상승에 도움도 되었다. 입사 1년 후 주임 승급을 시작으로 1년마다 대리, 과장으로 특급 승진하게 된 주춧돌 중의 하나가 그 영타 익히기였다는 생각을 훗날 한 적도 있다.
한글 타자를 익힌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서다. 국내 근무를 하게 되고 컴퓨터가 사무실에 한 대씩 놓이게 된 뒤로. 지금처럼 책상마다에 놓인 게 아니라, 사무실에 한 대를 두고 문서 정리 출력용으로 말단 여직원이 그걸 관리/이용했다. 당시 컴퓨터가 사무실에 있는 회사는 특급 회사에 속했다. 그만치 과시용 목적도 은근히 한몫했다. 분량이 좀 많다 싶으면 프린터 출력에 한 시간도 넘게 걸렸지만.
컴퓨터를 보자 이 호기심 천국파가 그냥 있을 리 만무. 여직원을 졸라서 한타를 익혔다. 하루 만에 했다. 영타 속도가 여직원과 어금지금할 정도로 빨랐고 익숙했던 덕을 크게 봤다. 그 뒤로 이틀쯤인가를 속도 높이기와 오타 줄이기를 위해 연습 글들을 보며 했다. 한 번에 한 시간 정도씩.
내 자랑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독수리 타법 졸업하는 일이 아주 쉽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내가 타자를 익힌 과정을 그들에게 설명할 때 예를 들곤 하던 내용이다. 엄청 수고를 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겁부터 먹거나 그 핑계로 여전히 독수리 타법으로 고생하면서도 엄두를 못 내는 이들에게, 아주 손쉬운 일이라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서. 개인차는 있어도 독수리 타법 졸업에 하루 한 시간만 투자해도 일주일도 안 걸린다. 믿고들 해보시라!
*
글자 두들기는 일들, 요새 참 많이 한다. ‘그놈의’ 전화기 덕분이다. 폴더 폰이든 스마트폰이든 문자 주고받기는 일상이 되었고, ‘카톡’ 쓸 줄 모르면 간첩이 된다. 그것도 신품이 아닌 구닥다리 간첩. 스마트폰 세상이 열리고부터는 그걸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도 드나들면서 긁적이는 일들도 한다. 그런 게 아주 예사일이 되었다.
그 덕에 글쓰기와 많이 접하게 되고, 노출도 된다. 자신도 모르게. 낙서가 되었건 뭐건 간에. 예전에는 학교 졸업 후 제 손으로 짧든 길든 글쓰기를 해보는 일이라곤 잘해야 편지 쓰기나 메모 긁적이기, 일기 쓰기 정도이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모든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자판을 누르거나 때리는 일들은 이제 손끝에 붙었다.
그런데... 오가는 문자나 SNS에 오른 글 중에 제대로 맞춤법(특히 띄어쓰기)을 지켜 쓴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눈에 띄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맞춤법을 신경 쓴 듯이 보이는 것조차도 가물에 콩 나기다. 그냥 되는 대로, 맘대로 멋대로 긁적인다.
그처럼 맞춤법을 통째로 무시하거나 용감하게 외면하는 이들에게 살짝 그 까닭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뭐와 닮았다. 어느 세월에? 익혀서 뭐 해, 그냥저냥 살다 죽을래. 그리고 맞춤법을 익히고 싶어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맞춤법 내용은 어찌 그리 (거지같이) 어려운 겨?
맞춤법 책자를 갖다 놓고 두어 주일만 들여다보라. 그리고, 한두 달 정도만 자신이 없는 것들이 나오거든 책자를 보거나 자료를 검색해 보라. 그러고 나면 골 때리는 듯만 하던 맞춤법도 시원하게 뚫린다. 100%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대신 전화기로 문자 하나를 보내더라도 띄어쓰기는 하라. 틀리더라도, 자신 없어도 시도하라. 자꾸 연습하라. SNS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버릇이 몸에 붙으면 언젠가는 선생이 되고 남는다.
그런 것이다. 독수리 타법을 졸업하지 못해서 늘 불편을 감수하는 이들이나 맞춤법을 아예 용감하게 무시하기로 작심한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 그것은 해보지도 않은 채 미리 포기하는 태도가 그 출발점이다. 양쪽 다 빼놓지 않고 매다는 핑계는 시간 없다는 것. 그 시간에 드라마만 잘도 보고, 한번 수다를 떨면 몇 시간도 좋더구먼(여인들 이야기만이 아니다. 남자들 술자리 수다는 몇 시간이 가도 끝날 줄 모른다).
그 따위 속 보이는 핑계 따위 끌어다 대지 말라. 두 가지 모두 그냥 달려들어 익혀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속도도 빨라지지만 가외 소득도 있다. 뭘 하나 긁적이더라도 내공(?)이 드러나는 바람에 한참 뒤 특정인에게 살짝 얼굴 달아오르는 일도 없어진다.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운전학원에서 기능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는 운전 연습/실습 시간이 겨우 두 시간이다. 법정 시간이 그렇게 줄었다. 예전에는 한 달 가까이 다니면서 씨름했던 게 이제 두 시간짜리로도 족하다. [이 글은 2015년에 씌어졌다.] 나의 낡은 운전면허 역시 골목길에서 한 시간쯤 연습하고 나서 곧장 시내로 끌고 나가는 무모함이 가져다 준 증명서다. 믿거나 말거나, 40여 년 전의 일이다.
운전대를 붙들고 벌벌 떨곤 하는 그런 큰일조차도 한두 시간의 연습으로도 된다는 얘기다. 해보면 그렇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그러니 그보다 훨씬 작고 일 같지도 않은 타자용 자판 앞에서야 까짓 거 소리를 크게 내질러도 되지 않겠는가.
맞춤법 앞에 용감해지기. 그건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까짓 거 한번 대들어서 한번 해보자 하는 용감함과, 그 대척점인 그까짓 거 무시하고 쓰면 어때서 쪽의 무지한 만용.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긍정적인 쪽으로의 선택이 대체로 적지 않게, 알게 모르게, 그리고 시간이 쌓인 한참 뒤에는 아주 크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신에게.
막상 달려들어 해보니 암 것도 아닌 일 앞에서 지레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것. 그게 가장 크게 남는 자산이다. 운전대 앞에 앉기만 해도 벌벌 떨기만 하던 사람이 막상 운전면허증을 따고 보면 그 얼마나 대견하던가. 보고 또 보고 하지 않는가. 타자 연습이나 맞춤법 공부가 주는 대견함 역시 그에 못지않다. 아니 훨씬 낫다. 요즘 ‘증’ 하나 정도야 개나 소도 다 갖고 있지 아니한가*. 하하하.
[*주 : 웃자고 해본 말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애완견은 법에 의해 소유자 이름/주소/전화번호가 기재된 칩을 개 몸에 심도록 되어 있다. 극소형이어서 주사기로 간단히 삽입된다. 삽입 후 하루 이틀만 그 부위를 만지지만 않으면 개들도 아주 편안해 한다. 소 역시 송아지 탄생 때부터 RF 칩이 내장된 걸 심는다. 이른바 소고기 이력 관리를 위해서인데 요즘은 구제역 역학검사용으로도 쓰인다.
개에도 면허증 제도가 있다. 이른바 맹도견(盲導犬. 일본식 작명)이라 불러왔던 맹인안내견 얘긴데, 우리나라에서는 ‘맹인도우미견’으로 불린다. 생후 7개월 정도 된 녀석들을 선발하여 1년 반 정도 교육을 시킨 뒤, 주인과의 4주간 친숙화 훈련을 거쳐 배치된다. 이 개에게는 공공장소에 당당히 출입할 권리가 있으며(거부하면 2백만 원 이하의 벌금), 나이가 들면 개 양로원에 입소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도우미견(assistance dog)이나 봉사견(service dog)으로 불리며 ADA법(장애 미국인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의하여 보호/관리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안내견(guide dog)으로 부르는데 독일이 그 원조 국가. 세계적으로는 국제안내견협회도 있어서 우수 혈통에 대한 호적(?)도 관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이 우수한 활동을 보이고 있고, 맨 처음 이걸로 사회봉사를 시작한 기업은 삼성이다. 개도 좋아해서 진도개 혈통을 찾아 세계 명견에 등록하기도 했던 이건희 회장의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Mar. 2015] -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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