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vs. 열린 생각] <티타임의 정사>와 ‘아내의 남자’
<티타임의 정사>
<티타임의 정사>!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듯한 근사한(?) 제목입니다. 궁금해서 그 문학 작품(소설)을 찾아보면... 없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요. 이 제목은 우리나라의 창작품이거든요. 원제가 <정부(情婦)>인데요.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극작가 겸 시인 해럴드 핀터의 희곡 작품을 삼일로극장에서 개봉하면서 국산화(?)한 제목인데, 공전의 히트를 쳤죠. 10여 년 넘게요. 그 제목만으로도 손님 끌기에 충분했거든요.
[*해럴드 핀터 : 1930-2008. 노벨상을 받고 3년 뒤, 6년간 앓아온 식도암으로 사망. 28살에 발표한 ‘방(The Room)’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진짜 돈이 된 건 1960년에 상연/히트한 ‘관리인(The Caretaker)’]
연극 내용을 조금 언급하자면, 극중 두 주인공 사라와 리처드는 부부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에겐 각각 情夫와 情婦가 있습니다. 남편인 리처드는 실제로 하고, 사라는 환상 속의 남자 맥스와 섹스를 합니다. 리처드의 여자는 창녀인데요. 그의 표현을 고대로 옮기면 ‘자동차의 오일과 물을 체크하는 동안 급히 한잔하는 코코아 같은 존재’입니다. 사라와 리처드는 저녁 때 두 사람의 섹스 행각을 서로 고스란히,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희한한, 연극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죠.
이 작품을 두고 점잔을 떨면서 해석의 수위에 품격까지도 더해야 하는 평론가들은 시대의 부조리니 뭐니 하는 근사한 소리들을 덧댔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3류 소설 얘기를 희곡화했다고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까닭도 있었습니다.
情夫나 情婦 얘기를 3류 소설감이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중세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공공연했던 情夫나 情婦 얘기를 빼면, 문명 자체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만큼 아주 흔하디흔한 현상이었습니다. 특히, 政治史/知性史는 완전히 공백이 될 정도지요. 뭔 말이냐고요.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흔하디흔한 情夫와 情婦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여왕에 이어 두 번째로 여왕 시대를 열었던 걸물이었죠. 25세의 노처녀(당시 기준으로)일 때 왕위에 오른 그녀는 죽을 때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을 정도로 끝까지 미혼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이 말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겉만 본뜬 어느 여인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 한창 때인 30~40대에는 여러 사내들을 애인으로 두었습니다. 그 대표 격으로는 그녀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뜨거운 정사 장면이 담기는 로버트 더들리 백작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왕은 누구처럼 얼굴이 아리따운 편과는 거리가 먼 터라, 얼굴 단장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찌나 여자답게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했는지, 당시에 얼굴이 창백하게 보여야 미인이라는 유행에 따라 얼굴에 수은까지 계속 발랐지요. 그 바람에, 노년의 초상화들을 보면 완전히 맛이 간 상태로 나옵니다. 거기에다 개미허리를 숭상하는 못된 유행에서도 벗어나지 못해서, 얼마 전까지도 무지하게 졸라매던 코르셋에는 엘리자베스 타입이라는 말이 남아 있을 정도죠. 여왕이면서도 여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만년 노처녀 엘리자베스 1세. 그녀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러니 情夫로만 그쳐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여왕을 팔거나 하면, 즉시 개비하곤 했으니까요.
프랑스의 볼테르. 그는 계몽주의의 선구자로 빛나고 있지만(2만 건의 서신과, 소책자를 포함 20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음), 그의 인생 또한 무척 특이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Voltaire도 실은 본명인 아루에(Arouet)를 라틴어로 바꾸어(Arovet Li. Li는 더 젊다는 뜻의 le jeune의 약자) 그 철자 순서를 재조립한 건데요. 그의 필명만도 178개나 됩니다.
이처럼 복잡한(?) 사람답게 그의 여인사도 비범합니다. 그중 하나가 에밀리 뒤 샤틀레 후작 부인과의 15년간에 걸친 공공연한 사랑입니다. 그녀는 볼테르보다 13년이나 연상이었는데, 볼테르 못지않게 빼어난 지성을 갖춘 여인으로 프랑스 문학사에서 뉴튼의 저서 명번역으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선지 나이 43살에 요절하지만요.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은 그녀의 남편인 샤틀레 후작이 둘이 머무는 샤토 드 시레 성에 가끔 들르곤 했지만, 후작도 그 둘의 관계를 너무나 당연하게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후작에게도 여러 여인이 情婦로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고요. 볼테르에게 에밀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볼테르의 이름은 잊혔을 거라는 게 정설입니다. 그만큼 둘이 함께하고 있을 때, 지성의 꽃이 최고조로 만개했습니다. 사랑을 나누지 않는 시간엔 토론을 했다나요.
처칠. 그는 왕실의 장례에만 적용되는 국장(國葬) 예우를 받은 유일무이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는데요. 바로 부모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했고, 그 바람에 일찍 죽었습니다. 40대에 과부가 된 그의 어머니는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영국인들이 극구 싫어하는 미국 여자였습니다. 그녀에게 情夫가 ‘당연히’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칠 자신이 글에 밝혔을 정도입니다. ‘당연히’라는 표현도 처칠이 덧붙인 것이고요.
2006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책 중에 화제가 된 게 있는데요. 언론인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가 쓴 ‘섹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 ‘정치인의 잠자리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오랜 불문율을 깨뜨렸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었죠. 거기에 보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측근 보좌관, 운전기사, 심지어 정적인 시라크가 같이 잔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다는 소문에 몹시 귀찮아했다고 나옵니다. 시라크 현 대통령은 파리 시장 시절 여직원들 사이에서 “샤워 포함 3분”이란 구설수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총리가 된 후 76년에는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 때문에 애인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미테랑 대통령에게는, 훗날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자 그때서야 자신이 미테랑의 호적에 오르지 못한 사생아라고 밝힌 여인도 있습니다.
<익명의 섬>
10여 년 전 미국의 잡지 하나는 놀라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럴싸한 나라들의 기혼녀들을 상대로 애인 유무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한국 여인들이 수위를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처럼 섹스에 엄청 자유로울 듯싶은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있는데, 그런 나라들을 모두 젖히고 말이죠.
하기야, 이런 유머가 우리나라 여인들에게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며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여고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가 아주 오래도록 씩씩거리기만 하고, 그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대꾸도 않다가 나중에 혼자 설거지를 하면서 이렇게 푸념했다죠 : ‘우띠 나만 남편만 있어...’
이문열의 소설 중에 <익명의 섬>이 있습니다. 시골 학교로 발령을 받은 여교사가 부임 첫날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맞고 피하러 들어간 헛간 같은 곳에서 어느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되죠. 여교사는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교사로서의 모든 걸 잃을 건 물론이고 자신의 남자와도 끝일 듯싶어 함구합니다. 그런데, 그 뒤로 희한한 것이 그 짐승만 같은 사내가 더 이상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동네의 집들에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그럴 때마다 여인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작품 말미에야 그 동네의 여인들이 그 사내와 얽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드러납니다.
미국의 조사 결과가 발표될 즈음에 희한한 해외 소식 하나도 날아왔습니다.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사내 하나가 500명이 넘는 그 마을 여자들과 빠짐없이 섹스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중 유부녀가 4/5쯤 되었고, 심지어 60대조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은 건, 바로 이문열의 <익명의 섬>에서와 같이 그 마을에서 그 사내를 고발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여인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편 하나가, 자꾸만 남편을 멀리하는 아내를 윽박지른 끝에 어렵게 밝혀낼 때까지요.
헤픈 여인들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로 말하자면야, 전통적으로 사내들이 훨씬 더 크고 깊은 죄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질러 왔으니까요. 문제는 그런 현상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입니다.
‘아내의 남자’ : 독기와 내숭, 그리고 사랑
결혼 7년차의 주부입니다. 부부관계 때 남들이 말하는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편은 아닌 듯해요. 다만, 이를 느끼려면 육체적인 성감의 자극보단, 뇌의 자극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흥분이 됩니다. 이건 남편을 사랑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고 외도를 한 적도 없습니다. [중략] 특별히 부부관계에 문제가 큰 건 아니고 체위도 여러 가지로 해 봅니다. 하지만 여성이 섹스하면서 느끼는 흥분은 성감이나 체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갈수록 들어요. [한겨레신문 2007-11-03]
사진. 한겨레신문 해당기사의 컷
오래 전 모 신문에 실린 성상담 질문 내용 중 일부입니다. 그러자 담당자(재미있게도 여러 남자를 거친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싱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답변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 ‘티타임의 정사’에서 배우세요.
<아내가 결혼했다>(2008). 손예진과 김주혁이 나오는, 제목부터가 통통 튀는 영화죠. 그 제목에 어울리게 손예진은 축구를 좋아하고 매력이 통통 튀는 여자이고, 다른 남자와도 잠자리를 하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녀를 묶어두려고 결혼도 하지만, 그래도 여자는 또 다른 남자와 잡니다. 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랑이 어찌 한 사람에게만 향할 수 있느냐는 발칙한 여자인데, 그런 여자에게 더욱 묶이는 남자의 얘기입니다.
어쩌면 영화니까 있을 수 있는 얘기라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뒤집어 보면 현실의 일부 단면만을 한정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게 영화니까, 현실을 모두 다 담아내려면 몇천 시간짜리로 만들어도 모자랄 것이라는 발칙한 추측도 가능해집니다.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현실에는 없는 얘기를 억지로 담아낸 작품이라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차털리 부인의 사랑>이 처음 나왔을 때, 금서로 지정이 되었음에도 여인들이 이불 속에 숨어서 그걸 탐독한 것은 그 책 어딘가에 자신의 숨겨진/억눌린 분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듯이요.
사랑.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모든 여인들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그 사랑 앞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억누르거나 숨기지 말라고요. 정면으로 응시하되 제대로 된 무기를 갖고 대면하라고요. 전장에 나간 병사가 총칼이 없어서는 안 되겠죠? 당당하게 대적하고, 그렇게 해서 승리를 거두어야 할 대상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티타임의 정사> 앞에서 잠시 킥킥거리거나 숨 죽여 고개 끄덕거리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사랑 앞에서 습관적인 한숨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게 되지요. 자신도 모르게 차갑고 날카로운 말들을 더 많이 쓰는 이들의 공통점은 홀로 있을 때 한숨이 많은 이들이라더군요.
사랑받는 여자는 화통하거나 대범하고, 비공격적입니다. 삶의 전반이 덜 날카롭습니다. 잘 받아들이고 잘 소화해 냅니다. 맑고 밝고 가볍습니다. 그 반면 닫힌 사랑은 어둡고 무겁고, 게다가 날카롭습니다. 공격적입니다. 상대방이나 삶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력을 지성으로 착각하기도 하지요. 하기야, 그런 이들이 작품 활동 등에서는 빛나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슬픈 역사가 진한 작품을 남깁니다. 굵은 작품에는 어두운 개인사가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닫힌 사랑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상처 받은 사랑, 순도 낮은 사랑, 잡것이 더 많은 사랑, 혹은 허울뿐인 사랑... 등이 채우고 있는 현실의 사랑 앞에서, 그 반작용으로 온전하고도 흡족한, 조건 없는 사랑에 더 목말라 하거나, 더 진하고 깊게 그런 사랑을 갈구하게 되지요. 그런 욕구가 쌓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엄청 민감해집니다. 그걸 감추면 이중적 내숭으로 습관화되고, 터지면 독기로 드러날 때가 흔합니다.
아내의 남자. 그것이 ‘티타임의 정사’ 속 맥스이든, 샤틀레 후작 부인의 볼테르이든, 시선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여인의 삶에 적잖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의 삶이 채워지기. 그것은 곧 남편에게도 평온과 온기로 돌아옵니다. 행복한 아내는 저절로 독기와 냉기에서 멀어지거든요.
남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은 건 압니다. 하지만,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할 때는 그리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판에 박은 소리 따위는 하지 말고, 아내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으면,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선택을 하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거나, 그 선택을 무조건 존중해 주십시오. 이제껏 남정네들의 전매품처럼 저질러 온 전통적인 죄과를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해야만 최소한으로 공평할 듯합니다. (사실 큰소리를 내면서 어쩌고 해봤자, 시끄럽고 상처만 남길 뿐 실제로는 말짱 헛일이기도 하잖습니까. ㅎㅎㅎ)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해서 대범해진 아내는 대체로 늘 이쁜 짓을 합니다. 집에서도요. 내밀한 사랑일수록 삶은 농밀해지잖습니까. 그 대상이 무엇이든요. 하다못해 혼자서 길 고양이들에게 먹거리를 챙겨주는 사랑조차도 그렇더이다.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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