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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벗어나기] 절대치 숫자라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16. 10. 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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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벗어나기] 절대치 숫자라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숫자앞에서 우리는 흔히 불변, 명확성, 절대치 등을 떠올린다. 숫자로 표기되면 명확해지고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적어 더욱 객관화된다고 여긴다. 둘과 셋 사이라는 모호한 말보다는 2.5라는 숫자로 표기되는 평균치를 더 신뢰한다. 숫자로 표기된 것들이 조금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숫자로 표기된 것은 불변의 절대치라고 여기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1, 2, 3, 4 ... 늘 대하는 이 숫자들을 우리는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 숫자의 출생지는 아라비아여야 한다. 하지만, 아니다. ‘아라비아 숫자(Arabic numeral)’는 인도에서 왔다. 그걸 유럽에 전파한 사람들이 아랍 상인들이었다. ‘아라비아 숫자(Arabic numeral)’라는 명칭은 운반자/전파자들의 이름에서 따 온 이름이다. 숫자의 호적부터 잘못되었다.

 

아랍 지역에서 쓰는 아랍어 숫자(figure in Arabic)’는 따로 있다. 바로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1’이나 ‘0’ 등과 같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아라비아 숫자와는 전혀 그 형태가 다르다.


 

이 아랍어 숫자에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아랍어는 쓰고 읽는 것이 다른 언어들과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이뤄지는데, 숫자만은 예외다. 쓰고 읽는 것 모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즉 일반적인 아라비아 숫자의 쓰고 읽음과 같다. 아랍어 숫자의 쓰고 읽기는 아랍어의 근본 규칙에서 가장 예외적인 경우다. 문자 속에서 숫자가 정반대의 행로를 걷고 있다. 보편성의 파괴다. 하지만 막상 아랍인들은 그러한 숫자들의 파괴적(?) 특수성을 잊고 지낸 지 오래다.

 

이처럼 숫자들은 알게 모르게 일탈 행위를 예사로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종횡무진 잠행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흔하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 ‘1’‘1’이고 ‘2’‘2’, 그럼 ‘3’이냐?

이 경우, 우리는 숫자로 표기된 것들을 각각 , , 으로 읽는다. ‘(하나)/()/()’으로 읽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경우는 어떨까.

- 오늘 점심은 1시에야 먹었다; 2시쯤에 볼까

이럴 때 우리는 ‘1’‘2’를 각각 /로 읽는다. 그것도 수사인 하나/이 아닌 관형사 꼴 /로 읽는다. , ‘1, 2라고 쓰고 한 시, 두 시로 읽는다. 쓰기는 아라비아 숫자 ‘1, 2’로 쓰지만 읽기는 달리 읽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읽는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같은 시각 표시지만, 이러한 읽기는 12시까지뿐이다. 13시부터는 다시 십삼으로 읽는다. 24시를 이십사 시라 하지, ‘스물네 시라고는 하지 않는다.

 

시각 읽기를 두고도 이처럼 시간대별로 달리 읽는다는 것 또한 의식하는 이도 드물고, 의식하지 않은 채로도 누구나 무리 없이 잘해낸다.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만 그런 이유 없는 변화가 잘 납득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시각이 아닌 시간을 따질 때다. ‘24시간 동안이라 쓰고서 이십사 시간 동안이라 읽는 것이나, ‘스물네 시간 동안이라 쓰고 읽는 두 가지를 모두 옳은 표현이라고 하니까.

 

같은 숫자를 두고도 그걸 읽는 방법에 따라 조금 어감이 달라지는 일도 생긴다. 예를 들어 85세의 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아래의 두 가지로 말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 . 85나 되셨군요.

- . 여든다섯이나 되셨군요.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이 드신 당사자는 대체로 보수적이기 마련이라서 후자의 표현을 조금이라도 더 공손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팔십오보다는 여든다섯이라는 말 속에 존대 내지는 어른 섬김의 조심스러움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숫자들은 그에 해당되는 수사(數詞)를 간단하게 표기하기 위한 것임에도 (: ‘1’하나/(壹)’이라는 낱말(명사) 뜻을 요약해서 간단하게 표기하기 위한 것) 상황에 따라서 그 모습을 달리한다. 일부 숫자의 경우에는 근본적인 쓰임까지 달라질 때도 있다. 단순한 숫자의 기능을 넘어서서 상징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때다. 그 좋은 예로 우리의 ‘4’와 중국의 ‘8’이 있다.

 

우리는 ‘4’의 발음에서 를 떠올릴 때가 있다고 해서, 한때는 실생활에서 이 숫자가 배제된 적도 있다. 예전의 엘리베이터 층수 표기에서 4층을 아예 빼거나 숫자 대신 ‘F’로 표기한 적도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이다. 돈 모양을 닮기도 했지만 돈이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쌓인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8’이지 이 아니다. ‘은 두 획이 붙어 있지 않아 위로는 구멍이 뚫린 꼴인데다 아래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숫자는 또 나라마다 그 읽힘이 다르다. 언어의 일부로 편입되는 순간, 그 언어 속에서의 소리내기 방식을 따라 서로 다른 소리 옷을 입는다. 그 이름들이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1, 2, 3, 4’라 쓰고, ‘원 투 쓰리 포(영어)/이 알 싼 쓰(중국어)/이치 니 산 시(일어)/엉 되 뚜로와 까뜨르(un, deux, trois, quatre. 불어)/아인스 즈바이 드라이 피어(eins, zwei, drei, vier. 독어)/우노 도스 뜨레스 꽈뚜로(uno, dos, tres, quatro. 스페인어)/와헤드 이뜨닌 쌀라싸 아르바(아랍어)’ 등으로 읽는다.

 

문자는 발음을 통해 의미 전달이 이뤄지는 것인데, 숫자만은 동일 문자인데도, 그 발음은 언어권에 따라 다르다. 문자로는 서로 통할 수 있지만, 발음으로는 상통하지 못하는 제한적 언어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언어에서도 동일 문자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만능어다. , 숫자가 발화(發話)에서는 언어 간 소통에 제한을 받거나 불명확할 수도 있는 상대적 언어지만 표기에서는 절대적이다. 그 때문에 어디서고, 구두 약속보다 서면 계약을 선호하는 뿌리도 되었다.

 

                                  *

우리가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고 사용해 온 숫자들도 이처럼 언어 환경에 따라서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중 상당수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굳어진 관행에 따라서 의외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온 숫자에 대해서조차도 언어 관습이 그 쓰임을 제약하거나 변모시킨다.

 

그처럼 언어는 인간의 의식계를 알게 모르게 관장/지배한다. 무의식 속에서도 언어가 행사하는 권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언어심리학에서 언어 구사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도 모태적 언어 구조가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절대치를 내보이는 숫자라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 숫자를 대하는 인간의 언어다. 언어 체계가 그 쓰임과 해석을 좌우한다. 한 인간의 우주를 좌우하는 것은 언어다. 늘 말하지만, 언어는 그 사람이다.      -溫草

[Se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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