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想] 차례상(茶禮床)을 없애면 어떨까?
나는 엉터리 교인이다.
파주로 와서도 서울의 옛 교회로만 나가시는
울 집 마마님에게 밉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1시간짜리면 따라가겠는데, 성가대 피아노 반주를 비롯하여
여러 직분으로 바쁘신지라 8시에 나가서 오후 4시쯤 오신다.)
엉터리인 덕분에, 나는 ‘예수 청년’을 비롯하여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는 물론이고
문선명, 단군, 소태산(원불교), 한울님... 등을
하나도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 차별도 큰 죄인데, 많은 이들에게 떠받들리는 분들을
나 같은 무지렁이가 차별하는 건 큰 죄일 게 분명하니까. ㅎㅎㅎ.
그래선지, 교회 목사들이 제사 지내는 걸 우상 숭배 어쩌고 해대면
나는 속으로 ‘속 좁은 사람’으로 치부하며 픽 웃는다.
성직이 직업이 되면
남들이 들으면 웃기는 소리들도 입에 달고 다니게 되므로.
게다가 세상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잣대로 보게 된다.
성직자들 또한 거기서 예외가 아니니, 그들의 잣대도 존중해 줘야 한다.
하여간, 그럼에도 좋은 것 딱 하나.
명절 때면 차례상(茶禮床)*을 차리는 일이 없다.
상다리 휘어지게 올려놓을 일도 없지만
올해처럼 빠른 추석 때면 햇밤도 구하기 어려운데
그럴 때조차 예의 그 ‘조율이시(棗栗梨柹)’ 들을
햇것에다 제일 큼지막한 것들로 차려놔야 하는 건
여간만 한 정성이 아니면 힘들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주 : ‘차롓상’으로 적으면 잘못이다. 한자어로 보아 사이시옷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처럼 차례상을 전혀 차리지 않는 가정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착할진저!)
동방예의지국에다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걸핏하면 속심을 쓰고 있는 나라에서.
그러니, 이참에 차례상은 알아서 차리는 쪽으로 해보면 어떨까.
차례까지 지내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차례를 지내고 싶으면 차례 상차림 대신
명절날 먹는 음식을 그냥 상 위에 진설하고 그 앞에서 절하는 것이다.
주과포혜(酒果脯醯),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 등의 구색 맞추기는 다 잊고서.
그러면 아이들이나 식구들이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포(脯) 따위를 사오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거창한 제기 갖추기, 퇴주잔과 시접(匙楪. 제상(祭床)에 수저를 담아 놓는 놋그릇)
챙기기, 숭냉(제사상에 올리는 물) 준비, 민어나 조기 구해오기... 등등
귀찮은 일들이 엄청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을까.
게다가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를 해도 차례상 비용이
몇십만 원씩이나 한다는 그 비용도 엄청 줄일 수 있을 터.
*
가족 모임에서 차례상이 사라진 지 20여 년도 넘는 요즘
우리 가족들은 명절 음식 가짓수 줄이기 쪽으로 발전했다.
네 집에서 서너 가지씩 준비해오고, 전과 송편만 남자들이 모여서 만드는데
그 가짓수도 하나 정도씩은 줄이자는 말들이 오간다.
그래도 우리 집에 의존하는 기본품들은 줄지 않고 있지만.
올해도 우리 집에서는 늘 하듯, 쑥개피떡*은 기본이고
(집에 쑥떡 재료가 1년 내내 있어서, 수시로 생산(?)한다. 연 5~6회 꼴로)
더덕구이, 도라지오이무침, 가지무침에다
가족 모임 때면 상시 필수 제공품인 햇김치와 김장김치
등을 오늘 오후에 갖고 간다.
(이걸 준비하느라, 나는 더덕 100개와 도라지 50개를 깠다. ㅎ)
다른 한 집에서는 양념게장과 문어숙회, LA갈비를 준비하고
또 다른 집에서는 파전과 해물전을 맡았다.
그런 식이다.
[*주 : ‘쑥개떡’과 ‘쑥개피떡’은 다르다. 겨 따위를 반죽한 것에 쑥을 넣어 반대기로 만든 것이 이른바 싸구려 ‘쑥개떡’이고,
개피떡(쌀로 만든 송기 따위) 재료에 쑥을 넣어 만든 쌀떡이 ‘쑥개피떡’이다. 대체로 개피떡들은 서로 달라붙지 말라고
참기름을 바른다.]
(좌) 작업 개시 전. 보기보다 그릇이 깊어 양이 많다. (우)50개를 까고 중간 휴식. 무릎이 아파서
(좌)100개를 까고 중지. 나머지는 나중에. 소요시간 : 2.5시간 (우)바로 전날 캐 온 도라지. 하루 이상 담가둬야 쓴맛이 줄어든다.
차례상을 없애자. 차례를 지내더라도.
정확히 말하면 ‘차례 상차림’을 없애자는 말이다.
명절 음식으로, 있는 음식으로, 그냥 차례를 지내자.
괜히 복잡한 상차림으로 주부들 고생시키고, 헛돈 쓰는 일 하지 말자.
명절 음식 가짓수도 단출하게 하자. 남는 음식이 없게 하자.
모인 식구들이 죄다 먹어 치울 정도로만 양과 가짓수를 줄이자.
나는 명절 때만 되면 연휴 기간 내내 과식 상태다.
맛도 있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하하. -溫草
[Se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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