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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식빵’과 키 큰 여인들 : 행복할까... 키가 커서 좋을까 아닐까?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17. 7. 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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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김연경의 동영상 하나와 그 밖의 사진들이 제법 많이 들어가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재하는 것이어서, 사진들이 배꼽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래를 클릭하면 네이버 블로그 원본으로 갈 수 있다 : http://blog.naver.com/jonychoi/22105946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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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식빵과 키 큰 여인들 : 행복할까... 키가 커서 좋을까 아닐까?

   -고정관념 분해 조립해 보기

 

김연경(1988년생. 192센티).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자 배구 선수. 최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힐 정도로 인기도 높다. 남미와 터키를 거쳐 지금은 중국에 가 있다.



그런 그녀에게 따라 다니는 유명한 게 또 하나 있다. ‘식빵’! 쌍시옷 발음으로 시작되는 욕을 달고 산다. 그것도 자신이 머무는 나라의 언어로 자유자재로 바꾸어서 한다. 게임이 안 풀리거나, 점수를 내줄 때면 거의 자동적으로 발사된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이 화면은 작년 리우 올림픽 때 대 일본전에서 찍힌 것인데, 하도 목소리가 커서 전 세계로 그 소리가 그대로 나갔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이때의 발음은 식빵아~’

 


그럼에도 그녀의 인기가 떨어지거나 인격 의심 사례로까지 발전되진 않는다. 되레 현지인들이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식빵처럼 발음을 살짝 바꾸어 하는 데다, 가식이 없고 뒤끝이 없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는 당사자 해석도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선수로서는 장점이기도 한 키 문제가 그것. 그녀를 아끼고 좋아하는 터키 구단주가 남자 친구를 연결해 주려 애썼는데, 그때도 자신은 몰랐지만 상대방은 키 문제를 은근히 고민한 모양이더란 말을 하면서, 모 방송 스튜디오에서 크게 웃었다. 그 자리의 남자 출연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어쩌면 그 자신들도 그리한 줄 모르고 끄덕였을 듯하다. 무의식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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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칫 착각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운동선수들의 평균 키 얘기가 나오면 농구 종목을 배구보다 당연히, 별생각 없이, 높게 잡는 것이 바로 그것. 잘못된 고정관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실제로는 배구 선수들의 평균 키가 농구 선수들보다 조금 더 크다. , 수비 전문이라서 키가 크면 안 되는 리베로는 빼고 하는 얘기다. 그 리베로도 170대이긴 하지만... 여자 배구 선수들의 평균 키는 180cm 이상이다. 185가 넘어야 조금 큰 키에 든다. 한송이 같은 선수가 187, 김수지가 185쯤 된다.

 

우리나라 프로 구단의 남자 배구 선수들의 평균 키는 최저 190 이상이다. (리베로도 180에 근접한다) 180대도 극소수 있지만 그것도 후반대다. 190대의 세터들도 많고 2미터에 육박하는 센터는 당연히 많다. 소위 거포로 잘 나가는 공격수들은 거의 모두 190 후반대.

 

남자 농구 선수들을 보면 들쭉날쭉하다. 배구와 달리 포지션별로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고, 그게 아예 고정이라서다. 배구도 주 포지션이 있지만, 농구와 달리 포지션이 순환되기 때문에, 리베로를 빼고는 모든 선수가 전 방위 수비와 공격을 해야 한다. 농구는 그런 배구와 다르다 보니, 역할에 맞게 가드(180~190cm), 포워드(185~2미터), 센터(195~하승진의 221cm까지) 등으로 키가 나뉜다. 같은 농구 선수라 하더라도 선수들 간에 개별적인 신장 차이가 아주 크다.

 

그 결과 농구 선수들의 평균 키는 배구 선수들에 비하여 조금 낮다. 잘해야 평균 190 정도이고, 배구는 최저 평균이 190이다. 물론 종목을 불문하고 우수 팀일수록 평균 신장도 다른 팀에 비해 조금 더 크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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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키 또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좀 복잡하다. 일견 키가 크면 늘씬해 보여서 좋을 듯하다. 요즘 흔히 말하는 쭉쭉빵빵에 들려면 기본적으로 키 부분을 통과해야 하니까. 잘 모르지만 170cm 근방이 아닐까 싶다. 빠른 이해를 위해 실물 견본(?)을 제시하자면, 김혜수가 170, 전지현이 173이다.

 

그런데 그런 키가 부러운(?) 상황은 제3자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에서고 자신이 그 낱개의 상황/처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 정확성이 떨어지고, 진실성과 간절함을 아우르는 핍절(逼切)함과도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1934~ )이라는 미국 여인이 있다. 일반인이라면 그 이름을 얼른 떠올리기 어려울 수도 있는 여성운동가다. Mr.뿐인 남자와 달리 굳이 미혼/기혼을 따져 Miss/Mrs.로 구분하는 건 여성 차별이므로 그걸 Ms.(미즈)로 단일화하자면서, 동업 잡지 <Ms.>를 만들고 그곳의 최장수 편집장을 역임한 페미니스트다. 현대판 미국 여성운동가를 꼽을 때 으뜸 버금을 다툰다. 그 공로로,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민간인 최고의 상훈인 자유의 메달도 받았다.

 

그녀의 명저로 <안으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From Within)>이 있다. 나는 그걸 대한 이후로 자존심(self-respect)’이란 말은 아예 지우고 자긍심(self-esteem)’이란 말만을 고집스럽게 써오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의 전도사를 자임해 오다가 작년에 그걸 <셀프 혁명>이란 편집자용 제목으로 번역서까지 냈다. (‘자존심자긍심의 차이점을 가장 짧게 비유하자면, 진정으로 자긍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에이, 나 참 존심 상해서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다. 한때의 기분 따위로 흔들리지 않는 진짜 자존심, 그게 자긍심이다.)

 

그녀는 한국과도 낯설지 않다. 여러 번 방문했는데, 최근으로는 두 해 전(2015) 세계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비무장지대 걷기를 했다. 2011년에는 제주도를 찾기도 했고.



위 사진 속 한가운데의 키 큰 여인이 바로 글로리아다. 그녀의 키는 5피트 9인치. 미터법으로는 174센티쯤 된다. 이 키는 미국 여인치고도 작은 키가 아니다. 그 바람에 그녀는 서너 남자와 연애를 하고서도 제때(?) 시집을 못 갔다. 본인 말을 들어봐도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다. 그러다가 뒤늦게 60을 훌쩍 넘겨 연하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2000) 겨우 3년도 못 채우고 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냈다.

 

글로리아의 남성관은 처녀 적부터 피해의식이 적지 않았다. 여자치고는 지나치게 똑똑하고 말이 많은 데다가 키까지 크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은 탓이었다. 떠돌이 외판원이었던 아버지가 이혼한 어머니에게 알코올중독과 알코올성치매를 물려준 것도 남성 기피 +폄하+혐오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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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곁다리로 꼭 끼는 게 영부인론이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면서 불변의 1위 자리에 오르는 이가 있다. 미국의 엘리노어 루즈벨트, 32대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부인이다.

 

그녀에 관해서는 수많은 저서가 나왔지만, 그래도 모자랄 정도다. 여자로, 아내로, 영부인으로, 여성운동가로, 그녀가 남긴 명언들도 무척 많다. 인간의 내면을 꿰뚫은 것들도 있고 대부분은 휴머니스트적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런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그녀의 범인류애적 명언들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건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던 일이다.” [엘리노어에 관해서는 내 블로그에 여러 곳에서 언급했는데, 그녀를 여성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다음 글 참조 : “사랑하기와 정치하기 : 퍼스트레이디의 진짜 슬픔http://blog.naver.com/jonychoi/20080256552]

 

그녀의 키도 글로리아와 같은 59. 하지만, 실제의 키는 그보다 좀 더 커서 6피트(182cm). 그런데도 그녀는 키를 줄여서 말했다. 여자 키가 장다리같이 큰 게 자랑이 아닌 시대였던 탓에. 아래 사진들을 보면, 그녀는 6피트를 넘기는 남편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고, 일반 병사들보다 크다. 영부인 시절에 모병 행사에 도움을 주고자 .22구경 권총 사격을 하기도 했으며, 2차세계대전 때에는 어느 곳을 방문하든 군인 모자를 쓰고 격려하곤 했다. 최초의 흑인 조종사 탄생을 반대하는 여론을 다독이기 위해 2인승 쌍발기에도 올랐고, 결국 그렇게 해서 미국 조종사 역사의 새 장을 열게 했다. 그런 여인이었다. 그녀의 모든 행보가 온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은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사진 좌 : 해군 격려차 방문 길에 제독 및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

  비행기에 적힌 愛機 별명이 '우리의 엘리노어(Our Eleanor)'다.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

  사진 우 : 사모아 해병이 창설되면서 방문해서 그들을 격려하는 엘리노어. >


재미 일본인 강제 수용소를 방문한 엘리노어와 프랭클린 대통령.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있던 일본인들은 모두 전국에 산재해 있던

급조된 일본인 수용소로 강제 이주당했다. 집단 수용.

적국에 대한 내부 동조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일본인 강제 수용소(Japanese Internment Camp)'라 불렀고

신문들은 분리 센터(Segregation Center)라 표현했다.

이 수용소는 전국에 산재했고, 지금도 상당수가 유적처럼 남아 있다.

얼마 전 미국 정부가 그걸 경매하려고 했는데, 일본 정부가 나서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럼에도 종전 후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수치스러운 역사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일언반구도 없다.

미국과는 더욱더 찰떡 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우리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위안부 건을 어제도 오늘도 거론하고 있고 내일도 거론하고 있을 터인데...

루즈벨트의 대통령 당선 후 영부인 시절에 권총 사격 연습을 하는 엘리노어.

여성에게도 적합한 .22구경이다.

이 사진은 뒤에 2차대전 참전 용사 모병용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잘 생긴 남편 곁에는 언제나 다른 이쁜 여자들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3선까지 하는 바람에 헌법을 개정하게까지 한 남편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날 때 그를 안고 있었던 사람 역시 엘리노어가 아닌 다른 여인이었다. 엘리노어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17년 동안 사회사업가로, 무료 봉사자로 더욱 맹렬하게 살아가게 한 힘은 그런 어두운 터널을 잘 걸어낸 덕분이 아니었을까.

 

                                                                   *

키 큰 여인들... 관찰자적 입장에서나 단순 외형 비교 대상으로는 우월적 지위다. 추상적 상대적 구분에서도 대체로 앞선다. 하지만 개인적 삶의 갈피에서는 어떨까. 그 답은 이미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다. 역사적 인물로까지 기록될 글로리아나 최우수 영부인에 뽑혀 온 엘리노어조차도 개인적 행복의 면에서는 그 점수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것을. 세는나이 올해 서른이 된 김연경이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기운껏 말을 시작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부터 앞세웠던 까닭을 우리는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170대의 내 조카도 어렵게 실연의 고비를 극복했다.)

 

그렇다. 답은 뻔하다. 모든 삶이 그렇듯 외형적인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그냥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큰 키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것들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쭉쭉빵빵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차이만큼, 더는 몰라도 최소한 그 차이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러니, 그 다음의 할 일도 뻔하다. 그렇다는 사실을 얼른 깨닫고 자신의 방식대로,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따르면서 지키고 키워오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권해 온 것이지만) 자신만의 소중한 삶을 자신의 손으로 엮고 채워가야 한다. 그러면 된다. 1년여를 방황하던 나의 조카가 어렵다는 국가자격 2차 시험에 두 번째 도전을 힘차게 다짐하고 있듯이.

 

우리의 장다리 멀대글로리아가 자신도 한낱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연애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계기는 우연했다. 시간이 남아서 일본의 동경 거리를 그냥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키가 주변 사람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게 보이더란다. 그러면서 든 아주 단순한 생각 : ‘아 난 이 사람들보다 겨우 머리통 하나 차이밖에 안 나는 사람일 뿐이구나. 그런데 왜 이제껏 이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 내가 외형적으로 키만 조금 큰 사람일 뿐인데... 이 사람들처럼 팔을 끼고 함께 걸을 남자가 내겐 없잖아.’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와 삶을 바꾸고(집안 꾸미는 일부터 다시하고) 그때까지 거쳐 갔던 잠자리용 남자들 대신에 남자친구들을 진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부유한 백인 출판업자, 착실한 흑인 의사...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 데이비드 베일과 결혼을 한 게 66살 때였다.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가 바로 그다.


세상 사람들이 조립한 고정관념을 나도 모르게 그냥 껴안고 있는 것들, 적지 않다. 그것들을 찬찬히 분해해 본 뒤 자신의 손으로 조립해 볼 필요도 있다. 외형적인 것에 주된 가치가 부여된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나. 그것들을 진짜배기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니까.

                       [溫草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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