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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민의 이름으로 '만력공주/무자비(無字碑)공주' 시호를 하사(?)하자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11. 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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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배꼽으로 나오면... 원본은 이곳에 : http://blog.naver.com/jonychoi/221132829354

 

 

[박근혜] 국민의 이름으로 '만력공주/무자비(無字碑)공주' 시호를 하사(?)하자

 

명나라 황제 중에 만력제가 있습니다. 13대 황제로 이름은 주익균(朱翊鈞), 묘호(廟號)는 신종(神宗)인데 만력(萬曆, 1573~1620)이라는 연호(年號)를 사용하여 만력제(萬曆帝)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사람이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군사를 보낸 황제가 만력제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로 유명(?)합니다.

 

재위 기간 기록에서 으뜸인 48(1573~1620) 동안 황제로 있었습니다. 즉위(10) 초기에는 스승 장거정의 도움으로 일조편법과 같은 근사한 제도를 시행하여 '만력중흥' 등과 같은 칭송을 받지만, 스승이 죽고 나자 그때부터는 황제로서는 빵점짜리가 됩니다. 자그마치 30년 동안이나 조정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서 태정(怠政)’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상서[장관]들은 물론이고 재상까지도 황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고, 그 바람에 환관들이 설쳐대게 되었습니다.

 

그는 황제임에도 개인적인 치부에 엄청 몰두했습니다. 1596(萬曆 24)부터는 환관(宦官)들을 광세사(鑛税使)라는 이름으로 파견하여 돈을 만들었습니다. 환관(宦官)들은 지하에 광맥(鑛脈)이 있다는 것을 알면 채굴(採掘)을 위해 그곳 백성들을 모두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환관들도 떡고물을 적잖게 챙겼고요.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국가를 위해서는 한 푼도 안 썼습니다. 심지어 1618년 누르하치[努爾哈赤, 1559~1626]가 이끄는 후금(後金)의 군대가 푸순[撫順]을 점령했을 때, 랴오둥[遼東] 방어를 위한 군비(軍費)가 모자라니 내탕(內帑)에서 좀 지원해달라고 애걸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만력제 이후 세 사람의 황제가 잠깐씩 거쳐 가기는 하지만, 겨우 20여 년쯤 버티다가 결국 뒷날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에게 나라를 내주게 됩니다(1644).

 

그가 죽은 뒤 묘비가 서는데요. 아래 사진에서처럼 글자가 하나도 없는 무자비(無字碑)입니다. 자신의 공덕을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 두라는 유지를 따른 것이라고도 하고, 사실대로 적으면 사치와 호색 두 말밖에 없어서 난감해진 사관들이 붓을 놓은 탓이라는 설이 충돌한답니다.



  (좌) 글자가 하나도 없는 무자비                                          (우)만력 4년(1576)에 급제한 이순신의 급제 증서.

                                                                                         연도 표기에서 우리 연호를 쓴 건, 대한제국의 광무가 최초 

 

그런 만력제를 후대에서 그냥 둘 리가 없죠. 문화혁명 시대 때 홍위병들이 달려들어 그의 묘를 파헤쳐 유골을 소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명의 황제들은 <13>이라 해서 북경 북쪽 백 리쯤 되는 천수산에 전부 모여 있기 때문에, 홍위병들이 장소를 찾아내기도 쉬웠고, 게다가 황제의 시신은 묘 아래 지하 궁전에 안치되어 있어서 파헤치기도 쉬웠습니다.


<명13릉>의 배치도. 노란색 표기 부분이 만력제의 정릉. (출처 : 굿닥터 외과의 강 모 박사의 블로그)   


 

, 홍위병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기 전 1958년에 그의 묘가 발굴되었는데요. 그는 엄청난 뚱뚱이였고, 상체 척추는 꼽추처럼 (튀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휘어져 있더랍니다. 그가 그런 외모 때문에 태정을 한 건지, 주색 밝히기에 뒤따르기 마련인 과식/과음과 운동부족으로 그런 모습이 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요. 

만력제 초상화. 그의 비만은 얼굴 하단과 배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

박근혜. 우리나라의 대통령사에서 임기 중에 국민의 힘으로 헌법에 의해서 퇴출된 최초의 대통령. 그것만도 한없이 부끄러워서 어쩌면 자의로 어딘가로 사라져야 할 사람인데, 그런 지각조차도 없는지 별별 소리를 다하면서 지저분한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워질 정도로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보면 만력제와 여러 가지로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차관급은 물론이고 총리까지도 재임 중 그녀와 독대한 경험들이 전무하거나 빈약한 것, 청와대 본관으로 나오지도 않은 채 안채에서 머물기를 좋아하던 그것은 만력제의 태정 모습을 닮았습니다.

 

환관들이 설친 것 또한 만력제를 빼닮았습니다. 그런 것은 굳이 후한 말 시대의 영제(靈帝, 156~189)까지 거슬러 올라가 십상시를 운위할 게 아니라, 만력제의 그것으로도 충분할 듯합니다. 명의 멸망을 앞당긴 농민반란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환관의 발호이기도 했으니까요. 촛불 혁명의 단초 마련에 우리 시대의 환관들이 기여한 바가 큰 것과도 상통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에서는 환관과 뭐가 없는 내시와는 좀 다릅니다. 환관은 청와대 비서관들과 같은 사람을 싸잡아서 이른 말.)

 

국정원 특수활동비. 그건 국민의 혈세로 마련한 돈입니다. 그걸 박근혜는 자신을 위해 썼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내탕금에 집착한 채 국가적 위기까지도 내팽개친 만력제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직 명백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세월호 사건 때 그녀는 얼굴 성형 관리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해 오후 늦게야 머리치장까지 하고서 중대본(中對本)에 나타났다는 건 우리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런 데에 들어갈 비용 마련을 위해 국민의 혈세인 특활비를 자기 돈처럼 끌어다 썼다는 게 현재의 중론(衆論)이고요.

 

더 이야기하면 우리들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머물렀던 인물이고, 그런 그녀에게 한 표를 던진 것은 바로 국민들이니까요. 그녀의 언어 화장술에 속아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요.

 

박근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종로구 세종로 1번지(현재는 청와대로 1)’20년 가까이 주소지로 삼았던 인물입니다. 그런 탓에 그녀는 자신을 태생적 공주로 착각한 채 살아왔습니다. 졸저 <박근혜의 말>에서 제가 그녀에게 부여한 여러 가지 공주 칭호는 그러한 착각 공주가 상황에 따라 달리 연출한 언어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요. 오늘은 거기에 만력(萬曆)공주혹은 무자비(無字碑)공주라는 호칭을 더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국민의 이름으로요.

 

재임 중 122벌의 옷을 마련하여 그걸 죄다 입지도 못하고, 법정 출정을 할 때조차도 5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여전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 박근혜를 평하라 하면, 나는 이렇게 적을 듯합니다.

 

공주의식으로 광합성을 해 오며 살아온 사람이라 그것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던 안쓰러운 인물. ‘공주적외모 연출에 속박되어 모든 것을 망친 사람. 국가/국민에서부터 자신까지. 그중 자신을 확실하게 망쳤음에도 그걸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 어쩌면 그걸 평생토록 모를 사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옷이나 얼굴 따위의 외모 가꾸기로 가둬두고 있는 한은....

-溫草 [Nov. 2017]

 

[추기] 박근혜는 아직 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이 들통난 걸 모르고 있다 합니다.

          그런 추악한 짓이 낱낱이 밝혀진 뒤에는, 법정에서 무슨 소리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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