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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찾기] 43대 골든벨 지관순(33) 씨 아시는 분?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10. 6.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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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찾기] 43대 골든벨 지관순(33) 씨 아시는 분?

 

13년 전인 2004117. 수능 시험을 열흘 앞두고 KBS-1TV에서 골든벨이 방송되었습니다. 거기서 시골 학교라 할 수 있는 파주 문산여고의 지관순(20) 양이 대견하게도 43대 골든벨로 등극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의례적인 박수감이었는데요.

 

골든벨을 울리자 담임인 김진희 교사(당시 33)가 뛰어 나와 지 양을 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그 광경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 본 언론사 데스크 중 한 사람이 그 다음날 기자를 학교로 보내서 그 사연을 취재합니다.

 

그렇게 해서 널리 알려진 게 지 양의 사연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여 검정고시를 거쳐 중학교에 입학했고, 오리를 키워 생계를 유지하는 집안의 살림꾼일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른들의 빨래까지도 해내는 억척 일꾼이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었고요. 형편이 어려워 책 사볼 돈이 없어서 눈에 띄는 책은 닥치는 대로 거의 다 읽었다는 엄청난 독서량 얘기는 지 양의 안섶이었지요. 게다가 놀라웠던 것은 지 양의 확고한 역사관이었습니다. 학자의 길 중에서도 돈(?)이 안 되는 역사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었죠.

 

아래 사진 속의 모습이 그 담임 선생과 지 양입니다. 지 양의 굵은 팔뚝이 억척 일꾼임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 양의 사연이 보도되자 전국에서 격려와 성금이 답지합니다. (성금 총액은 그다지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요.)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꿈도 꾸지 못할 그녀에게 대학 4년 장학금을 주는 곳도 나오는데요. 바로 왼쪽 사진 속의 성완종 회장입니다.



  대학 4년 전액 장학금 전달식에서의 성 회장-중앙                       김진희 교사와 반 친구들. 지 양은 앞줄 중앙  

 

사실 성 회장 역시 지독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만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뒤 주경야독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이들이 장학금의 효용을 절감합니다. 일개 기업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장학회(충남의 '서산장학재단')를 설립하여 10여 년 동안에 110억 원이라는 거금을 장학금으로 지출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죠.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지만, 대기업치고 정치적 보험을 들지 않는 곳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기업 풍토에 곁들여, 당시의 살아 있는 권력이던 박근혜를 건드린 것이 불행한 자살로 마감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성완종 리스트야말로 이 나라의 그 어둡고도 질긴 보험성 정경유착의 명백한 증거물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점이 그것의 방증이기도 하죠.

 

여하간, 지 양은 그런 도움 덕분에 대학 진학을 합니다. 덕성여대 사학과로... 그 뒤 대학원 진학을 했다고 하는데, 학교를 바꾼 건지, 아니면 동일계로 이어진 건지 불명확합니다. 대학 생활 중에 시민단체 활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요.

 

궁금하여 석/박사 학위 논문을 검색해 보니, 연세대의 석사 논문 중 <新文化運動期 王國維史學硏究現實認識 : 학술활동의 변화를 중심으로>(2013)가 지관순의 것으로 나옵니다. 역사학 중에서도 고교 시절에 이미 유독 중국사에 심취하고 있던 지 양의 성향으로 보아, 동일인으로 추정되긴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학문 연마에서 확실한 현주소(?)를 몰라 궁금함이 더해집니다.

 

혹시 주변에서 이 지 양의 소식을 아시는 분 계신지요? 쓸데없는 호기심이라 할지 몰라도, 저는 이와 같은 미담의 주인공들에 대한 후일담을 꼭 챙기고 싶고, 그리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한때 우르르 휩쓸려가서 박수나 비난을 쏟고서 이내 잊어버리곤 하는 이 나라의 초단기 집단 망각증을 치유하는 길일 듯해서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지관순 양은 당시의 그녀 행적만으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이미 삶의 스승-사표(師表)-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었거든요.

 

아래에 당시 기사 일부를 전재합니다. 그녀가 어째서 그 당시에도 우리들의 스승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지양은 친구들이 책을 빌려달라고 할 때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

 

친구들이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고 집에도 책이 많은 줄 알아요. 하지만 집에는 책을 놓아둘 곳도 없고 책도 별로 없어요. 대부분 더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책이라 이사할 때마다 버렸거든요.” 책을 많이 읽는 지양이지만 독후감은 쓰지 않는다. 대신 심심할 때마다 공책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최근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는 것이 전부다. “오래된 습관이라는 지양은 책 제목을 쓰는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든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정작 서점에는 잘 들르지 않는다. “서점에 가면 사고싶은 책이 너무 많아 갈등만 하다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컴퓨터와도 별로 친하지 않다. 종이만의 독특한 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책이 주는 느낌과 부피감, 무게, 종이 냄새, 이런 것들이 그냥 좋아요.”

 

지양의 꿈은 앞으로 동양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 이를 위해 앞으로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남들은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는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양의 목소리는 다부졌다.

 

지의준 씨(지 양의 부친)관순이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자율학습도 고3이 되어서야 담임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저녁 7시까지만 시키고 있다. 지양은 대신 집에 돌아가 집안 일은 물론 마을 이웃 일을 돕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도 관순이의 몫이다.

 

잔반을 거두어 오리를 기르는 지 씨는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데도 사육장에서 나오는 오리알은 몇년 전부터 인근 의료원과 요양소 등지에 수용된 오갈 곳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 씨는 관순이가 학자보다는 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 치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학생은 많지만 의인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딸에 대한 지 씨의 부탁은 여느 부모와는 다른 것이었다.

 

교사들이 기억하는 관순양-호기심·질문 많은 학생

 

성실, 책임감, 집중력, 고집’. 교사들이 전하는 지 양의 모습이다. 지 양을 가르쳤던 문산여중·여고 교사들은 한결같이 책임감이 강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마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현재 담임을 맡고 있는 김진희(33·) 교사는 칼 같은 성격 때문인지 자기 관리에도 철저한 것 같다.”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교사인 나도 고집을 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원리·원칙을 중시해 교칙은 물론 스스로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학교 공부에 집안 일까지 도와야 하는 힘겨운 생활일 법도 하지만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지 양의 출석부에는 지난 3년간 개근에 독감으로 딱 한 번 지각한 것이 전부다.

 

학교 성적은 현재 최상위권이다. 김 교사는 학교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때에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눈빛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중학교 2·3학년 담임이었던 이인자(47·) 교사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해가 바뀔수록 성적이 올라 3학년 때에는 상위권으로 올라섰다.”면서 뭘 하든지 성실하게 하는 것이 성적 향상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당시 국사를 가르쳤던 이범기(40) 교사는 지 양을 질문이 많은 아이로 떠올렸다. 그는 보통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지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관순이는 정말 알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묻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얘기를 참고로 얘기해주면 수업이 끝난 뒤 찾아와 더 알고 싶은데 어떤 책을 보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는 것. 이 교사는 질문이 거의 없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았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溫草 [Oc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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