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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아 나의 허술한 끈이여! : 습관과 관계의 끈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7. 11. 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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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의 허술한 끈이여! : 습관과 관계의 끈

 

서너 주 전의 일입니다. 인터넷과 스카이라이프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인터넷은 새벽 3시간 동안, 스카이라이프는 저녁에 3시간 동안 휴식을 겸해서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데에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인터넷 정상화에 매달렸습니다. 외출도 미룬 채 주말 이틀 동안 10시간 이상을 매달렸는데도 헛일이었습니다.

 

스카이라이프도 그동안의 임시 대처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안 돼서, 기사를 불렀습니다. 그들이 다녀간 날 하루뿐, 여전히 말썽이 계속됐습니다. 세 번째 기사는 제가 지명해서 불렀고, 그에게 인터넷 피시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선로 이상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가 선로 점검에 나섰습니다. 집 안의 단자함을 살펴보더니 밖으로 나가 건물의 단자함부터 조치했고, 집 안의 단자함에서는 셋톱박스를 교체했습니다.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면서요. 그러자 거짓말같이 모든 것이 정상화됐습니다. 인터넷도 스카이라이프도요.

 

내 피시나 방 안의 셋톱박스 탓이 아니었던 거지요. 우리 집 안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선로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1주일 동안 처음에는 불편했습니다. 되다 말다 하고, 사용 중간에 말썽이 나기도 해서요. 그게 되풀이되고, 아무리 손을 봐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짜증이 났습니다. 결국 인터넷과 티브이를 닫아둬야 했습니다. 그러자 답답해졌고 이윽고 안절부절못하게 되더군요.

 

여전히 새벽 4시면 눈이 떠져서 일어나기는 하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깜깜해진 피시를 대하니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낮에 할 일에 쓰일 자료 정리를 하거나 읽어둬야 할 책을 읽거나 해도 되는데, 그런 일들을 정상적으로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서성이게 되고, 밖으로 들락거리며 담배만 잦게 피워댔고, 새벽 커피 석 잔을 더욱 서둘러 끝낼 뿐이었습니다.

 

***

1주일 동안 겪은 막막함과 답답함의 끝에서 선명하게 맛본 불안감. 그 원인은 단절과 폐쇄였습니다. 나의 오랜 습관과 단절되고 바깥세상과의 관계가 느닷없이 닫히는 데서 온...


새벽에 일어나면 이메일에 답을 하고, 블로그 댓글에 답글을 달거나 그날치의 게시물을 올리곤 했습니다. 저녁이면 서너 개의 채널을 이용하여 제 나름대로 요긴하게 세상과 접속했지요.

 

10시면 자야 하기 때문에 주어진 3시간 동안 심층 뉴스 보도, 야구나 골프, 재방송 사극, 외화(外畵) 등을 요리조리 결합하여 제 용도(?)대로 잘 써먹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다 해내야 하기 때문에 한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는 없고, 중간 중간 채널 이동을 하면서 말입니다. (한물 간 사극 재방송을 왜 보느냐고요? 특정 인물들의 귀를 관찰해야 할 때, 올림머리를 하고 나오는 사극에서처럼 귀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건 없어서랍니다.)

 

그런데 집에서 해내는 이 두 가지 일 모두를 해낼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런 일상과 단절된 것이고, 세상과의 소통 길이 막힌 거죠. 그것도 갑자기, 내가 전혀 준비도 안 된 채로요. 그런데도 나와 가장 가까이 머무는 가족들조차 나의 그런 불안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더군요. 나만의 단절감은 더욱 또렷하게 도려졌습니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수재로 받들리는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가난은 소속되지 못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나는 그걸 미래의 진짜 가난은 외로움(loneliness)’이란 말로 번안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정신병 약인데, 그중에서도 우울증 치료제가 으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군중 속의 고독은 이제 현대인에게 질병으로 번진 지 오래입니다.

 

저는 그런 현상을 수긍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은근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데카르트는 숨어 지낸 자가 값진 인생을 보낸 자다(Bene qui latuit, Bene vixit. 베네 끼 라튓, 베네 비싯)’라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박수를 치면서 그리 살아오기도 했거든요. 제가 자주 수동적 외로움(loneliness)과 적극적 고독력(solitude. 자신이 홀로 있음을 선택하는 것)을 구분하자고 떠들어댄 것도 그와 연관됩니다만.

 

***

이번에 겪은 오랜 버릇과의 단절과 외부 관계의 폐쇄에서 오는 불안감. 그것은 내 고독력의 허술함과도 끈이 닿아 있었습니다. 홀로 있음의 비상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지요. 특히 외부 관계에의 연결 끈에 이상이 생기자, 마치 생명줄에 구멍이 난 것과 같이 불안했습니다.

 

관계의 한자를 들여다봅니다. ‘關係에 쓰인 은 뜻을 나타내는 문 문(두 짝의 문)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관(북에 실을 꿰는 모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문을 닫아거는 빗장의 뜻이었는데, 나중에는 關門에서처럼 닫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는 사람 인()에 실 사()가 결합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 사이를 실로 잇는다는 뜻입니다.

 

두 글자 모두에서 실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끈은 실을 모아 꼰 것이지요. ‘관계란 달리 말하면 내가 꼰 줄/끈을 외부로 늘어뜨린 것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끈들이 허술하면 허술할수록 관계망에는 구멍이 뚫리게 마련이고, 관계는 새어나가거나 나에게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어주질 못하는 거죠. 내가 실을 제대로 꼬아야 그 줄/끈이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그 실은 물레를 제대로 잘 자아야 제대로 된 실이 될 수 있고, 그 출발은 씨아(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의 선택과 제대로의 운용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허술하거나 잘못되면 그 결과는 미흡, 불만족, 실패를 거쳐 만사와해의 낭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번의 인터넷과 티브이 말썽. 비록 그것이 인터넷 선()의 잘못됨에서 비롯된 것이긴 했지만, 그로 인하여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 것은 어쩌면 내게 또 하나의 묵시록 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허술한 끈 관리 모습을 돌아보게 했으니까요.

 

나도 이제는 나의 끈 관리에도 프로가 되어야 할 텐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타이어 프로로 가라고 선전을 하던데, ‘끈 프로는 어디에 없을까요?                -溫草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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