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좀 되는데, 배꼽으로 나오면 이곳으로 :
http://blog.naver.com/jonychoi/221141081250
낙엽의 계절입니다.
산에 오르면 산길에 낙엽이 수북합니다.
낙엽으로 만든 양탄자가 깔린 길을 걷는 듯만 합니다.
길가의 은행나무들도 길바닥을 노랑색 잔치 터로 만듭니다.
마치 드레스 코드를 노랑으로 정한 파티장에 초대받은 듯만 합니다.
낙엽으로 땅에 내린 단풍잎을 집어듭니다.
두 가지로 나뉩니다.
(좌) 제대로 된, 좀 반듯한 단풍
(우) 병들거나 곰팡이에 시달린 단풍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단풍 낙엽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이처럼 두 가지입니다.
낙엽이 돼서도 아주 아름다운 것들은 단풍이 들면서부터 곱게 든 것이고
단풍이 들 때 병들거나 비틀린 것들은 낙엽이 되어 더욱 추레해집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은행잎들을 자세히 봅니다.
뒤집어 보지 않아도 시원치 않은 것들은 계절에 앞서 떨어져 내립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버티지 못하고 일찍 떨어져 내립니다.
***
예전에 낙엽들을 대하고, 떠올린 생각들이 좀 있었습니다.
망발에 가까울 정도로 녀석들의 값을 떨어뜨린 적도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jonychoi/20071832030
...단풍은 실체로 아름답다. 그러나 낙엽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실체도 그렇고 그 출발과 종착 지점 모두가... 비틀린 엽맥마다 고사한 애린(愛隣)이 들러붙어 있다. 노인네 손등의 튀어오른 정맥처럼.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낙엽은 더 이상 나뭇잎이 아니다. 무덤으로 향하는 망자다. 가지에 붙어서 끝까지 나뭇잎의 이름값을 하는 건 단풍이다. 단풍은 곱게 늙은 노인이다. 아직은 살아 있는.
[중략]
낙엽 앞에서는 주로 씁쓸한 미래를 서정적으로 반추하고, 실물의 단풍 앞에서는 최소한 삽상한 현재를 서사적으로 흡입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다. [Dec. 2001]
***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린 길을 걸으며, 뒤늦게나마 나의 섣부른 예전 관찰이 부끄러워집니다.
낙엽들은 잘났건 못났건 서로를 감싸안고, 서로 덮어주면서
생각 짧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보드라운 양탄자가 되어 줍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한 보따리 안겨줍니다.
불타오르는 듯한 단풍색 앞에서 찬탄을 띄워 올리게 하고
그 단풍 끝을 좇다 보면 푸르른 하늘에도 눈길을 주게 됩니다.
그곳에는 맑고 고움만 가득합니다.
추함이나 오욕 등은 머물 곳이 없어집니다.
정신의 심호흡이 저절로 이뤄집니다.
***
올봄 3월 초, 봄나물을 서둘러 보고 싶은 마음에 동네 숲길로 이어지는 곳을 돌아볼 때였습니다.
푸른색만 보이면 뛰어가서 녀석들을 확인하곤 하다가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을 알아챘습니다.
어느 곳이든 낙엽이 있는 곳에는, 그 낙엽을 들추면 그 아래에서
초록색 잎들이 솟아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맨 땅과 달리, 낙엽 아래에서는 봄나물들이 더 일찍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낙엽은 낙엽 한 장으로도 식물들에게는 이불이 되고 있었던 것이죠.
그 놀라운 감흥은 제 머리와 가슴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http://blog.naver.com/jonychoi/220525537907
***
엊저녁, 식탁 옆 메모지 꽂이에 놓인 한 장의 스케치를 대했습니다.
집사람이 연필화로 그린 그림이었는데요.
낙엽들이었습니다.
쓱쓱 해서 이내 그려내는 편인데, 그림을 보니 상상화에 가깝더군요.
이 가을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낙엽들인 듯합니다.
잠시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짠한 마음이 엉겨왔습니다.
무릎을 비롯하여 온몸에서 노화 현상에서 나타나는 잗다란 고통들을 달고 사는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처지까지도 저런 낙엽에 비유하게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래도 조금은 안도하게 되었습니다.
낙엽들 중에서도 잎맥이 선명하고 벌레 먹은 곳 하나 없는 그런 잎들이 섞여 있는 게 보여서요.
***
단풍은 잎이 넓은 것(활엽수)들의 겨우살이 준비입니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한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광합성을 포기하고 엽록소를 방출한 뒤 -그게 단풍 드는 일이죠-
이윽고 몸체에서 그 잎까지 떨구는 극단의 포기인 자진(自盡)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활엽수들이 광합성 욕심을 완전히 접고, 자신의 몸 일부를 도려내는 일이기도 하죠.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범접할 수도 없는 매서운 선택.
그 결과물인 낙엽 앞에서, 저는 다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낙엽이 어설픈 인간보다도 확실하게 한 수 위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요. [溫草]
[추기] '단풍'은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을 이르는 말이지만, 단풍나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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