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와 성폭력, 그리고 사랑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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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폭력/성추행이란 말이 온 세상을 휘젓습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이름들이 뉴스를 장식합니다. 그런 소식들이 마치 더러워진 공기처럼 떠돕니다. 휘젓기 덕분에 그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썩은 바닥 공기가 이제야 위로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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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뉴스들을 대하고 사내들은 기부터 죽은 뒤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손가락질에 열심히 동참하는 나팔수들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이때를 놓치지 말고 확 뜯어고치자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이들도 적지 않고요. 또 다른 구석에서는 기를 쓰고 점수를 따려 들었던 이른바 극소수 여인들의 문제적 행태들까지도 한 줄에 꿰어지는 게 마뜩찮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것도 동성 쪽에서요. 심지어 내연녀 수준이었던 이까지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서, 나서는 이도 있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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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습들을 대하면서 뜬금없는 낱말 몇 개가 스쳐갑니다. 혼외자와 그 주변에 관련되는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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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때의 이야기입니다. 군인 출신으로 장관에까지 오른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시대에 아주 드물게 국회의 해임건의안에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찬성하는 바람에 물러난 이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행적 중에 혼외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인 시절에 알게 된 여인과의 사이에 사생아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친자 확인을 요구해 오자, 그는 군말 없이 수긍하고 자식으로 받아들입니다. 호쾌하고 간명하게요. (그게 진짜로 멋져 보여서, 그의 이름을 제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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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주변에서 그걸 빌미 삼아 그를 헐뜯자, 박정희는 말합니다. “사내들 세계에서는 벨트 아래는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그 사건 이후 유행하게 된 게 바로 박정희의 명언이라는 ‘벨트 아래는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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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정일권. 정성일. 이 세 이름은 웬만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합니다. 절두산 아래 도로에서 한밤중에 권총에 맞아 죽은 정인숙 사건(1971. 지금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서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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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막은 아주 복잡합니다. 특히 정성일의 친아버지가 누구냐를 두고요. 정인숙이 상대한 남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어서죠. 박정희서부터 정일권과 박종규, 심지어 이후락의 이름에다 유명 기업 회장들까지도 나옵니다. (그들 모두의 이름과 연락처가 죽은 정인숙 수첩에 나오죠.) 더구나 그녀는 당시 외교관이나 고위 관리만 지니는 복수여권으로 드나들었고, 죽음도 일부 특수인만이 소지할 수 있었던 권총 사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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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박정희는 항간의 소문에 의지한 육영수 여사한테서 재떨이가 날아오는 수모도 겪습니다. [육 여사는 친정아비가 세 여자를 거느렸던 터라, 박정희의 끼는 봐줬지만, 세상 밖으로까지 거명되는 그런 행실에는 단호했습니다. 뒤처리를 잘못한다는 이유로요.] 그 일로 정일권 씨는 박정희 앞에 무릎까지 꿇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시일이 흐르기를 기다려 조용히 당시 총리이던 정일권 씨를 해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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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이 상대한 남자들은 많았지만, 정성일은 정일권의 친자 쪽으로 정리된 듯합니다. (나중에 그가 귀국해서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하죠. 필동의 정인숙 집을 밤낮 드나든 통에 주민들에게 목격된 이도 정 총리였고요. 당시 그는 40대 초반의 왕성한 사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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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는 대단히 특이한 사람입니다. 박 대통령과는 동갑임에도 군에서는 대선배였습니다. ‘46년에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한 뒤, 6.25 당시이던 1951년에 중장으로 진급한 후(박정희는 소령으로 복직) 미국에 파견되어 참모대학을 1952년 7월에 졸업합니다. 귀국 뒤 1954년 2월 38살에 육군대장으로 진급했고, 그해 6월 육군참모총장이 된 입지적적인 인물이죠. 5.16혁명 이후로는 몇 군데의 대사 생활을 한 뒤 외무장관으로 발탁되고, 나중에는 총리/국회의장 등을 거치게 되고요. 그야말로 전형적인 양지형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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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를 30여 년 전 제 대학원 시절에, 자주 열렸던 저명인사 특강 시간에 만났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저는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동갑내기이자 까마득한 부하였던 박정희 밑으로 들어가 그토록 오래 충성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마음/계기로였느냐, 껄끄러운 질문이지만 정인숙 씨와는 어떤 관계였느냐... 첫 질문엔 답을 했는데, 두 번째 질문에서는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강연 내내 기본적인 미소를 잃지 않던 그에게서 미소가 사라지더군요. 그럼에도 학교를 떠나가던 그의 뒷걸음이 참 반듯하다는 생각을 뜬금없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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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국정원 댓글 수사를 검찰이 본격화하자 느닷없이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 이야기가 조선일보 단독 보도로 뜹니다. 그리고, 그러자 채 총장은 물러나고 댓글 사건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채 총장의 혼외자 건 조사는 국정원 직원 송 모 씨가 불법으로 했고 중간 간부를 거쳐 2차장에게까지 보고됐다는 조사 결과가 2017년 국정원 개혁위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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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총장은 바쁜 틈에도 아이의 생일잔치에 참석했고, 학교에 입학하자 학부모로 참석하여 사진도 찍고, 연말이면 카드를 써서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자상한 아빠 노릇을 하려고 애를 썼던 흔적이랄 수 있겠네요. 채 총장의 그 아이는 잠시 미국으로 피신했는데, 지금도 미국에 머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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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혼외자가 있습니다. DJ의 경우에는 퇴임 후에야 공식적으로 알려졌는데,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 전에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입을 닫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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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도 혼외자 인지에서는 사내다웠는데(?) 뒤 봐주기에서는 좀 모자랐던 듯합니다. 자식 측으로부터 뒷말이 조금 나왔습니다. 보도 내용이라서 그 신뢰도 면에서는 좀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세간의 관심에서 이내 잊힐 정도로 원만하게 처리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박정희의 명언이 아직도 유효한 나라인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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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자주 거명되는 2mb, 이명박. 그에게도 혼외자가 있습니다. 하필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에 이명박의 고교 시절 사진과 판박이인 그 ‘눈 찢어진 아이’(조성민)가 친자확인 소송을 걸어오죠. 다른 사람 같으면 즉시 합의를 해서 소송 취하부터 서두를 텐데, 이명박은 그의 별명 ‘짠돌이’답게 그 순간에도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결국 합의금을 깎는데 성공했는지, 소는 취하됩니다. (자세한 전말은 이명박의 고정 저격수라 할 수 있는 주진우 기자의 책,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푸른숲| 2017)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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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자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유가 무엇이건 페미니스트들이라면 게거품을 물겠지만, 인생사에서는 한편에서 바라보는 옳고 바름의 잣대만으로 단죄하거나 처결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과 사후 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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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리만 보기로 합니다. 박통 시대의 장관은 사내다웠습니다. 정일권은 그 과정에서도 지모꾼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사랑을 구걸하기까지 했고 낙태를 권유/압박하기도 한 모양인데 시원찮았습니다. 여권 발급을 국회의장 시절의 비서실장을 시켜 해준 모양인데 그 불똥(일본 출입국)이 박종규에게까지 튀도록 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었고, 그것이 결국은 총리직 박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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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총장은 자신의 강제 낙마를 노리는 술수에 희생되면서 거기에 혼외자 문제까지 활용하는 비열함에 분노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혼외자 존재 자체를 끝까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사표를 써 던지는 것으로 아비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그의 이름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 팀 발족 시 특별검사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명예가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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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도 어느 정도 호쾌한 것으로 보입니다. 2mb는 자식과의 일에서조차도 ‘돈, 돈, 돈’ 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지저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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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혼외자의 친모, 곧 여인과의 관계입니다. 호쾌한 이들은 여인들을 노리개 삼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진심으로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부남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려 한 이들은 없었고, 여인들 또한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하간, 관계한 여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에서 관계가 맺어지고 그 관계가 이어진 경우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요즘 흔히 유행하는 말, 곧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상태에서의 강압적 폭력적’ 관계 맺기, 곧 몸만 뺏기가 아니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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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성폭력 사태의 주인공들. 어찌 보면 엄청 불쌍하거나 비열한 족속들입니다. 우호적인 남녀관계란 형태나 내용물엔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랑’이라는 게 바탕에 깔리기 마련인데, 이들은 여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몸만 취한 꼴이 아닌가요? 여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사내들의 욕정 해결. 그것이야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고, 그 수단이 폭압/위력에 의존한 것이라면 비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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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사랑 바탕에는 상대방에의 흠모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존경일 수도 있고, 선망일 수도 있으며, 칭찬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것들이 죄다 섞여 있거나요. 여인들의 사랑을 획득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성관계는 동물 수준과 다를 바 없죠. 혼외자 사랑을 했던 이들이 되레 이런 하급의 동물적 사내들보다 한 급 위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혼외자 생산자들을 옹호하려는 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다만, 그들 역시 혼외자를 생산하려 했을 리는 없을 터. 생긴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거두려는 여린 마음에서 생긴 아이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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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행위자들. 그들은 참으로 못난 사내들입니다. 살아오면서 그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인 하나조차 만나지 못했거나 만들지 못한 탓에, 이 여자 저 여자 닥치는 대로 힐끔거리는 저급동물이 된 것 아닐까요. 하기야 오늘날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평소에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대상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일은 몹시 드물었을 듯도 합니다. 성욕 해결 대상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그 지저분한 눈길을 사랑할 여인이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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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들. 돌아보면 참 불쌍하기 짝이 없는, 비겁한 열등 족속입니다. 성욕 제거용 화학 치료 요법 대신에 예전의 그 궁형(宮刑. 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부활하면 어떨까요. 문득 그 형을 받았던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무슨 죄였는지, 궁금해지네요. 죄명 아시는 분, 알려주십시오.
-溫草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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