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개나 소나... ‘얼굴값’과 ‘꼴값’
며칠 전, 한 친구의 췌장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에 그를 봤을 때, 얼굴색이 좀 어두운 편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담석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담석증은 흔히 췌장암을 오진할 때 많이 등장하는 병명인데요.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려워서 확진이 이뤄지면 1년 이내에 사망하는,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난치병입니다. 그는 지금 친구들의 면회도 되지 않는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저는 한 친구가 걱정되어 전화를 했습니다. 전에도 한번 했는데, 여러 번 신호가 가는데도 답이 없었던 친구입니다. 또 응답이 없었습니다. 답이 없으면 더 걱정이 되는 법, 문자를 남겼습니다. 그랬더니, 저녁에 전화가 왔습니다.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되더군요.
그 친구를 걱정하게 된 것은 정년퇴임 때문입니다. 본인은 강단에 더 서고 싶은데 사립학교 운영자 측과의 마찰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된 뒤로 꽤나 상심하고 있었거든요. 이곳저곳 좀 돌아다니면서 마음 추스르기에 들어간다 했는데, 그 여정(?)이 밝지 않을 수도 있어서 조금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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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친구 걱정을 하다가, 여행 수확품(?) 얘기로 번졌습니다. 뭐 좀 건진 게 있느냐고 묻자,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뜬금없이 ‘얼굴값’과 ‘꼴값’이란 말이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고요. 그것도 여행 마무리의 귀가길 기차 안에서요.
맞은편에 앉은 번역가라는 40대 중년 여성과 대화를 하게 됐답니다. 얘기 끝에 요즘 누구나 끼어들기 마련인 미투 얘기도 나왔는데,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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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편인 안색, 검은색의 꽉 끼는 패딩, 어수선한 머리에다 시선도 불안한 40대 중년 여인. 수인사 끝에 자신의 신상 얘기를 꺼내려 하기에, 내 친구는 여인의 손금을 보여 달라 했답니다. (내 친구는 경영학과 교수인데, 인상 경영학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의 초청 강연을 열 정도로 그 분야에도 오랫동안 관심해 왔고, 숨은 실력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즐겨 부르는 동요 '새 나라의 어린이'가 그의 별명일 만치, 행동도 바르고 반듯합니다.)
짐작대로 관상과 손금이 대충 일치하기에 그녀의 속내는 듣지 않아도 되었는데, 여인은 굳이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얘기를 하더랍니다. 예상(?)대로 이혼녀였고, 초등생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먹고 살기 위해 번역을 하고 있다는...
그 뒤 집으로 돌아와 문득 그녀의 번역서 등이 블로그에 소개돼 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명함에 적힌 블로그엘 가 봤답니다. 그랬더니만... 아 글쎄, 그가 그녀의 글 속에서 성추행범이 되어 있더라네요. 손금을 본답시고 자기 손을 조몰락거렸다고요.
내 친구의 기억에 의하면 처음에는 손을 잡지도 않고 그냥 내민 손바닥을 대충 살펴보기만 했는데, 더 자세히 살펴달라며 다시 내밀기에 그때 한번 손바닥 부분의 잔금을 띄우기 위해 손가락 네 개를 모아잡고 뒤로 살짝 젖혀본 게 전부였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손가락 젖히기는 손금을 띄울 때 반드시 취해야 하는 기본자세(?)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친구가 말하더군요. 요즘의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그 파장이 전부 다 긍정적인 방향일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전혀 다른 내용으로까지 변질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고요. 그러면서 그가 매단 말이, ‘개나 소나...’입니다. 성추행*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 데나 우선 갖다 붙이고, 덩달아 그런 용어를 무책임하게 너도나도 남발하게 되었다면서요. [* 주 : 성추행이란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타인에게 신체를 접촉함으로써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인데, 그 요건 충족 여부의 판정이 판사들에게도 엄청 까다로울 정도로,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얼굴값’과 ‘꼴값’은 무슨 얘기냐고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의 상투어 중의 하나가 어눌한 말투로 뱉곤 하는 ‘꼴값들을 떨어요, 꼴값들을...’입니다. 아주 보기 싫은 세상사에 대해서 그가 최대한 욕을 해대는 표현이 바로 그 말입니다.] 여인이 필요 이상으로 게거품을 물면서 성추행 얘기를 하면서, ‘얼굴값을 하는 여자’와 ‘꼴값을 떠는 여자’에 대해서도 장광설을 펴더랍니다. 그녀의 일방적인 값 매기기 얘기를 듣고 나자, 비로소 그도 그녀가 사용한 그 두 말의 의미 차이가 선명하게 응결되더랍니다. 얼굴값은 남녀관계 사건의 주동자 역할자로, 꼴값은 나서지 말아야 될 자격 미달자에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으로요.
그의 얘기를 듣고 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 문제녀(?)는 어느 쪽이더냐고요. 한때나마 엄청 억울했을 친구의 답은 여전히 명쾌했습니다.
‘꼴값들이 꼭 꼴값을 떨어요, 꼴값을...’
-溫草[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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