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을 함께 고생시키는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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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입니다.
마음이 싱숭생숭, 며칠째 집중이 안 되기에 근처의 ‘한잔집’으로 갔습니다.
이것저것을 하는 조그만 가게인데, 상호는 00분식센타.
‘한잔집’은 내 마음속으로 멋대로 지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곳에 가면 사장님께오서 제가 원하는 스타일, ‘전통 시장 닭튀김’을 해줍니다.
튀김가루니 뭐니 하나 붙이지 않고, 그냥 닭만 튀겨 주는 것.
몇 년째, 몇 달에 한 번씩 그 집 신세를 집니다.
2~3일쯤 계속해서 마음이 싱숭생숭 달뜨거나 집중이 안 될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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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잔을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모녀가 들어왔습니다. 프라이드치킨 하나를 시킵니다.
주인 겸 사장이 다른 손님 걸 먼저 해주어야 해서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딸이 ‘먼저 집으로 간다’ 소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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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손을 놀리는 사장과 손님 사이에 대화가 오갑니다.
그 가게는 주방 쪽에도 자리가 있고 내가 앉은 안쪽에도 자리가 있는데
그 사이에 벽이 하나 있어서 주방 쪽에서는 내가 보이질 않지만
소리는 도마질 소리까지도 그 벽을 사뿐히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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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오는 길이래?
-응. 헬스클럽에 등록 좀 하려고. 딸이랑 나랑.
-왜? 누가 살을 빼래, 신랑이?
-아니. 그 사람이...
-응... 작년에 자기가 이혼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할 때, 만났단 그 사람?
신랑과 달리 잔소리가 없어서 좋다며?
-처음에는 섹시하다는 둥 몸매가 끝내준다는 둥 해대더니
아 이젠 대놓고 살 좀 빼라는 소릴 하네. 내 몸을 볼 때마다.
이젠 열 번도 넘게 들었어. 허릿살을 꼬집기까지 하면서.
-아이고. 우리 나이에 허릿살 붙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
-누가 아니래. 짜증도 나고 신경질 나 죽겠다니까.
그래도 어째, 하라는 대로 하는 시늉은 해봐야지. 그래서 등록했어.
-애는 왜? 요즘 애들 운동 싫어하는데.
-걔도 남친한테 자꾸 잔소리를 듣나 봐. 종아리가 굵다나 뭐라나 하면서.
자꾸만 여기저기 몸을 갖고 트집을 잡는다는군. 이젠 ‘짜리몽땅’ 소리까지 한대.
-고3 때부터 사귄 애라고 했지 않나?
-그랬지. 첨에는 죽고 못 사는 시늉을 했다는데...
하여간... 지가 등록해 달라고 하길래, 둘이 갔다 오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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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쪽에 설치된 계산기 앞으로 다가갔을 때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여인의 얼굴과 달라붙는 청바지를 걸친 옆모습이 힐끗 시야에 들어왔지만,
나는 내 까다로운 주문을 잘 받아주는 착한 사장님 얼굴만 바라봤습니다.
문제의 그 여인이 얼굴값을 하는 얼굴인지, 어떤 몸매길래 섹시하다 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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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림이 새어나왔습니다.
마음이 허한 사람들, 속이 빈 사람들은 스스로 채우는 법을 깨닫기 전에는
어찌해도 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법이거니...
-溫草 [Ap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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