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와 기본 매너] 황희찬과 선수 두엇의 뒷얘기 : 이천수, 이동국 그리고 박지성
<사진 : 황희찬>
요즘 황희찬이 입에 오르내립니다. 말레이시아 전이 끝나고 인사도 없이 운동장을 나가는, 스포츠맨십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고, 키르키스스탄 전에서는 상대의 도발을 유도하는 비열한 짓을 했지만 실패로 끝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희찬의 실수 중 절정은 바로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보인 골 세리머니입니다. 엄연히 경고 대상으로 적시돼 있는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버젓이 해댔습니다.
희찬은 세는나이 23살의 청년으로, 세상 기준으로는 아직 한참 어립니다. 하지만, 어리다고 그런 짓까지 용서될 수는 없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지금까지 축구만 해 온 게 어언 10여 년이 넘습니다. 축구 선수로서의 기본적인 태도/매너가 몸에 배고도 남아야 합니다. 경고 대상으로까지 삼아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고 해도,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골을 먹은 상대방에게 눈앞에서 약을 올리는 짓이 되고, 상대편 응원 관중들의 기분에도 해악이 됩니다. 경기를 함께하는 상대편을 배려하지 않는 짓이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인데, 그런 도덕률을 짓밟는 일은 인간 점수에서도 하위급에 속합니다.
희찬은 일반적인 믿음으로 형성되는 기본적인 도덕률보다는 자신 중심이긴 합니다. 포항 스틸러스 유스 클럽은 그를 포철중고등학교로 데려다 6년 동안 보듬고 키워줬습니다. 그럼에도 희찬은 졸업 후 의무 근무 조항이 없음을 이용하여, 포항 스틸러스에 머물기를 거절하고 온갖 논란을 일으키면서 결국은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2015)로 갑니다. 포항 스틸러스에 1~2년 머물며 해외 진출 준비를 마친 뒤에 떠나라는 권유를 냉정하게 뿌리치고서요. 부모의 둥지를 제멋대로 뛰쳐나가는 어린 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걱정대로 그 뒤 몇 달 안 돼,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리퍼링으로 임대되는 방식으로 방출도 겪습니다. 2015-2016)
이런 모든 것들은 위에 적은 대로 그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으로 봐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프로 선수이기 전에 제대로 된 인간성 갖추기가 먼저이고 그 첫걸음은 인간 사회에서 존중되는 기본 룰 지키기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가장 기본적인 게 매너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얄팍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그걸 무시하기를 일삼는다면, 제아무리 일시적인 성공(고액 연봉 따위)을 거둔다 하더라도, 길고 길 나머지 인생길은 그늘이거나 어둠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것 역시, 훗날 생각해 보면 자신이 선택해서 그리된 것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만. 문제는 그걸 알게 될 때쯤이면 값비싼 대가를 치른 다음이지요.
그 좋은 예가 그의 선배 이천수(1981~ )라 할 것입니다. 이천수만큼 한국 프로 축구사에서 화려한(?) 구설에 오른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아래에 대충 요약된 것만으로도 ‘풍운의 악동’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물론 매스컴에도 밉보인 탓에 더욱 심한 매를 맞기도 했지만요.
그런 그가 아름다운 퇴장(2015)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힘이 컸습니다. 딸아이에 대한 사랑을 체득/절감하면서부터지요. 30대 중반의 일인데, 10여 년 이상 방황/허송하면서 맘고생을 겪은 다음이죠. 이천수도 2002년 히딩크호에 승선한 것은 희찬 또래인 세는나이 22살의 일이었고요.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축구팀에게 은메달을 따라고 기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병역 특혜와 관련된 모난 마음과, 말레이시아에도 지는 졸전에 대한 화풀이가 겹친 탓이겠지요. 거기에는 몇몇 선수들에 대한 개별적인 악감정도 섞여 있는 듯합니다.
<사진 : 2002년 아시안게임 때 극성 팬 일부가 경기장에서 들고 있던 현수막>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해,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이란에 패했죠. 그때 이영표가 골대를 맞히는 바람에 페널티 킥을 실축했는데, 그때 그걸 ‘이동국 군대가라슛’이라는 이름으로 통용시켰습니다. 실축한 이영표를 비난하는 대신에요...
이동국은 세는나이 마흔임에도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K리그의 살아 있는 레전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부침이 심하고,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도 드뭅니다. 2002년 당시에 저런 사진이 나돌았던 건 그 전에 병역 면제를 받으려고 애쓴 아버지의 불법 로비에 그도 가담(改檢)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치 때문에 정몽준 회장까지 나서서 탄원하는 바람에 그 부친은 실형 대신 벌금 2천만 원 형으로 경감되긴 했지만, 결국 그는 상무로 입대하게 되죠.
이동국은 그 뒤 다시 큰 오명에 휩싸입니다. 2007년 아시안컵이 자카르타에서 열렸을 때, 그는 이운재 등과 함께 넷이서 한국인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접대부 술집에 갔는데요. 거기서 술을 마신 뒤 2차를 갔네 안 갔네 하는 걸로 구설에 오른 뒤 1년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 골 세리머니로 코너킥 깃발을 차서 징계를 받기도 했고요.
그러던 그가 다시 세상 사람들의 온기 어린 시선을 받게 된 건 모 방송국 프로에 아이들을 데리고 출연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두 쌍둥이 딸, 곧 네 딸을 둔 뒤 막내로 아들을 봤는데요. 한 아이도 낳지 않으려는 요즘 세상에 자그마치 다섯 아이의 아빠입니다. (그의 부인은 동갑나기로 전 미스코리아 출신이어서 더욱 이 多産이 흥미롭죠. 1997년 미스코리아 하와이 미 출신인 이수진.)
즉, 그 또한 이천수처럼 30대 중반쯤 되어서야 비로소 그에 대한 세간의 이런저런 눈길에 서린 냉기들을 걷어내게 됩니다. 국가대표 발탁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발탁과 배제가 거듭되던 삶과도 맥락을 같이했다고나 할까요.
이천수는 박지성과 동갑입니다. 박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히딩크에서부터 이 나라 국민들에게서까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퇴장은 온 국민의 관심이었을 정도이고, 맨유와 평창올림픽 홍보 대사를 거쳐 그는 지금도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2017~)으로 그 쓰임이 요긴한 사람에 속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 그리고 희찬이가 아직 어린 사람이란 말을 맨 위에서 꺼낸 이유는 자명합니다.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고, 성실하고 또 성실하게 선수 생활을 해내어 결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저절로 알아줍니다. 하루빨리 철이 들어서 박지성 선배와 같은 길로 들어서길 기원합니다.
다른 선배들처럼 10몇 년의 마음고생을 겪은 뒤에야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일은 삶의 낭비입니다. 잘못된 생각 하나를 얼른 즉시 걷어내지 못한 탓에 그런 오랜 시간을 그늘 속에서 지내는 일은 자신의 삶의 질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기에, 훗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회한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매너 때문에 남은 인생 망친 사람들, 적지 않습니다. 늘 군소리를 달고 살던 유명 정치인 하나는 마이크가 살아 있는 줄도 모르고 후보 토론회를 마치고 쌍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낙선 후 정치 생활을 접었지요. 대화에서 늘 상대방의 흠을 꼬집어대는 게 몸에 밴 어느 여인은 이른바 ‘킹카’와의 재혼 만남 자리에서도 그걸 두어 번 되풀이하다가, 몰락했고요. 물론 요행 결혼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얼마 못 가서 다시 또 이혼했겠지만요.
반면 항상 웃는 표정으로, 안 해도 될 정도의 작은 일에도 고맙다는 소릴 매달고 살던 시골 아낙이었던 이 하나는 그런 여인을 기억하고 일부러 촌구석의 식당을 찾아주던 전 그룹회장과 50대에 재혼했죠. (그녀는 그가 프로포즈를 할 때까지도 그처럼 어마어마한 대기업 집단의 회장인 줄은 전혀 몰랐답니다. 회장은 그녀와의 결혼과 삼모작 인생을 위해, 일찍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을 정도로 멋진 이었고요.)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사소한 매너 하나.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溫草 [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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