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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와 모범생] 모범생 노릇도 살살 적당히만 하셔요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8. 2. 2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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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와 모범생] 모범생 노릇도 살살 적당히만 하셔요

 

어제, 지인 하나가

귀지를 이비인후과에 가서 의사에게서 파냈다고 했습니다.

그걸 카톡에서 대하고 한참 웃은 뒤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모범생 노릇을 조금만 살살 하라...

그런 일, 모범생들에게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라면서요.

 

70년대의 <대학신문>

소리 소문 없이 그 학교 학생들을 웃겼던 단신 하나가 실렸었는데요.

 

자신의 청진기를 처음으로 마련하게 된 의대생이

청진기를 귀에 꽂아보는데, 한 쪽 귀로는 잘 안 들어가더랍니다.

억지로 밀어 넣고 나서 보니, 귀에 들어간 부분에 피가 묻어 나오더랍니다.

알고 보니 큰 귀지가 하도 오래 굳은 채 귀를 막고 있어서...

 

작은 소동 끝에 한 시간 넘게 걸려 제거했답니다.

모로 누운 채 과산화수소수를 묻힌 면봉으로 그걸 살살 녹여서요.

고막 쪽으로는 약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까다로운 수술(?)이었지요.

 

귀지는 일부러 파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냥 둬도 나온다면서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다만 겉귀 근처의 것들이 그러지요.

한데, 중이 방향의 것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서 뭐로든 쑤시게 마련인데

그때 중이 부분은 피부가 약해서 자칫하면 상처가 나기 쉽죠.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그 말대로 충실하게 귀지를 아예 안 건드리는 충실한 모범생파들에게

가끔 크고 딱딱하게 굳은 귀지들이 있을 수 있죠.

이비인후과의 전문가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요.

 

                              **

3 시절 봄 소풍 때의 일인데요. 사가야 할 준비 물품이 있어서

몇몇 덩치 큰 급우들과 함께 뒤쳐진 적이 있습니다.

가다가 좀 쉴 참이었는데, 아 그 친구들이 담배를 꺼내 문 뒤,

소주 한 병도 입으로 따는 겁니다. 그러더니 제게도 담배 한 대를...

 

그때는 내리 3년간 반장을 하던 때이고, 원만한 통솔(?)을 위해서는

덩치 큰 녀석들과의 친교가 필수임을 깨닫고 있던 때인지라

아주 능숙한 담배꾼처럼 그걸 받아 들고, 소주 한 잔도 단숨에 넘겼습니다.

(그때가 난생 처음 소주를 목에 넘긴 대사건이자, 최초의 흡연)

그 뒤로 교실 뒷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는 그 친구들은 진짜 친구가 되었습니다.

 

1 시절. 봄 소품을 동구릉으로 갔는데요.

단짝 셋이서 제일 높은 묘 뒤로 가서는 소주 한 병을...

범인은 그중 가장 얌전한 녀석이었는데, 그걸 교복 안에 숨겨온 탓.

 

셋이서 해롱해롱하던 모습이 담임선생님에게 걸렸고,

그 다음날 종례시간에 불려나가 엉덩이에 몽둥이 불세례. 3대씩 맞았나요?

때리는 선생님이나 맞는 우리나 웃음을 깔고서요.

(그 문제아 3명은 그 반에서 유명한 모범생 그룹이었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그런 추억들이 당시의 친구들을 만나면 잊히지 않고 떠오르고,

최고의 술안주가 되는데요. 1 때의 그 소주병 주인은 나이 서른 근처에

당시는 손도 못 대보던 뇌종양으로 비명횡사한 것을

오랜 해외 근무 후 귀국해서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우리 둘과, 그 친구의 고향 친구인 B 박사와 술 한잔하게 되면

여전히 그 친구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 술 사건을 떠올리곤 하죠.

 

                            **

삶에서의 완전무결한 모범생 행실.

돌아보면 마치 맑은 물속 같기도 합니다. 고기가 꾀지 않는...

수초도 좀 있고, 바닥을 저으면 흐린 물도 되는

그런 곳들에 고기가 많죠.

 

이비인후과에서 귀지를 파낸 얘기를 전해 들으며

제가 혼자서 크게 웃었던 일.

그러면서 모범생 노릇을 조금만 살살 하라고 답했던 이야기의

속내이기도 합니다작은 일탈이 주는 '솔찮은'* 수확...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모범생이 참 좋습니다.

그에게서 배울 게 있고,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그는 삶의 전반에서 생각이나 언행 모두 이쁘고 착한, 천사표입니다.

 

아울러... 귀지 하나로도 이렇게

사람을 아주 즐겁게 웃기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하.


저는 참. 귀가 간지러우면 즉시 쑤셔대는, 여전한 문제아 쪽인데요.

비모범생이 누리는, 작지만 꽤나 괜찮은, 순간의 '시원함'이기도 합니다. ㅋㅋ.


작은 일탈은 때로는 순간적인 해방감과 더불어 그때 열리는 작은 새 세상을 통해서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포용/관용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듯합니다.

물론 저의 엉터리 개똥철학입니다만.

                                                            -溫草 [Feb. 2018]


[주 : '솔찮다'는 '수월찮다'를 뜻하는 충청/전라 서해안 지방의 방언입니다.

       제 고향이 충남 서천인데,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서 쓰다듬어 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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