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만은 비장애인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저께인가요. 평창 동계 패럴림픽 관련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하는 남자 아이스하키 팀 얘기를 대했습니다.
엄청난 훈련량과 그야말로 피를 흘리는 연습... 놀라웠습니다.
이번에 금메달까지도 노린다는 말도 과욕이 아니더군요.
그중 한 사람이 어째서 그처럼 힘든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가슴 뭉클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링크에서 뛰는 순간만은 제가 장애자라는 걸 잊습니다.
그 순간만은 비장애인인 듯만 합니다.’
도리어 그 순간 제가 많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장애인들은 비장애자인 우리들과 같은 느낌을 짧은 순간이라도 맛보기 위해
저토록 피를 흘리는데... (경기 용구에 날카로운 스틱이 있어서
보호 장구가 있음에도 훈련 후면 늘 찔리는 사람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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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흡연 장소인 1층 쉼터로 내려가 담배를 피우는데
바로 앞의 단지 내 도로 옆 보도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이가 보였습니다.
학교 앞 진입로 부근을 지나는데 그의 등이 덜컹거렸습니다.
그 부근에 턱이 진 곳이 있거든요.
그곳을 지나는 휠체어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한참 동안 그 휠체어의 주인장 등 모습을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다 올라왔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비장애자인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집 안의 사람들에게 조금 전 얘기를 해줬습니다.
두 사람의 고개가 위아래가 끄덕이더니,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그럼요.”
30여 년 전, 제가 관리하던 계약들 중에
시각장애인 집단을 상대로 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 한 사람이 30대 여성이었는데 그녀를 보좌하는 남동생과
제가 아주 친해진 것은, 그의 누나가 이혼을 당하게 된 사연을
듣게 된 이후였습니다.
논 스무 마지기까지 딸려서 보낸 시집이었는데
결국 나쁜 사람을 만나 그 논만 잃고 돌아온 여인이었죠.
그래서 더욱 오래 오래 그 팀과의 계약을 이어갔고
그 남동생은 10여 년이 지나 제가 그곳을 떠난 후까지도,
저를 형님이라 부르며, 도리어 저를 챙겨줬습니다.
혼자서 기동도 못한 채 급히 침을 맞으러 가야 했을 때
누상동에서 개봉동까지 달려와 준 사람이 바로 그였을 정도로요.
http://blog.naver.com/jonychoi/20070938541
갑자기 그 두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아니, 시각장애인인
그의 누나 생각이 났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남동생이 몇 푼 안 되는 돈을 빌려간 뒤, 그걸 갚지 않은 채
연락을 끊은 탓에 소식이 두절된 지 10여 년이 넘었거든요.
비장애자인 내가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뒤늦게라도 할 정도로 늦철이 조금 든 편이니
그 남동생 또한 늦철(?)이 들어, 제게 소식이라도 알려줬으면... 싶어집니다.
장애는 개인적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조금씩 나누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꼭 보겠습니다.
마음 박수를 한껏 치면서요.
정상인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에 대해서 좋지 않은 추억,
아주 오래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지만, 그건 잠시 내려둔 채로요.
-溫草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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